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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체바욧의 하나님 - 1

by 빛결샘숲 2023.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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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리고 성 정복을 앞두고 여호수아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중,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여호수아에게 자신은 여호와의 군대 장관 즉 여호와 체바욧으로 왔다고 말합니다.

 

 여호와 체바욧이란 이스라엘을 위하여 천군 천사들에게 칼을 들어 싸울 준비를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면 여호수아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체바욧 하나님으로 나타났을까요.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싸우기 위하여 일어선 자요,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걸리는 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을 속박하는 모든 장애물을 넘어뜨리고 모든 악한 영적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고민하며 몸부림쳤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하여 목숨 걸고 여호수아처럼 고민하고 싸우려고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천군 천사를 보내시어 그를 지켜 주시는 체바욧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호수아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출생시켜 선택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약속이 이뤄지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세력과도 싸워 주십니다.

 

 여호수아는 선택된 자답게 광야 40년을 지나는 동안 주님과 끝까지 함께 합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까지 자기식 대로의 신앙과 불신앙과 불평을 제거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여호수아는 마지막 때를 이기고 천년왕국의 왕이 되는 정결하고 거룩한 남은 자들의 상징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여호수아 같은 남은 자들은 주님의 뜻에 맞게 살기 위하여 몸부림치기 때문에 그릇된 것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갈망합니다.

 

 여호수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신앙과 불평과 불만으로 광야 40년 동안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함께 끝까지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목숨 걸고 요단강을 건넙니다.  

 

 모세는 죽기 전,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붙들고 있는 것과 요단강을 건넌 후 하나님께서 자기 천사들을 보내어 여호수아와 함께 하여야 할 일들에 대하여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실제 요단강을 건너고 나자 하늘의 천군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하여 칼을 들고 서 있는 여호와 체바욧의 하나님으로 여호수아 앞에 나타납니다.

 

 마지막 때는 사단과 악한 영들이 흑암의 세력과 공중권세를 잡고 빛의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재림하시면 사탄 세력들은 자기들도 끝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백성들이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도록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아말렉이 되어 공격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먼저 요단강을 건너야 하듯이 천년 왕국의 주인공이 되려면 우리 역시 나의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나의 요단강은 무엇일까요. 무기력한 신앙, 지역 이기주의, 물질만능, 탐욕에 찌든 욕심, 미지근한 신앙, 세속적인 결정, 우상숭배, 자아, 자존심, 불평, 불만, 시기, 질투, 미움, 분노, 자기식대로 신앙 같은 것을 말합니다.

 

 주님을 만나 언약의 주인공이 되고 싶으면 주님께 나를 완전히 복종시키지 못하는 일체의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마지막 승리를 위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신앙이 분명하면 그다음부터는 여호와 체바욧의 하나님이 주의 천군 천사들을 보내어 야곱을 지켜주고, 여호수아를 지켜주었듯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그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지켜주신답니다.............. 샬롬.


 여호수아를 비롯한 주님의 언약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요단강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하게 하는 무기력함, 죄의 힘, 물질만능주의, 미지근한 신앙, 인간적인 사고방식, 탐욕, 거짓, 우상 숭배, 불평, 불만 같은 육적 장애물을 말합니다.  

 

 따라서 정말 주님을 만나고 싶고, 언약을 이루고 싶으면, 우리는 우리를 온전케 하지 못하는 나의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지금은 마지막 시대이기 때문에 내가 넘어지면 바로 그곳이 죽음의 자리가 되어 버립니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장소가 요단강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만 주님의 축복이 주어지고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인침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나의 욕심, 자만심, 자존심, 자아에서 해방되는 승리의 삶을 말합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 제사장들이 법궤를 어깨에 메고 섰다는 것은 요단강 같은 문제는 하나님 말씀으로만 이긴다는 뜻입니다.

 

 요단강은 광야와 가나안 땅의 경계선입니다. 이 강만 건너면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지만 놀랍게도 바로 입구에는 가장 강한 적, 여리고가 버티고 있습니다. 적들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오는 것을 보고 성문을 굳게 잠그고 전투태세를 취합니다. 저들은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것과 이제는 자기들을 점령하기 위하여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요단강을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여리고 성을 그냥 빙빙 돌고만 있습니다. 그런데 성위에서 적들은 비무장한 라엘을 향하여 돌을 던지거나 화살을 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요단강을 건너왔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건너온 사람들을 볼 때 적들은 간담이 녹아버렸습니다(수 2: 11).

