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사람들은 정직하고 착하고 도덕적으로 바로 살고 악과 유혹과 상관없이 온유하고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착한 사람들을 가르쳐서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성경을 많이 알고 많은 봉사를 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사님은 끊기 힘든 죄를 힘들게 끊고 난 뒤에 이제는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에 다시 유혹에 들어왔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가 내게 없으면 사람의 어떤 의도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쓰임 받고 버림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힘들게 죄를 극복하고 거룩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곧 다시 유혹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늘 체험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영적인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의를 이루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자신의 문제점을 보고 가슴 치며 통회합니다.
여호와 치드케누란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내가 구원받는 의인이 되려면 여호와의 치드케누, 즉 하나님의 의가 내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잠시 후 이 땅의 거의 모든 교회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배교를 할 것입니다. 이런 때에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있어야 어떤 환난과 절망과 힘든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요시야가 왕이 되기 100년 전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했습니다. 요시야는 이스라엘이 망한 원인을 발견하고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유다에 하나님의 의를 넣고 개혁을 통하여 거룩한 부흥을 일으킵니다.
문제는 요시야의 개혁이 겉모양은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데 참된 회개가 동반되지 않는, 깊이가 없는 개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지키며 사회가 깨끗해졌지만 정작 유다의 마음은 이것에 관심이 없었음을, 요시아가 전쟁에서 죽고 나자마자 여태껏 보지 못한 우상숭배와 간음, 동성애에 빠져들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제사장과 선지자, 백성들 모두가 타락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눈물로 예언합니다(렘 23,14장).
이미 요시야 왕의 전임 므낫세 왕은 그가 통치하는 기간 동안에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악행을 저질렀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시야의 종교개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일시 유보 되었을 뿐입니다.
지금 세상은 겉으로 보면 요시야 왕 때처럼 번창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평안의 이 시대는 곧 다가오는 환난시대를 대비하는 회개의 시간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이제 새 예루살렘이라는 거룩한 도시, 메시아의 나라가 임하면 다윗의 씨에게서 의로운 가지가 나와 그가 왕이 되어 세상을 지혜롭게 공평과 정의로 다스린다고 예언합니다(렘 23:5,6).
즉 세상은 이제 곧 유다의 멸망처럼 끝나고 예수가 완전한 의의 왕이 되어 의와 평안으로 통치하는 새로운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예언입니다.
그러면 이제 잠시 후, 의의 왕과 함께 영원히 세상을 통치할 자가 누구일까요.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 즉 여호와 치드케누로 의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샬롬.
구원의 날이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의가 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여호와의 의, 구원을 주시는 여호와 치드케누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예수를 통하여 이 땅에 와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아입니다.
따라서 "의"라고 하는 것은 내 행위, 노력, 힘이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함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 치드케누란 우리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의 나무에 붙어 있을 때, 하나님이 내 은행 통장에 하나님의 의를 입금해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받았고 그분의 의 안에 있으면서도 의인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고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실천하지 못하고 의롭게 살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아무리 율법을 지켜도 율법으로는 의를 이룰 수가 없으니 하나님의 의인 메시아가 오셔서 자기들에게 의를 주셔야 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구약은 여호와 치드케누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다윗과 이사야는 큰 아픔과 슬픔을 경험하고 난 뒤, 구원을 이루려면 하나님의 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고백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하나님의 메시지를 직접 받아서 전하는 능력 있는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자 즉시 '화로다 나여, 나는 망할 수밖에 없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고백합니다(사 6:1-5).
이사야는 궁중 예언자요, 백성들로부터 인정받는 위대한 선지자인데 자신은 죽어야 하고 하나님이 살려주셔야만 의로워질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제단의 숯불이 이사야의 입술에 닿아 하나님이 이사야를 깨끗하게 하시는 사건이 일어나자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를 노래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만나 뵙고 나니 인간의 그 어떤 노력이나 선으로도 하나님을 볼 수가 없으니 하나님 앞에 가려면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이 주셔야 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완성을 주는 의란 우리가 아무리 선한 노력을 하고 주의 일을 많이 하여도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 치드케누, 즉 하나님이 주시는 의,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의는 주님의 붉은 보혈이 내 입술에 닿아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이 분명하게 나올 때, 하나님의 의가 내게 임하여 내가 의로워지고 그 나라에 넉넉하게 들어갈 수 있는 은혜입니다... 샬롬.
2023.01.18 - [하나님의 이름] - 여호와 치드케누 하나님 (렘 23:5-6)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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