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 위에 있는 속죄소는 모든 자의 죄를 완벽하게 씻어주는 곳입니다. 이곳은 결국 예수의 죽음을 통한 완전한 죄 사함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모든 사람들의 대속물로 오셨는데 죄 문제는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타인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기에 예수의 죽음을 대속적 죽음 혹은 대속물, 속건제물, 화목제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죄의 값이 죽음이기에 죗값을 치르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직접 죽으심으로 죗값을 해결하셨으니 더 이상 죗값인 죽음에 메어 있을 수가 없기에 죽음에서 부활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죄 없는 예수 안에 있으면 죄 없는 자가 이 땅에 다시 태어 날 수가 있는데 이것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씨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 없는 하나님의 씨가 되려면 반드시 예수의 죽으심에 죄 있는 나 자신이 죽어야만 합니다. 예수와 함께 분명하게 내가 죽으면, 예수의 피로 죄인이 의인으로 바꾸어지면서, 사람의 씨에서 하나님의 씨로 바꾸어집니다. 이것을 새로운 피조물 혹은 다시 태어남(born again)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의 죄문제를 청산하기 위하여 예수의 피로 나를 사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씨로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씨된 자들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란 사실을 결코 잊으시면 안 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씨가 된 사람들만이 모든 예언의 중심에 서게 되므로 창 1:28절과 3:15절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의 처소에 심기고, 마지막 환난 시대에서도 이긴 자가 되어 천국에서 우뚝 서게 된답니다......... 샬롬.
기억하십시오. 예수의 피로 하나님의 씨로 거듭난 자들은 예수와 하나가 되었으니 우리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 된 자는 육신으로 살고 있어도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속한 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자는 육신의 고집이나 행동이나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들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면서도 고집이 세고 모든 결정을 내가 하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시험에 들고 불평불만 원망은 물론 내 것을 그렇게 많이 주장하며 살까요.
이것은 거듭났다는 말, 구원받았다는 말, 혹은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고 있다는 고백이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자는 생각도, 결정도, 판단도, 어떤 경우에서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않으며 심지어 신앙생활과 교회를 선택하는 것까지 내가 결정하지 않는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씨가 된 이상 우리는 사단의 머리를 밟는 여자의 후손(창 3:15)이요, 하나부터 열까지 오직 하나님의 지시와 말씀대로만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샬롬.
출 40:21을 보면 법궤 안에 십계명을 두고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섬김으로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는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언약의 증표로 십계명을 받는 동안에 산 밑에서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하면서 축제를 벌입니다.
모세가 이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십계명 판을 던져 깨어버립니다. 이제부터 너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라고 섬겼는데 왜 이것이 문제가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애굽의 아피스 신과 같은 금송아지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이라고 섬기고 노래하니 모세보다 화가 더 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날에 주동자 3000명을 죽여버리십니다. 그리고 다시 십계명 판을 주시고는 이것을 법궤에 잘 보관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금송아지 사건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다시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다가 심판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거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이 바로 금송아지 신앙이고 이런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금송아지가 무엇일까요. 맘몬주의와 금본주의를 말합니다. 즉 돈, 힘,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것, 혹은 내 유익과 편리함을 위해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금송아지 신앙입니다.
주님은 십계명 판을 법궤 안에 두고는 십계명 그대로만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만 그대로 지키며 살아라고 하십니다. 절대로 하나님 외에 디른 것을 섬기지 못하게 하십니다.
현대판 금송아지는 하나님보다 돈에 더 마음을 쓰거나(마 6;24) 돈에 인색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는 인색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는 앞 뒤 가리지 않는 것이 바로 금송아지 신앙입니다.
옛날에는 엽전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돈을 보되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살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돈은 앞 뒤가 전부 돈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그저 돈 돈 돈만 외치고 있습니다. 돈만 보이니 하나님도, 사명도, 희생도, 헌신도 안보입니다.
하나님께 눈이 밝으면 돈 뒤에 서 계신 돈의 주인인 하나님이 보이고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할 것도 보이는데 모두가 맘몬주의에 빠져 금송아지를 하나님처럼 섬기면 하나님이 보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금송아지를 부수고 그날에 죽은 3000명을 기억하라고 십계명 판을 법궤 안에 넣어둔 것이랍니다.
주님!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미련한 자가 되지 않게 하소서... 샬롬.
법궤 안에는 십계명 판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있습니다.
광야 생활이 점점 깊어 갈 때 고라, 다단, 아비람, 온이라는 4 사람의 지도자들이 모세의 지도력에 반역을 일으킵니다. 너만 지도자며 너만 예언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반역의 편에 가담한 사람들 전부를 지진으로 불못에 빠뜨려 죽여 버리십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를 상징하는 지팡이 하나씩 족장들로 하여금 가지고 와서 각 지파마다 한 지팡이를 하나님 앞에 두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12 지팡이 중 아론의 지팡이에게서만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살구열매가 열리게 합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은 아론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면서 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법궤 안에 두라고 합니다.
이것은 앞으로도 절대로 내가 세운 나의 종은 너희가 건드리지 말라, 건드리면 너희가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은 하나님이 세우셨으니 그를 건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궤 안에 아론의 지팡이를 넣어두고 저들이 법궤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기름 부어 세운 종들을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주의 종을 거슬리거나 반역하지 마십시오. 선택된 종을 거역하는 것은 언약의 길에서 나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길이 되고 만답니다.
그리고 일단 언약의 길에서 벗어나게 되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언제든지 그를 죽여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너희는 법궤를 볼 때마다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목사님들이 전부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종은 아니랍니다. 거짓 목자도 있고, 사탄이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여 보낸 목사님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마지막 때는 분별의 영을 가지고 자기식대로의 신앙을 철저히 버려야만 한답니다... 샬롬.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생활 중에 기적의 만나를 먹고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가 없었다면 저들은 광야에서 전부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을 먹고살아야만 된다는 뜻입니다. 배가 고파서 헐떡이듯이 내 영혼의 갈급함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먹음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받은 자 밖에는 아무도 그 뜻을 모른답니다. 그래서 계 2:17절에서는 이긴 자에게는 감추인 만나와 흰 돌을 준다고 합니다. 즉 감추인 만나와 흰돌은 받아 자만이 그 뜻을 알고, 이것을 끝까지 먹고 마신 자만이 이긴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언약의 길에 서 있는 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아야지 정확하게 모르는 자는 전부 언약의 길에서 탈락하여 버린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십보라가 할례의 귀중함과 그 의미를 몰랐다면 그의 남편 모세는 하나님이 부름 받고 선택받아 이 땅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면 절대로 내가 가는 길에서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걸어가십시오. 이것이 말씀이 육신이 되는 길이랍니다.
법궤 안에는 이렇게 십계명 판, 아론의 지팡이,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들어 있습니다.
법궤는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앞에서 죽음과 생명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법궤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려워하여 가까이하지를 않는데 에돔의 종이었던 오벳에돔은 법궤의 중요성을 알고 자기 집으로 법궤를 정중하게 모셔 갑니다.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법궤를 우습게 보고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빼앗겨 버렸고 그 앞에서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삼 개월 동안 법궤를 잘 모신 오벳에돔은 엄청난 복을 받습니다.
다윗이 이것을 보고 즉시 자기의 궁으로 법궤를 모시고 갑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보고 알았으면 절대로 망설이지 말라는 큰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순종하는 자에게는 엄청난 복을 주신답니다. 그래서 오벳에돔과 다윗의 신앙은 두고두고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것입니다... 샬롬.
2023.01.13 - [성막 (the Tabernacle)] - 법궤 (the Ark of the Conernant)로 가는 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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