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님의 양이 분명하면 목자이신 주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잘못된 길에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주님은 때때로 우리를 주의 품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그분의 품에 안으시고 어둡고 좁은 터널이라도 건너가십니다.
주님께서 왜 가끔 우리에게 힘든 시간을 허락하실까요. 우리가 가진 육적 꿈과 계획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 서서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낙심하기도 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혼란에 빠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평강은 절대로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목자이신 하나님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찾아오시고 일으켜 세워 주시고 상처를 깨끗이 씻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어려움을 당하는 자신의 슬픔을 내려놓고 탄식합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원수의 압제 속에 늘 자신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육적, 정신적, 영적으로 압제를 줍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과 죄책감이 살아나고 두렵고 자신이 없어지고 홍수처럼 절망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주님을 깊이 사모하면 사모할수록 사단이 우리를 압제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들입니다.
다윗은 원수의 압제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당하기도 하고, 쫓겨나 산으로 도망가기도 하고 추악한 정욕에 한순간에 사로잡혀 타락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끝까지 돌보고 사랑하시는 목자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공격당하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자신을 찾아와 일으켜 세우며 쉴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자신의 영혼이 회복되도록 푸른 초장으로 누이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시편 23편은 우리를 주님 오실 때까지 수없이 돌보시고 인도하시며 지켜주시기 위한 우리 목자 여호와 로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라고 약속하십니다(출 29:45). 이 약속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 대한 영원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푸른 초장에 누이신다는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말이 아나라 영구적인 임재, 영원한 나의 하나님, 나의 목자가 되어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은 영원히 자기 양들에게 머문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쉐키나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영광인 쉐키나와 함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함께 하시고 오히려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울 베풀어 주시는 전화위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하티마 토마.
여호와 로이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은 내가 내 양을 알고 내 백성을 인쳐주시고 저희를 내 손에서 뺏을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요 10:14, 27, 28).
하나님은 자기 양의 체질과 마음의 비밀까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쳐다보시니 내가 숨길 수가 없어 매일 내 죄가 내 키보다 더 높이 쌓였다고 다윗은 고백합니다(시 38:4).
한마디로 하나님은 나의 선한 것뿐만 아니라 악한 생각, 정욕, 육적인 것, 악한 경향, 숨은 악까지 전부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숨기거나 핑계하지 못하고 슬퍼한다고 고백합니다(시 38:18).
진짜 영성생활이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순간순간 사단의 유혹이 있을 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슬프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렸고 자신은 두려움에 쌓였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엄청난 두려움에 쌓였습니다. 십자가라는 엄청난 사건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위로를 받기 원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전혀 없습니다.
얼마나 답답했던지 땀이 핏빛으로 변할 만큼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왜 아버지께서는 저를 외면하시고 아버지의 얼굴을 감추십니까"라며 부르짖으며 몸부림쳤습니다.
가끔씩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하면서도 원수의 압제로 나도 모르게 불신이 일어납니다. 나도 모르게 주위 사람들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불신자에 가까운 생활을 합니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문제가 해결되면 머쓱하게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다윗은 시편 23편을 고백합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 불신의 시간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한 것을 확인합니다. 다윗은 너무 힘들고 어려워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자신을 찾기 위하여 힘쓰고 있었고 늘 목자로서 자기와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 이름을 불러 주시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누워 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이 귀한 체험으로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좋은 양으로 그 품에서 주의 평안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하나님께서 푸른 초장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누워 쉬라는 말씀은 지친 너의 영혼이 다시 힘을 얻도록 푹 잠을 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네가 자는 동안에 모든 것을 처리하여 주겠다는 말씀이 시편 23편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을 내가 의뢰할 때 내 마음이 주의 구원을 기뻐한다고(시 35:5) 하며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시니 천만 인이 나를 둘러 치려하여도 두렵지 않다고 고백합니다(시 3:4-6). 다윗은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기에 주의 구원의 복은 반드시 주의 백성에게 내리시는 것을 확신합니다.
왜 엄청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할까요. 여호와 로이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로이 하나님은 내가 타락하고 잘못하여 엄청난 어려움을 당하여도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다윗처럼 지치고 힘들고 쓰러지고 심지어 사단의 압제로 인하여 내가 멸망과 두려움 속에 가득 싸여 있어도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마침내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고 내 원수에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여호와 로이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의 잘못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면 빨리 죄에 대하여 저항하며 돌아서야 합니다. 목자는 양 하나하나를 다 알듯이 하나님은 나의 목자이시기에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고 계십니다.
목자이신 주님은 내가 잘못해도 우리는 주의 양이기에 사랑하고 지켜줍니다. 내가 잘못되어 길을 잃으면 목자이신 주님은 나를 찾기 위하여 계속 내 이름을 부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내가 어떤 형편,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여호와 로이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여 주십니다.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먼저 알고 있으니 늘 주의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주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와서 주의 품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모든 계시를 우리가 다 알기 원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 로이 하나님임을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 로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으로 자기 양을 보살피고 지켜 주십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의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좋게 변할 수도 있고 힘들게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로이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의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나의 대적이 에워싸고 있어도 여호와 로이 하나님은 자기 양들을 가장 선한 길로,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여호와 로이 하나님께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부터 목자이신 하나님 앞에 그저 순종만 하는 좋은 양이되기를 바랍니다. 샬롬.
2023.01.17 - [하나님의 이름] - 여호와 로이(목자) 하나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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