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법에 나오는 제사 중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제사는 어떻게 드릴까요.
1. 반드시 제사를 드릴 때는 흠 없는 양이나 소여야 합니다(레 1:2-3).
그런데 멀리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성막에 온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진영 한가운데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면 오직 집에서 흠없이 준비한 짐승(베헤마)을 가져와야 합니다. 중간에서 사 오면 안 됩니다. 만약 제물을 드릴 짐승이 오다가 흠이 생기면 다시 집에 가서 가져와야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까이 있는 지파들은 힘들지 않게 제사를 드릴 수가 있지만 멀리 있는 단 지파, 므낫세 지파, 에브라임 지파는 한번 제사를 드리려 오려면 몇 개월씩 걸릴 수가 있습니다. 오다가 짐승에게 흠이 생기면 다시 집에 가서 계속 가져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서는 흠이 없는 제물을 드려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번거로워도 이 일을 하여야만 합니다.
2. 가져온 짐승에게 번제단 앞에서 주인이 직접 자신의 모든 죄를 죄를 전가하는 안수를 합니다.
나의 모든 죄를 동물에게 안수하므로 그 동물은 나의 죄 덩어리가 되고 나와 일체를 이룹니다.
3. 주인이 직접 그 짐승을 잡습니다(레 1:4-5).
레위기 한참 뒤에 기록된 미드라쉬 법전이나 탈무드에 보면 제사드릴 때는 몇 cm 되는 칼로 어떻게 어느 부위를 찔러, 칼을 돌려, 그 제물을 죽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흠 없는 짐승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생각하여 봅시다.
먼저 집에서 흠없이 키워 준비한 짐승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겨우 가지고 왔습니다. 제사장이 그 소를 번제단에 묶고 나면 우리는 양의 머리에 안수하며 우리의 모든 죄를 전부 전가시킵니다.
그리고 나면 제사장이 주는 칼을 가지고 짐승의 미간, 동맥, 심장 중 어느 한 곳을 찔러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단칼에 심장이나 미간 사이, 동맥에 칼로 찔러 죽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단칼에 동물을 못 죽이기에 몇 번씩, 어쩌면 여성들은 몇십 번을 소의 미간을 찔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찔렀던 칼이 미간 사이를 찌른 것이 아니라 오른쪽 눈을 찔렀다면 다시 뽑아 찔러야 하고, 이번에는 왼쪽 눈이 찔렸다면 다시 칼을 빼서 힘 있게 다른 곳을 찔러야 합니다.
그때마다 제물의 몸에서는 피가 터지면서 동물들은 울부짖고 발버둥을 칠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될 것이고 소나 양 역시 피투성이가 되어 안 죽으려고 발버둥을 칠 것입니다.
이런 싱황에서 과연 몇 사람이나 제대로 그 제물을 죽일 수 있을까요.
그러나 짐승을 죽여야 나의 죄가 없어지기에 계속 찌르다 보면 우리의 온몸은 짐승의 피로 덮이고 소나 양의 머리가 터지고 뇌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래도 죽지 않으면 마침내 사람들이 와서 제물의 목을 자르도록 도와줍니다.
생각하여 보십시오. 칼로 자기를 죽이는데 소가 가만히 있을까요. 난리를 칩니다. 피가 온몸에서 퍼지면서 고통으로 울부짖고 눈을 부라려 쳐다보며 발버둥을 칩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피로 범벅되고 짐승을 잡는 사람의 온몸은 소의 피를 덮어쓸 것입니다.
반면에 양은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올 때 파르르 떨면서도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자기를 죽이는 사람의 눈을 끝까지 쳐다본다고 합니다.
양을 죽이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할까요. 짐승이 죽으므로 내 죄가 사함 받으니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우아하고 낭만적으로 제물을 죽인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악이 흐르고 찬 한잔 마시면서 폼 잡고 짐승을 잡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잔인해서 도저히 이런 제사를 드리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이런 제사를 못 드리면 평생 세 가지를 할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없습니다.
2. 성경을 읽거나 만질 수도 없고
3. 신명기 23장에 보면 의인의 회중에 들어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짐승을 잡지 않고 성전에 들어오거나 위의 세가지 중 한 가지라도 범하면 하나님이 직접 그를 죽여버리거나 백성들이 돌을 들어 죽여버립니다. 왜냐하면 거룩을 침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회막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고, 일 년에 한 번이라도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으면 말도 안 되는 이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닭 죽이고 개구리 죽이는 것과 다릅니다. 양이나 소를 죽이는 겁니다. 칼로 찔러 손을 비틀어 돌리면 피가 터져 짐승과 자신의 몸에 흠뻑 묻어납니다. 여자들은 제대로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도저히 못할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내가 소를 죽이고 나면 소의 피를 제사장은 번제단의 뿔에 바르고 제단 주위에 뿌리므로 나의 모든 죄가 속죄받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속죄는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이 왜 처절하게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셨고, 왜 우리가 예수의 피뿌린 옷을 입어야 되는지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절대로 우리의 구원은 싸구려 구원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오히려 죄를 범하고 죽는 어리석음이 가중되는 죄를 짓지 않기를 바랍니다....... 샬롬.