  
 여리고 성은 적의 가장 강력한 성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못하게 막고 있는 사탄의 최후 성입니다.

 

 문제는 이런 여리고 성이 내 안에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내 안에 있는 여리고 성 때문에 사탄이 내 신앙을 비웃고 있는 것도 모르고, 하나님과 동행이 없으면서도 동행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지 못하면서도 예배를 잘 드리고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온유한 사람 같으면서도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아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사단이 항상 비웃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여리고 성은 반드시 무너뜨려야 합니다. 하지만 나의 여리고 성은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결심하여도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너뜨려 주셔야 합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권능, 여호와 체바욧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나의 잘못된 습관, 미지근한 신앙, 내 신앙과 다르면 판단하고 무시하고 정죄하는 무지한 신앙의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사실 나의 생과 사의 문제입니다.  

 

 여리고 성이 어떻게 무너졌습니까.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1. 요단강을 건넜기 때문이고
2.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였을 때 무너졌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나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려면 반드시 나의 요단강을 건너야 하고 바보 같지만 하나님이 하라면 그대로 하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순종에 여호와 체바욧 하나님이 나에게 권능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샬롬.

 ​여리고 성을 점령하려면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 때부터 약속받은 땅을 40년을 악전 고투하며 요단강을 건너왔는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가나안의 강한 일곱 나라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 번도 적에게 패한 적이 없고 특히 여리고 성은 그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하는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장 강한 민족이 자기들 앞에 서서 가나안 땅에 못 들어 가게 막고 있습니다.  


 어떡하면 될까요.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스라엘 남자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하십니다(수 5:2-3).  

 

 할례란 실제 남자 성기의 표피를 조금 잘라내는 의식입니다. 여기서 꼭 기억하셔야 할 것은 전쟁을 앞두고 할례를 받으라는 것은 우리의 모든 전쟁은 할례와 상관된 것임을 발견합니다. 따라서 영적 전쟁이 시작되면 육적인 모든 생각을 죽이는 할례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강한 적을 앞에 두고 남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받아 고통과 신음에 쌓이게 함으로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가장 무능하고 약한 백성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아무리 강한 용사라고 할례를 받고 나면 며칠 동안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할례 사건을 통하여 인간은 한없이 무력하고 나를 치려고 하는 적 앞에서는 이길 수 없는 존재임을 가르쳐 줍니다.  

 

 만약 이때 여리고 성의 정탐꾼들이 이스라엘을 정탐했다면 모든 남자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공격했으면 한순간에 전멸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리고 군사들은 가장 약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보지 못하고 공격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강한 천사들, 즉 여호와 체바욧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엘리사를 죽이기 위하여 아람나라 군사들이 쳐들어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큰 불말과 불칼을 든 천군 천사들 즉 여호와 체바욧의 군사들이 엘리사를 지키고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스라엘이 할례를 받고 신음하고 있는 사이에 여리고 성안의 사람들은 여호와 체바욧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두려움을 가지고 꼼짝 못 합니다. 결국 여리고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는 인간의 지혜와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이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할례란 무엇입니까. 나를 포기하고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즉 내가 아무리 강한 힘과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할례가 없으면 절대로 나의 적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진짜 할례당이라고 고백하고 그 증거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합니다(빌 3:3-8).  

 

 기억하십시오. 내 힘든 문제를 해결 받고 싶거나, 약속의 땅을 취하고, 모든 언약의 성취가 있으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할례를 받으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영으로 다스림을 받기에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셔도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을 전쟁하러 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매일 한 바퀴씩 말없이 돌고만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싸울 때 칼과 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은 육의 모든 방법을 완전히 내려놓았다는 뜻입니다.  

 

 여리고 성은 결국 할례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영권으로, 여호와 체바욧이 무너뜨려 버립니다......... 샬롬.

 

2023.01.18 - [하나님의 이름] - 여호와 체바욧의 하나님 - 2

 

여호와 체바욧의 하나님 - 2

가나안 땅을 정복하려면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요단강은 광야와 가나안 땅의 경계선입니다.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 자는 광야에서 선택받아 놓고도 다 죽어버렸지만 요단강을 건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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