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소란 히브리어로 카포레트, 즉 죄를 덮는 장소라는 말인데 영어로 시온좌(mercy seat)라고 합니다.
이곳은 하나님이 좌정하여 계신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기서 대제사장이 중보기도 하면 사람들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즉 인간의 모든 죄의 사유하심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절대자 하나님이 유한하고 불의한 인간을 만나려면 절대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덮어주는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속죄소는 십계명 판 위의 덮개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보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공의가(시 97:22)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전부 심판받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인데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레위기 16:13 절을 보면 분향단의 향연이 법궤 위의 속죄소를 가리면 죽음을 면한다고 기록합니다.
이 말은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서고자 하는 사람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해주어야 하나님 앞에 살 수가 있지만 그렇지 않고 죄 있는 자가 죄 사함 없이 직접 하나님 앞에 가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분향단의 기도, 즉 중보기도를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그룹 사이, 가로 110cm, 세로 65cm의 작은 공간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만나고 그곳에서 말씀하여 주겠다고 하십니다.
절대자 하나님께서 왜 작은 공간에서 우리와 함께 만나서 말씀하여 주시겠다고(출 25:22) 하실까요.
죄 많은 사람과 함께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낮추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가장 천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으면 가장 낮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와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속죄소에서 만나주시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는 구체적으로 누구일까요.
물론 육적 이스라엘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자녀로 구속받은 자, 즉 하나님의 기업이 될 자(신 9:6)들을 만나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사야 60:21, 22 절을 보면 하나님이 심으신 가지를 두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심으신 가지는 아무리 작은 자라도 천을 이르고 약한 자라고 하여도 강국을 이룰 자들인데 때가 되면 속히 이루어지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출 35:31 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는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신, 지혜, 지식, 총명을 주시어 모든 일을 완전하게 하신다고 축복하십니다.
속죄소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기업, 하나님이 심으신 가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분향단의 기도를 드리는 제사장의 축복( 벧후 2:9)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샬롬.
성막의 중심은 법궤입니다.
법궤를 언약궤, 증거궤라고도 합니다.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 보물이 들어 있는데(히 9:4) 만나,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십계명 돌판입니다. 이것이 왜 성막의 중심인 법궤 안에 들어 있을까요.
1. 사람이 살려면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만나로 먹이셨는데 이 만나는 순종할 때만 주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만나는 순종할 때만 먹을 수 있는 양식, 즉 떡과 하늘의 말씀이 합쳤기에 하늘 양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요 6:48-51에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 만나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생을 누리려면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먹어야 합니다.
2. 산다는 것은 길을 간다는 뜻입니다. 또 먼 길을 가려면 지팡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길에는 사망의 길과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에만 싹이 낫다는 것은 그 지팡이가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즉 살아있는 생명의 지팡이, 부활의 예수를 짚고 갈 때,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십계명 돌판은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사람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즉 천국 가는 내비게이션이 십계명 돌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아론의 싹인 지팡이), 진리요(생명의 말씀이 담긴 십계명), 생명이라(하늘 양식인 만나)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언약궤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자, 예수님 자체를 가르칩니다.
법궤를 만들 때 나무에 금을 바르듯이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어디로 가든지 법궤를 메고 다녔는데 이것은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고백의 신앙입니다.
그리고 언약궤=하나님=예수님이시니 우리 역시 삶의 모든 과정에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성막의 형태인 교회에는 지성소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예수님이 대제사장이 되시어 하늘의 지성소에 가셔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남아 있는 성소 안에는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베드로전서 2:9) 삼아주시어 성소 안에 들어가 중보기도 하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 맞는다면 끊임없이 교회에서 모든 자의 죄를 사하여 주는 죄 사함의 중보기도가 이어져야 합니다. 즉, 중보기도의 유무가 제사장의 기준이 됩니다.
내가 누군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하십시오.
내가 왜 교회 다니는지 확실하게 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통하여 성소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역의 완성입니다.
중보기도가 깊어질 때, 나에게는 성화의 길도 되지만, 모두를 살리는 생명물이 성전 문지방에서부터 흐르기 때문입니다... 샬롬.
2023.01.13 - [성막 (the Tabernacle)] - 법궤 (the Ark of the Conernant)로 가는 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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