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멸망 1년을 앞둔 시드기야 10년째 되는 B.C. 587년에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다시 예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 하여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 것이니, 이것을 대비하기 위하여 항복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반역자로 몰아 시위대의 뜰, 즉 정치범들을 가두는 감옥에 가두어 보냅니다.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때는 시드기야 10년, 느부갓네살 왕 18년째 되는 해입니다(렘 31:1-2).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않고는 행하지 않으십니다(암 3:7). 누구든지 부르짖어 하나님께 기도하면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까지 반드시 가르쳐 주십니다(렘 33:3). 요한계시록도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요한에게 가르쳐 준 책입니다(계 1:1).
느부갓네살 왕은 시드기야 9년 4월에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합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는 순간까지 예언의 말씀 때문에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항상 바른말, 즉 의의 말을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편에서 잘못된 정책을 펴거나 권력을 잘못 사용하거나, 강대국을 의지하거나, 우상숭배 하는 것을 반드시 지적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교회는 예레미야나 엘리야나 세례 요한처럼 항상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살리고 국민을 지키기 위한 의와 진리의 선포는 반드시 교회가 해야 할 예언자와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이스라엘이나 유다가 망한 이유가 그 당시 제사장, 선지자, 레위인들이 우상숭배 하는 잘못된 권력과 결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깨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교회가 빛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샬롬.

세상이 아무리 싫어한다 할지라도 잘못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바르게 선포하면 무서운 핍박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나라의 잘못된 정책을 반대하면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항상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님들이 바른말을 하지 않습니다. 불이익이 오고 감옥에 가고 죽을 수도 있고 파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정의를 위하여 입을 다물면 안 됩니다. 의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둠의 세력인 세상과 타협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의(義)의 영적 지도자들은 거짓된 정치적인 말, 백성들을 속이는 정치적인 선동,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민들을 속이는 어둠의 세력을 봅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 대하여 본회퍼 목사님은 여기에 대항하다가 순교합니다. 일제 시대 때 독립선언을 한 33인 중 2/3는 기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빛의 사자로 가장하여 국민들을 속이는 어둠의 세력을 보는 영적 지도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 말씀을 예레미야처럼 그대로 전하므로 국민들을 깨우치고,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깨닫든 못 깨닫든 의의 말씀을 전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선지자와 제사장의 일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예루살렘을 사면으로 포위하고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사면에 토성을 쌓아버립니다(왕하 25:1). 시드기야가 끝까지 강대국 애굽을 의지하니까 그들이 도와주지도 못하게 하고 도움받지도 못하도록 예루살렘 자체를 완전히 포위하여 사면초가에 빠뜨려 버린 것입니다.
현재 남유다를 지켜주는 강대국이 애굽이라고 판단한 지도자 그룹과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오는 바벨론에게 항복을 하여야 한다는 예레미야의 말 중,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어느 것이 옳을까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시드기야와 제사장 그룹들의 말이 맞지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말이 맞다고 하십니다. 혼돈되지 않습니까. 샬롬.

이스라엘이 강대국을 의지하다가 스스로 강대국으로부터 버림받고 멸망하는 이것은 우리의 현실과 똑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서로 원수처럼 여기던 두 나라 즉, 미국과 중국이 협상을 하고 일본이 북한 지도자와 만나기 시작합니다.
한·미·일 동맹을 맺을 때 중국과 러시아를 멀리하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어리석은 지도자들은 그 말을 믿고 중국과 러시아와 교역을 끊어버렸고 북한을 적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미국과 일본은 이것을 이용하여 우리의 빈자리를 치고 들어가 무역 교역을 합니다. 그렇다고 미국과 일본이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하여 철저히 우리를 이용할 뿐입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는 지금 예루살렘처럼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는 사면초가에 빠져버렸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모습들을 보고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바른말을 하는데, 간첩이라고 규정하여 압수수색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여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주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마 5:12). 어떤 의(義)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의로운 행동입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사람들은 절대로 정치하는 자들과 함께 동조하거나 그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종교가 권력을 가진 자들과 무슨 이유를 대어서든지 결탁을 하게 되면 엄청난 살인 집단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정치 지도자들은 이제 곧 다가올 짐승 정부의 개와 같은 자가 되어 버립니다. 핍박을 받더라도 교회는 항상 선지자의 입장에서 바른말을 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의로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라나타.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혔어도 계속해서 조국 유다의 멸망과 심판을 예언합니다(3-5절). 이미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죄악으로 인하여 바벨론의 손에 붙여 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이 말을 반복합니다(렘 21:10, 34:2, 38:18).
예레미야가 항복하라는 극단적인 말을 하니 권력을 가진 자들은 왕을 설득하여 예레미야를 죽이도록 간청을 합니다(렘 38:4).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기들과 같은 마음을 갖지 않거나, 반대되는 말을 하거나, 자기들의 권력에 저항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일반 백성들의 무지함을 충동하고 선동질하여 죽이려고 합니다(행 6:12).
왜 이런 일들이 생길까요.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말과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눅 20:2).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예언을 받아 바른말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거역하고 대항했기 때문에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섭리에 정면 도전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악(惡)이 되기 때문에 신앙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마라나타.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혔어도 계속해서 유다의 심판을 예언합니다(3-5절). 이미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죄악으로 인하여 바벨론 손에 붙여 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이 말을 반복합니다(렘 21:10, 34:2, 38:18).
그런데 다른 선지자였던 하나냐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계시해 주신 말씀이라고 하며, 하나님께서 친히 바벨론의 멍에를 꺾으시고 유다 땅에는 자유가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냐와 예레미야는 서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정반대의 말을 합니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요.
지금 유다의 상황은 바벨론의 속국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임을 자부하는 유다 백성들에게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바벨론의 속국에서 벗어나서 하루속히 자유를 얻기를 간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적에게 항복하라는 극단적인 말을 하니, 권력을 가진 자들은 하나냐의 말을 듣고 왕을 설득하여 예레미야를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여 죽이도록 간청을 합니다(렘 38:4).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 내에는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와 하나냐 같은 선지자가 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려면 먼저 분별의 영이 있어야 하고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야 합니다. 샬롬.