2023.01.12 - [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 번제단의 의미 - 1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려면 자신의 모든 죄가 속죄받아 죄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성막에 오는 자들은 반드시 번제단에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짐승을 대신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이때 쓰이는 동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 같은 것인데(레 1:2-3) 이때 이들 짐승은
1. 반드시 어떠한 흠도 없어야 됩니다. 그래서 집에서부터 곱게 키우고 보살핀 짐승만 가져옵니다.
2. 번제단 앞에서 짐승에게 자신이 직접 죄를 모두 전가시키는 안수를 하고
3. 짐승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잡아서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이때 짐승을 죽일 때는 준비된 날카로운 칼로 급소를 찔러 칼을 돌려서 피가 터져 나와 그 피가 짐승을 잡는 사람들의 옷을 흠뻑 적셔질 때 그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4. 죽은 짐승의 가죽을 직접 본인이 벗겨야 합니다.
온몸 구석구석, 머리, 다리,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칼을 들고 가죽을 벗길 때마다 온몸과 손에는 피범벅입니다. 앞다리 뒷다리 몸통뿐만 아니라 머리가죽을 벗길 때는 누가 보더라도 끔찍한 장면입니다. 한번 생각하여 보십시오.
5. 가죽이 벗겨진 짐승을 각을 떠서 분리시켜야 합니다.
목, 다리, 발목, 발가락 하나하나 분리시키고 특별히 동물의 목을 분리시킬 때는 단칼에 분리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손도끼를 제사장이 가져다주면 도끼로 짐승의 목을 몇 번이나 치면 살과 뼈가 터지고 척수가 나와서 온몸에 들어붙습니다. 생각하여 보십시오. 목을 도끼로 칠 때 살점과 뼛조각이 떨어져 나와 내 몸과 얼굴에 붙고 온몸에는 피투성가 될 때 우리의 감정은 어떠할까요.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6. 제물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태우면 끝이 납니다.
그런데 이런 잔인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는 향기로운 냄새라고 기록합니다(레 1:9).
주인이 잔인하게 죽인 그 짐승의 피냄새와 살과 뼈가 타는 냄새를 하나님이 맡으시고 향기롭다며 너무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은 과연 이토록 잔인하고 엽기적인 분이실까요..... 샬롬.
2023.01.12 - [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 번제단의 의미 - 2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라고 해놓고 그렇게 죽이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과연 정상적인 하나님이실까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흠 없는 양이나 소를 데려와서 제단에 묶는 순간부터 얼굴에 기쁨이 넘칩니다. 그리고 그 짐승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는 안수를 하면 더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짐승의 미간이나 동맥, 심장을 칼로 찌르고 찔러서 피가 터지고 죽으면 더 흥분하십니다. 게다가 죽은 짐승의 껍질을 벗기고 마디마디 조각을 낼 때마다 하나님은 기뻐서 탄성을 지릅니다. 마지막으로 그 짐승을 태울 때 하나님의 기뻐하심은 절정에 도달합니다. 짐승을 잔인하게 죽여라 해놓고서는 그것을 보며 기뻐하시고 흥분하시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시고 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분으로 보입니다.
선한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게 하고 그것을 기뻐하는 신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왜 짐승의 이런 잔인한 죽음을 그렇게 기뻐하실까요.
여기서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어떤 짐승을 죽일 때 그것이 도살이 되느냐, 아니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되느냐의 차이점은 제물이 안수를 받고 안 받고의 차이점에 있습니다.
안수의 의미는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나 양을 제물로 바치는 사람이 그 짐승에게 안수를 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전부 짐승에게 전가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짐승은 단순하게 죽는 것이 아니고 나의 죄를 짊어진 죄 덩어리가 죽는 것이 됩니다.
죄의 심장이 찔리고, 죄의 동맥이 끊어지고 죄의 미간이 깨어지고 터지는 것입니다.
나의 죄가 죽고 나의 죄가 난도질당하고 나의 죄가 태워지기에 동물이 죽는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흥분하시다가 마지막 짐승의 모든 것이 불탈 때 그 향기를 맡으시고 최고의 만족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죽음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잔인하게 죽는 것을 보고 기뻐하시는 엽기적인 분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양이나 소의 죽음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내가 전가시킨 죄가 그 짐승을 통하여 죽기 때문에 기뻐하시고, 죄가 마지막에 불 타 없어질 때 하나님은 그 향기를 맡으시고 어쩔 줄 몰라하시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죄문제를 가지고 있는 한 그 어떤 자도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왜 우리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한번 깊이 생각하여 보십시오.
이 문제가 분명치 않는 사람은 절대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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