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씩 늘 듣던 하나님의 말씀이 어느 날, 비수 같이 가슴에 꽂혀올 때가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우린 매일 외웁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제게 주기도문의 한절 한절이 가슴에 사무치게 안겨집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고백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거룩성이 보입니다. 늘 거룩을 말하고 있었는데 왜 그날따라 하나님의 거룩성 앞에 제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일용할 양식의 문제를 두고 기도할 때도 먹고 마시는 모든 순간마다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는데도 그날따라 부족하고 게으른 나를 지금까지 아무 병 없이 지켜주시고 거룩한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살게 하여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어쩔 줄 몰랐습니다.
수없이 말씀을 전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지 못한 저를 보호하여 주시고 악에서 건져 주시고 주님 맞이할 때까지 주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살게 해 주시는 은혜가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날, 저는 비틀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오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성막을 지으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것입니다.
노예라는 비천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자들을 온 세상의 제사장이라는 엄청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섰을 때만 존귀한 자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성막의 모든 것은 개개인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제사장이 되는 길을 하나님이 고안한 방법입니다.
번제단은 인간의 죄를 동물을 통하여 대신 속죄받는 곳이며 바로 뒤에 있는 물두멍은 남은 죄의 찌꺼기를 다시 한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씻어내는 곳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흠이라도 용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를 씻고 씻어 성소에 들어가면 누룩을 넣지 않은 12개의 떡을 놓은 작은 떡상이 있고 또 7개의 가지가 달린 금등대가 있으며 가운데에는 제사장이 매일 중보기도하면 하늘로 향처럼 올라가는 분향단이 있습니다.
그리고 커튼을 지나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법궤가 속죄소 밑에 있고 그위에는 그룹천사가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하고 있습니다.
결국 번제단과 물두멍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과정의 첫 순서요, 성소에서는 다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첫째가 하나님께 바쳐진 떡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없는 순결한 떡으로 바쳐져야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떡, 즉 예수의 살과 피를 다시 우리에게 주시어 먹게 하시므로 주와 하나 되어 온전한 헌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일곱 가지로 나누어진 금등대는 하나님의 완전한 빛, 완전한 계시를 받아야 한 점의 어두운 그림자도 없는 완전한 빛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분향단은 가로 세로 45센티, 높이 90센티의 작은 단인데 조각목으로 만들어 정금을 입히고 여기에 향기로운 향을 매일 피웁니다. 이것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면 매일매일 올려야 하는 중보기도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최종적으로 온전하게 서려면 떡상인 말씀과 등대인 온전한 헌신과 분향단인 기도가 있어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매일 성막을 오르내리지만 어느 날, 하나님의 은혜가 새롭게 보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자신이 떡상이 되고 금등대의 빛이 되고 분향단의 향이 되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날입니다.
이 복된 은총이 우리에게 속히 임하여졌으면 합니다.......... 샬롬.
2023.01.11 - [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 하나님의 성막 - 떡 상
출 30:7절을 보면 제사장이 매일매일 분향단 위에 향을 사른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분향단 위에 향을 어떻게 피워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정리할 때에 사를찌며(출 30:7)
아론은 이스라엘 제사장이요, 우리는 각가정의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의 직무는 향을 매일 아침마다 피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제사장 된 우리도 매일 아침마다 향을 피우는 일, 즉 매일 중보기도가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향을 사를 때 금촛대의 등불도 같이 손질하라고 합니다.
성소 안에 있는 떡상 위의 떡은 안식일에만 교체를 하지만 분향단의 향과 금촛대의 기름은 매일매일 제사장이 확인하여야 됩니다.
떡상 위의 떡은 하늘 양식을 뜻합니다. 이 떡을 일주일에 한 번 교체한다는 것은 매주일마다 먹는 하늘 양식을 절대 놓치지 말라는 뜻이며, 이것을 먹기 위하여 기도와 말씀과 헌신의 생활이 매일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즉, 좋으신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 말씀을 매주일마다 놓치지 않고 먹으려면 매일 기도와 말씀과 헌신의 삶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가 매일 하늘에 올라갈 때 우리가 중보기도하는 모든 대상자들이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이 기억하시어 함께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와 예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죄 앞에서 모두 무력합니다. 고의든, 자의든, 실수든 사람은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는 자유로울 수가 없고, 죄를 짓고 나면 반드시 죄책감이 찾아오고, 죄책감에는 열등감과 자괴감과 두려움이 따라옵니다.