죄를 반복하면 하나님은 선택한 자라도 버려 버리시고(렘 2:37) 자기 백성이라도 심판하시고(렘 21:5) 하나님의 성과 나라라도 돌아보지 않습니다(렘 33:5). 예레미야는 아무리 심한 어려움을 당해도 인간의 상식과 생각을 뛰어넘는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말을 계속 선포합니다. 사람의 귀를 만족시키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먼저 절대 순종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남은 자들, 즉 택함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자기 욕심이나 이익을 위해서 가감하거나 더하면 오히려 자신이 화를 받게 됩니다(계 22:18,19). 결국 예레미야는 감옥에 감금됩니다.
왜 예레미야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미워하고 사람들이 싫어하여 감옥에 가두어 버렸을까요. 나라가 망한다는 예언보다는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예언, 하나님의 말씀이 듣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예언과 하나님의 말씀을 마지막 때에는 듣기 싫어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요 3:19). 세상에 속한 사람들(요 15:18)은 이 세상 임금인 마귀에게 속하여 있습니다(요 14:30). 그래서 세상과 벗 된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씀합니다(약 4:4).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항복한 자들은 바벨론에 끌려가서도 힘들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예언을 무시하고 바벨론에 대항한 자들은 남유다가 멸망할 때 무자비한 죽임과 엄청난 수욕을 당합니다. 샬롬.

예레미야가 목숨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심판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이 토성을 쌓고 성 안의 사람들을 굶어 죽게 하고 체력을 고갈시켜 공격하려고 준비하는데도 왕도, 고관들, 기득권을 가진 종교 지도자들까지 심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잘못된 신앙에 빠져 하나님이 지켜주고 강대국이 지켜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도 세상 끝 날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어떤 징조를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합니다. 왜 8월 15일 광복절만 되면 매년 일본은 태풍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까요. 하나님이 택한 나라를 늘 힘들게 하고 호시탐탐 우리의 땅을 엿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의 경고를 하고 계시는데, 자기 욕심 때문에 이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이 강대국을 의지할 때마다 강대국들이 우리나라를 이용하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어도, 시드기야와 그 일당들처럼 무지한 지도자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결국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이제 곧 닥칠 물과 불의 환난 가운데서 살아나지 못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굳어있거나,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기 때문에, 또는 깨달음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합니다. 또한, 깨달음은 삶의 변화를 동반하기 때문에 삶의 변화를 싫어하여 깨닫지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의 일하심을 보는 눈이 열리고 모든 주의 역사를 보고 깨닫는 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마라나타.

2024년 봄에 중국에 엄청난 비가 내려 그 비 때문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북경에 있는 시진핑 주석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쪽으로 흘러가는 홍수의 엄청난 물길을 서민들이 사는 쪽으로 돌려 둑을 터뜨려 버립니다. 이것이 현실 세상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국민들은 비로 인하여 집이 잠기고 가재도구가 떠내려가도, 이것과 상관없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불어난 물로 인하여 고기들이 도로 위로 올라와 펄떡거리자 이것들을 웃으며 잡는 모습이 보도됩니다. 하나님께서 주님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보여주어도 그 누구 하나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오늘의 현실은 유다가 망하기 직전 상태와 너무나 흡사함을 발견합니다.
말세(마지막 때)에는 여러 가지 징조들을 통하여 주님이 오시는 발자국 소리를 듣게 한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징조들은 인간 성격의 변화, 전쟁, 기근, 지진, 자연재해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더욱 심해지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마저 자기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만들어 버립니다.
종말의 때는 돈을 사랑하고 탐욕하는 마음이 만연하여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그리고 경건함과 신앙심이 쇠퇴하고, 세상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남유다가 망하기 직전, 나라의 멸망이 눈에 보이는데 이 엄청난 무지에서 깨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소리를 듣는 자들은 죽음의 현장에서도 살아납니다. 이제 남은 자들은 노아의 외침과 예레미야의 눈물의 호소를 보고 듣는 믿음이 회복되어 환난과 상관없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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