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과 짝을 이루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면서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신성이 있고 인자라고 했을 때는 사람의 아들로서 인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우리의 눈에는 전혀 불가능하게 보여도 주님에게는 불가능하지 않고,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아들시기에 우리 삶을 형통한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우리가 믿으면 초자연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고 우리 삶은 어떤 경우에서라도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만 본다면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분이시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거리감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하늘 차원과 땅 차원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만 보면 육의 몸을 입은 우리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형편을 잘 알지 못하고 신의 아들이기에 우리의 죄와 잘못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인간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시고 깨끗하시고 성결하신 분이시기에 죄인 된 인간은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나, 절망에 빠져도 하나님께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런 약한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가슴아파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계시를 통하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며 가까이 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너무 무섭고 멀리 계신분으로만 생각하니 하나님이 너무 답답합니다.
특히 죄의 노예가 된 인간들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죄에서 자유하지 못하니 마음이 더 괴롭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와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이 크리스마스 사건이요, 성육신 사건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의 겸손, 즉 신성이신 하나님이 인성이신 사람의 아들이 되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은총입니다. 샬롬.
야생의 새를 잡아서 새장에 넣어두면 새는 새장 안에서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람들도 자신의 현재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힘들어하고 좌절하며 심지어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엄청난 천국의 영광에서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하나님께서 냄새나고 더러운 인간의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예수가 되어 33년을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은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살면서 배고픔, 배신, 고통, 아픔, 음란.. 등을 전부 겪으시면서 인간의 고통과 절망을 가장 잘 이해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 사람의 상황과 형편에 처해 보아야 합니다.
아파 보아야 아픈 사람의 고통을 알고, 배고파 보아야 배고픈 사람의 고통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나사렛이라고 하는 작은 촌 동네였습니다. 게다가 주님은 태어날 때부터 로마의 식민지에서 살다보니까 로마인들로부터 무시당하였고, 가난한 자였기에 가진 자들로부터도 무시와 멸시도 받았습니다.
직업이 목수였기에 육체적인 노동을 통하여 힘든 것을 경험합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어릴 때부터 천대받는 것이 무엇인지, 가난이 무엇인지, 전부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사람한테 상처받는 것이 얼마나 큰지, 심지어 고향 사람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기도 하고,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찾아다니면서 온갖 빌미로 공격하다가 마침내 거짓 증인을 사서 불법 재판으로 끌고가 사형시키고 맙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과정에서 삼 년을 예수와 동거동락했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 가버리고 배신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우리가 살면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처와 아픔을 전부 경험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 예수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가장 잘, 가장 완전하게 이해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잘 이해하시는 분으로만 끝이나면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아파하는 것은 좋은데 그 상황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과 도움을 주지 못하면 그분은 우리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광스런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가지고 오셨기에 인간이면서도 신성인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외형적으로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의 쉐키나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아들이면서도 신성을 가졌기에 어떤 문제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뚫고 나가실 수 있습니다.
배고픈 5,000명 이상의 군중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부 먹이고도 남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간단하게 일으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 눈먼 자, 말 못하는 자를 비롯하여 불치의 병들을 말씀 한마디로 치유하여 버리십니다.
질병의 끝인 죽음까지도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죽은지 4일이나 지난 나사로나,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나, 야이로의 딸을 쉽게 일으켜 버립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인 인성을 가지고 오셨지만 항상 하나님의 능력인 신성으로 모든 문제를 돌파해 나가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인간의 무력함이 전혀 없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순간순간 나타납니다.
이런 것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인간 예수를 믿으면 그분의 신성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샬롬.
인간이신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하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는 것만 아니라 그분이 가지신 신성으로 우리 모든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여 주십니다.
인자로 오신 예수님의 절대적인 사명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히 2:14을 보면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이유는 마귀를 멸하시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4)
예수님은 인간을 미혹하여 범죄하게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장본인인 사단 마귀의 최대무기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와 사랑입니다.
죄로 인해 죽게 된 인간에게 하나님은 그냥 눈감고 죄를 용서하시고 사망에서 구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의 공의를 스스로 깨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반면에 우리가 죄를 지었으니 죄값으로 그냥 죽으라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깨어집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만족시키려면 누군가가 나의 죄값을 위하여 대신 죽어 주므로 우리가 죄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나의 죄값을 청산하기 위하여 내가 죽거나 누가 대신 죽어 주어야 죄값인 사망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나 죄가 있는 사람은 자기의 죄로 죽을 뿐이지 남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죄 없는 자만이 남의 죄를 대신 지고 죽을 수가 있습니다.
죄값으로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이시기에 죄값을 대신하여 주려면 스스로 인간이 되어 죽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시고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완전한 희생제물이 되게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사람의 아들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내 죄 문제를 해결하여 주기 위하여 스스로 죄값을 갚아주는 희생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은혜란 죄를 눈 감아 주는 것이 아니고 누가 대신 나의 죄값을 갚아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값을 인자 예수님이 대신 해결하여 주신 장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에게 최고의 은혜가 됩니다.
예수의 죽음을 대속이라고 합니다. 남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고 값을 치루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란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대속으로 믿을 수 없는 희생을 하신 에수의 죽음과 부활을 말합니다. 샬롬.
2023.04.05 - [당신은 누구십니까? 000 이야기] - 인자 예수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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