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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 두 광주리 비유(렘 24:1-10)

by 빛결샘숲 2023.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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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보여주십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침공으로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관원들과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직후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의 왕과 고관들을 볼모로 잡아간 이유는 남아 있는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고 바벨론의 문화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때에 예레미야는 한 광주리에는 아주 맛있고 탐스러운 무화과가 담겨 있고 다른 광주리에는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가 담겨 있는 것을 봅니다. 

 

 무화과는 유다 백성들을 말합니다(렘 24: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시는데 보기 좋은 무화과는 여고냐와 함께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이다(렘 24:3)

 

 적국에 포로로 끌려간 것이 왜 좋은 무화과일까요.

 

 적의 포로됨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이해가 안 되어도 그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23장에서 잘못된 지도자들을 향하여 신랄하게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말했지만 하나님의 본래 마음은 회개하고 모든 것을 회복하기를 원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좋은 무화과라고 하는 것은 저들이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심판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순종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좋은 무화과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무화과가 되기 위해서는 나라가 망하지 않거나 전쟁에 지지 않거나 포로로 끌려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지만 때가 되면 그들을 본토로 옮겨와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고 약속하십니다(렘 24:6-7).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24:6-7).  

 

 하나님의 말씀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말씀이 실제 상황이 되어 어느 날, 가슴 떨리는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한번 상상하여 보십시오.   

 

 예언한 대로 70년이 지나자 정말 포로로 잡혀간 저들이 돌아오고 그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에 새 역사를 이룹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은 출애굽 한 뒤 시내산에서 하신 말씀인데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제2의 출애굽을 시켜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겠다고 다시 약속하십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좋은 무화과가 되고 전화위복의 길입니다. 샬롬.

 

심겨둔 무늬 둥굴레가 몇해를 지나면서 번지며 꽃을 피워 무리를 이루어 신비롭게 합니다.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을 향한 주님의 계획도 이러 하답니다

 

 여고냐를 비롯한 대신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갈 때 시드기야와 일부 관료들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습니다.   

 

 이들은 친 애굽파들로서 바벨론의 세력에 대항하여 애굽을 중심으로 새로운 길을 도모하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너희들의 잘못된 신앙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쓰기 때문에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십니다.   

 

 적에게 항복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지만 하나님이 항복하라고 하시니 항복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러나 시드기야 왕이 우리가 어떻게 바벨론에게 항복할 수 있느냐 끝까지 싸우자 하면서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 명분이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이 바로 불순종이요, 썩고 못 먹는 나쁜 무화과가 되는 길입니다.  

 

 본토에 남아 있는 자들은 스스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적의 포로로 끌려가는데 자기들만 남았으니 하나님이 자기들을 지켜주셨다는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바벨론에 항복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성전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하고 주여 주여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어 먹을 수 없는 썩은 무화과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머리로 계산해서 거역하는 자들은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 좋은 신앙의 길 같지만 그것이 바로 나쁜 무화과가 되기 때문에 먹지도 못하고 버림받는 길이 되고 맙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모르고, 제멋대로 판단하고 자기 신앙이 의롭다는 당위성을 내세우는 자, 한마디로 자기 살길을 찾아 나서는 자는 나쁘고 썩은 무화과입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축복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그 자체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기에 잠시 후 그들은 오히려 온 세상으로 강제적으로 흩어져 버리거나, 남아 있는 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과 기근과 질병으로 죽게 됩니다.  

 

 자기 신앙의 논리로 상대방을 판단하여 스스로 죄 없다 하는 자들은 나쁜 무화과요, 어려움을 당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순종하는 자들이 좋은 무화과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마지막 때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대로 사는 것이 어렵고 힘이 들고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무화과가 되는 길입니다. 샬롬.

 

함박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피조물을 통하여 발견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침공으로 유다가 멸망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마침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예언합니다. 

 

 그러니까 유다의 잘못으로 심판은 받지만 장래가 보장된 징벌이기에 유다는 복된 아픔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유다는 거짓 지도자와 거짓 예언자들로 인하여 온 나라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만 가득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유다의 실상을 하나씩 고발을 하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무화과 광주리에 담긴 두 무화과를 보여주시면서 회복과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즉 바벨론으로 유다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되새기고 참회하게 되면 회복의 은총을 받는 자들은 좋은 무화과 열매가 되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섭리를 거부하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자들은 나쁜 무화과 열매로서 영원한 멸망이 주어진다는 비유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은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으려면 자신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시키고 내 생각이나 내 신앙까지 내 고집과 자아, 똑똑함까지 버리고 돌아서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샬롬.

