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에게 보아스가 고엘이 되어 주려고 하지만 먼저 일 순위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때문에 보아스는 그 사람을 제치고 룻과 결혼하여 나오미의 가정의 기업을 물려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하나님이 이 일을 허락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기회를 줄 것을 분명히 믿으라고 네 번씩이나 룻에게 강조합니다. 내가 너를 책임지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찌니라(룻 3:12-13)
문제는 복병입니다.
우리는 일이 잘 풀리다가도 꼭 복병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복병 때문에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수가 있고 서두르다가 일을 그르칠 수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내가 무심코 뱉은 부정적인 말 한마디 때문에 내 삶에 강한 브레이크가 걸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갑자기 찾아온 복병을 어떻게 우리는 해결해야 할까요.
이럴 때는 절대로 인간적인 방법을 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끝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모든 일의 결과는 항상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나의 삶에 갑자기 복병을 만나 슬픈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처음부터 하나님의 방법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내 문제를 마지막까지 지켜주시려면 우리는 철저히 보아스처럼 복병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을 처리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내 삶을 책임져 주신답니다.
내 삶에 복병을 만나면 즉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만 행하십시오.
그러면 복병은 사라지고 오히려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결과를 가져온답니다....... 샬롬
고엘제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친족 중에 누구가 너무 가난하여 재산을 팔아 버렸거나, 가족 중의 누구가 남의 종으로 팔려 갔거나, 혹은 아이를 낳지 못하고 남편이 죽어버리므로 그 집안의 대가 끊길 위기가 되었을 때, 능력이 있는 친척 중의 한 사람이 자기희생으로 그것을 회복하여 되돌려 주는 하나님의 공동체 사랑을 말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님의 삶이 바로 고엘의 길이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셔야 된다는 당위성이나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희생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나의 희생으로 상대방의 생명을 살리는 희생적 사랑, 이것이 바로 고엘 사랑입니다.
참 교회는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켜야 합니다.
자주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영적 격차가 생기지 않도록 끊임없이 기도하여 주며, 우리 중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건 없이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고엘의 교회가 될 때, 그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위대한 힘을 가지게 된답니다.
마치 주님께서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나를 위하여 살려주시려고 대신 죽으신 고엘의 사랑이 위대한 것처럼 말입니다............. 샬롬
헤세드란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사랑이 아니라 끊임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켜서 헤세드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을 알고 실현하려면 정말 목마른 자가 시원한 냉수를 찾듯이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답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어도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나 하나님의 방법에서 벗어난 혼적인 사람들의 결과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시험과 불안과 두려움만 남는답니다.
그러나 헤세드의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이 제대로 내게 들어오면 우리는 받은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위하는 고엘의 사랑을 할 수가 있답니다.
주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즉 헤세드가 넘쳐나니 상식을 뛰어넘고 자기 인생을 통하여 남의 생명을 구하여주는 철저한 고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완성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혼적이나 육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그 끝은 지옥이랍니다.
그래서 그들을 지옥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받은 헤세드의 사랑으로 이제는 남을 위하여 너를 희생시키는 고엘의 완성자가 되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최고의 율법과 사랑이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고엘 정신의 회복이며 하나님의 헤세드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이랍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헤세드의 사랑으로 누구에게든지 고엘의 사랑으로 나를 희생시킬 때 우리는 룻이나 보아스처럼 복의 통로가 될 수가 있답니다........... 샬롬
2023.03.06 - [당신은 누구십니까? 000 이야기] - 보아스와 아무개
'OOO이란? - 성경 속 궁금한 단어 알려드려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슈브(שׁוּב)와 낙함(נָחַם) (0) | 2023.12.14 |
---|---|
에셀אשל나무에 대하여(창 21:33), 그리고 엘 올람 (0) | 2023.03.23 |
언약이란? (베리트, 디아데케) (0) | 2023.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