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찌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잠 23:4-5)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우신 섭리와 질서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그 인생이 제대로 작동되기 때문에 풍성해지며 행복지수가 높아지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그 기능은 상실됩니다(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올바른 배선을 따라 흐르는 전류는 안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전기는 위험합니다.
富를 올바로 모으고 사용하게 만드는 전력 배선도는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는 선, 하나뿐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로 흐르는 富는 안전하지만 그렇지 않은 富는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잠언 22:4절에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이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재물을 많이 얻는 방법 중 첫 번째가 하나님을 먼저 경외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경외하면 재물은 그 뒤를 따라오지만, 하나님과 재물의 이 앞 뒤 순서가 바꾸어지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도 됩니다(잠 23:4-5).
겸손이란 올바른 순서를 따르는 것이며, 교만은 이 순서를 무시하거나 뒤집어 버려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에 혼란만 남게 됩니다.
교만은 창조의 질서를 파괴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의 반대말은 교만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자기 머리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교만,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부와 가난으로 결정됩니다. 샬롬
아담이 왜 중요하냐 하면, 최초의 사람이자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교만함은 모든 곳에 혼란을 주고 쫓겨나는 결과를 가지게 되었고 아담의 후예 된 사람들은 교만병에 걸려 하나님을 지금까지 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피조세계에 자연법칙을 세워 질서대로 움직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즉흥적이나 막연하지 않고, 모든 우주 만물을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 정확하게 움직이게 함으로 모든 피조세계는 하나님을 스스로 찬양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을 하나님의 원리를 따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실 때도 하나님의 생기를 그 몸에 넣어줍니다.
처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고 아담에게 전권을 부여했기에 이 세상에 모든 물질과 富는 하나님의 것이자 동시에 아담 것입니다.
따라서 아담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법칙대로 세상을 정확하게 관리하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힘과 富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창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 때문에 아담은 주어진 복을 잃어버리고 에덴에서 쫓겨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탄식하며 질서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롬 8: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 8:19)
교만은 이기심이 가득하여 주위를 돌아볼 줄 모릅니다.
바울은 '아무에게든지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겨라'(빌 2:3)고 말합니다.
교만은 항상 자신을 주장하고 남을 낮추어 봅니다. 교만은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마저 불순종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만한 자는 때때로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자기 연민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우울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내 속에 숨어있는 교만보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힘이 더 크게 역사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교만은 항상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어 보며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대어 들듯이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교만한 자는 우울증에 잘 걸리며 때때로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의 목숨까지 파괴시켜 버립니다.
이사야 14:13절을 보면 교만한 자는 자기중심적인 것을 뛰어넘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은 자리에 두려고 합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사 14:13)
그래서 항상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하나님께 월권행사를 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그 중심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누구에게서든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며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낮추어 보고 하나님의 말씀도 우습게 보면서 하나님 마저 가르치려 하고 자기 자신을 과시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섬기고 아끼기 때문에 예배마저 파괴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상숭배가 되는 것도 자신은 모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모든 공로를 자기 것으로 돌렸고 사울 왕 또한 주어진 권력으로 제멋대로 월권행사를 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이 바로 우상에게 절하는 것(삼상 15:22-23)이라고 책망을 받고 왕권을 빼앗겨 버립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 15:22-23)
예배가 파괴되면 화평이 깨어집니다. 손바닥도 마주치면 소리 나듯이 교만한 자들은 교만한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반응을 합니다.
교만한 자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스스로를 파괴하는 경쟁자가 되고 자기 자신들을 서로 자랑하기 때문에 서로 일치할 수가 없고 돈을 사랑하고 상대방을 비방하면서 감사할 줄 모릅니다(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2)
그래서 교만한 자들은 자기의 소중한 것을 스스로 파괴시켜 버립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듣고도 행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왕의 자리에서 칠 년이나 쫓겨납니다.
왕이 왕권을 잃으면 더 잃어버릴 것이 없습니다. 교만하면 망하고 지위에서 조차 잊혀집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면 남는 것은 아무리 소중하여도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겸손한 척하고 굽신거리는 척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순수함으로 가는 길은 단순합니다.
하나님만 목적으로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겸손과 경외함을 실행하여 사는 삶이기에 예배가 자신의 중심으로 나타납니다.
예배를 최우선적으로 머리 위에 두는 것이 하나님을 순수하게 경외하는 증거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내가 하나님께 제대로 먼저 무릎을 꿇으면 어느새 다른 것들이 내게 와서 무릎을 꿇는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자연의 법칙대로 운행되듯이 富에도 富의 법칙대로 운행됩니다.
그 富의 법칙 중심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있습니다.
경외란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과 사랑의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지혜가 주어지고 그 지혜가 우리를 富의 길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던 자가 한순간, 자기 욕심으로 교만하여 버리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富는 한순간에 파괴되어 버린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샬롬.
2024.12.04 - [재물, 부자, 돈에 대하여] - 富를 위하여 먼저 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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