 

교회 뜨락에 심은 산수국이 활짝 피었습니다. 꽃들의 연합이 너무 좋습니다. 주님과의 연합이 분명하면 우리 삶도 꽃이 활짝 필 것입니다.

 

 구원이란 마지막까지 자기 생각과 자기 신념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고 회개할 때 주어집니다.

 

 한 광주리에는 탐스러운 무화과 열매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이 2차로 침공할 때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에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줄 알았기에 여호야긴 왕은 대신들과 함께 항복하고 포로로 잡혀갑니다.

 

 왕이 스스로 항복하고 바벨론에 잡혀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징계로 불의한 자들과 함께 잡혀가는 것은 치욕 중의 치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벨론의 2차 침공 때 포로로 끌려간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결국 바벨론의 3차 침공 때 유다는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수많은 사람이 죽고 온세상에 흩어지고 수치스라운 치욕까지 겪으면서 유다는 BC 586년에 완전히 망하고 맙니다. 이들은 바벨론의 2차 침공 때 포로로 잡혀가는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잡혀간다고 조롱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이 아무리 조롱하고 비웃어도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 속에서 자신의 택하신 사람들을 끝까지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구원이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먹을 수 없는 무화과 열매는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고 대항하다가 완전히 망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결국 바벨론의 3차 침공 때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가다가 잡혀서 자기 아들은 자기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자신은 눈이 뽑혀 개처럼 포로로 끌려갑니다.  

 

 환난의 시간에 나는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상대방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것을 저주라고 판단하여 그들을 비웃는 어리석음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느 것이 좋은 무화과인지, 나쁜 무화과인지가 중요합니다. 당장은 불이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항상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먹기에 좋은 무화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길은 순종에 있습니다. 샬롬.

 

무화과 광주리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좋은 무화과 열매가 담긴 광주리와 악한 무화과 열매가 담긴 광주리를 봅니다.

 

 무화과는 고난과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하고 번영과 부귀와 영화로움을 상징하기도 하고 이스라엘을 뜻하기도 합니다.   

 

 좋은 무화과란 바벨론으로 잡혀간 유다인들이고 악한 무화과란 시드기야 왕을 비롯해서 유다 땅에 머물고 있거나 애굽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말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역사적으로 최고의 왕이지만 하나님은 그저 자기의 심판의 도구로 쓸 뿐입니다.

 

 하나님은 무화과 광주리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거짓된 자들의 말을 쫓아갈 때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심판을 예언하고 심판이 임하고 있어도 유다 왕들과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한번 자신을 계시하면서 참된 회개의 길을 제시하여 주십니다.   

 

 시련과 힘듦 속에서 하나님 말씀이 임하면 빨리 돌이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잡혀 가라고 하셨기에(렘 22:25) 이 말씀을 아는 자들은 비참한 모습이라도 잡혀갑니다(렘 29:2).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의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렘 22:25) 
때는 여고니야왕과 국모와 환관들과 및 유다와 예루살렘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렘 29:2)

 

 하나님은 항상 심판 전이나 심판 때, 심판 후에도 말씀하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는 1년에 두 번 맺는 중요한 농작물입니다.   

 

 여호야긴 왕은 왕이 된지 3개월도 안되어 바벨론의 포로로 수많은 사람과 함께 끌려갑니다. 이때 남은 자들은 스스로 거룩한 후예들이라고 생각하고 끌려가는 자들은 버림받은 자라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에 끌려가는 자들이 좋은 무화과라고 합니다. 남은 자들은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할 만큼 부패한 악한 무화과라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자들은 자기들은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제외되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관심에서 멀어진 자들 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바벨론에 잡혀가는 것이 말씀에 순종하고 심판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계속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악한 무화과란 결국 칼과 기근 염병으로 망할 자들이요(렘 29:17), 불타 없어질 나무요(겔 15:4), 맛을 잃은 소금일 뿐(마 5:13)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그들로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게 하겠고(렘 29:17)
불에 던질 화목이 될 뿐이라 불이 그 두 끝을 사르고 그 가운데도 태웠으면 제조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겔 15: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착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지 못하고(사 34:16)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지 못하고(시 1:2)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요 16:13).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사 34:16)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2)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 16:13)

 

 그래서 야고보는 기도로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묻습니다(렘24:3). 하나님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잘 보고 판단할 것을 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이다(렘24:3)

 

 성경을 잘 안다면 정확하게 보고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행 17:11) 억지로 성경을 풀지 말라고 하십니다(벧후 3:16).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순종을 기뻐하고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을 분별하라고 늘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것은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렇다면 끌려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정면 도전이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반항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멋대로 해석합니다. 자기들의 정당성을 내세워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과 영적 생명의 사라진 자들로서 전혀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셔도 멸망할 자들은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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