어떤 아이가 태어났는데 선천적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거의 모든 부모들은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자학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자라면서 자신의 질병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남보다 건강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결국 부모든 자식이든 신체적 결함 때문에 절망 속에 빠져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걸어가다가 한 소경을 만납니다.
제자들은 소경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요 9:2) 묻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 9:2)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여도 거듭나지 못하거나, 성령의 사람이 되지 못하면 모든 생각은 인간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만 다닐 뿐 거듭나지 못하면 교인들의 사고방식은 세상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모든 원치 않는 일에 결과는 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 사람이 소경 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라"(요 9:3)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3)
태어날 때부터 소경 된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왜 매일매일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빛 앞에서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어야 할까요.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오기만 하면 짙은 절망과 흑암의 덩어리를 몰아내고 하나님의 의와 영광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고 하늘의 지혜, 즉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샬롬.
2023.01.13 - [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 금 촛대의 삶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떤 원치 않은 일도 생기지 않게 지켜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나쁜 일이 생기거나 무엇인가 부족함이 이어지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의심합니다.
그러다 보면 해결책이 하나님이신 줄 알면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주저 주저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이 점자로 된 성경을 읽고 예수를 만났습니다. 자기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없는데 예수님이 자기 앞에 서 계신 것을 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자기에게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이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준비하신 것을 발견하고 살아갑니다.
눈이 멀어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보이고 눈이 멀어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이루어 나갑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눈먼 사실이 부모의 죄 때문인가 내 죄 때문인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와 말씀이라는 두 날개를 자기에게 달아주었기 때문에 자기를 하늘로 더 오르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향단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라"(출 30:9)고 하십니다. 다른 향이란 기도가 아닌 것, 즉 한숨, 원망, 탄식, 분노의 향을 말합니다.
너희는 그 위에 다른 향을 사르지 말며 번제나 소제를 드리지 말며 전제의 술을 붓지 말며(출 30:9)
살다 보면 어렵고 힘든 일이 생깁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향을 피우게 될까요.
당연히 기도의 향을 피우면서도 원망의 향, 탄식의 향, 분노와 의심의 향을 함께 피웁니다.
문제는 기도의 향이 아닌 다른 향을 함께 피우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계시록에 보면 우리가 드리는 분향단에서의 기도가 하늘에 올라가는 모습(계 8:3)을 발견합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계 8:3)
그런데 천사가 그 기도를 받아 다른 무엇인가 합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리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를 향한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의 기도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는 아무리 완벽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의 간구하심을 나의 기도와 함께 더하여 주심으로 온전한 기도가 이루어져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받으신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기도와 나의 기도가 합쳐져서 완벽한 기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응답으로 땅에서는 우뢰와 번개와 음성과 지진이 일어난다고 기록합니다.
우뢰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책감과 열등감과 억울함을 털어버리는 하늘의 힘입니다.
번개란 모든 무기력과 절망을 몰아내는 힘이요, 음성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주시는 에너지요, 지진은 모든 것을 뒤집어 인생을 역전시키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아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렘 33:3)"고 약속을 하십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기도조차 하기 힘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회의감과 무기력에 빠져서 어찌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멍하니 앉아서 십자가를 바라볼 수 없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한 심령이지만 주 앞에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힘들다고 원망스럽다고 방에 틀어박혀 눈물 흘리고 있는 자녀를 보면 부모들이 얼마나 안타까워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이것보다 더 아프시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비교도 안될 만큼 큰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을 받게 되면 지금까지의 모든 아픔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런 은총을 받으려면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내 앞에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이 땅에 우뢰와 번개와 음성과 지진을 일으키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샬롬.
2023.01.16 - [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 분향단과 중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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