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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O이란? - 성경 속 궁금한 단어 알려드려요

구원의 밑받침, 회개 (구원은 회개가 밑받침이 되고나서 그 위에 구원의 집을 지어야 흔들림이 없습니다)

by 빛결샘숲 2025.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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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란 '허덕이다', '탄식하다', '신음하다'의 뜻으로 사람의 잘못된 행위에 대하여 슬퍼하고 근심함으로 그 마음이 바꾸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죄에 대한 회개는 죄인이 마음과 전심을 다하여 죄에서 방향 전환을 하고 죄를 혐오하고 죄에서 완전히 그 마음이 전환되는 것을 말합니다(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눅 18:13)

 

그래서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죄가 고백 되어지면 하나님은 긍휼을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회개를 했으면 그 열매로 하나님께 완전히 돌아가야 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맺혀져야 합니다(눅 3:10-14).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눅 3:10-14)

 

회개가 중요한 이유는 회개가 없으면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실수는 교회에서 예수를 영접하는 기도를 시키고, 세례를 받게 하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많은 열심을 내면 구원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가 우선 되지 않는 구원은 전부 거짓입니다.

 

구원은 회개하고 물과 피로 죄사함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는 순서를 통하여 구원이 이루어집니다(막 1:4, 행 2:38, 13:2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막 1:4)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행 13:24)

 

그래서 진정한 회개를 하면 하늘에서는 죄인이 의인된 날을 기념하는 환희의 잔치가 벌어집니다(눅 15:7,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눅 15:10) 

 

그러나 회개는 내가 회개를 하고 싶다고 해서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도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만 할 수 있습니다(행 5:30-32). 샬롬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 5:30-32)

처음 문주란은 겨울을 이기지 못하여 죽어 버렸는데 살아 남은 뿌리가 자라서 꽃을 피웠습니다. 우리도 육은 죽고 영이 살아 꽃을 피웠으면 합니다


성경을 보면 '회개가 이루어지는 통로'를 주님이 설명하시는데

 

1. 성령이 충만한 주의 종들의 말씀을 들을 때 회개가 터지며

2.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3.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주의 백성들을 이끌 때

4. 하나님께서 사랑의 책망을 할 때 아멘함으로 받아들일 때 회개가 임하며

5. 하나님을 만나거나 하나님을 보게 되면 회개가 터지며(욥 42:5-6)

6. 환란이 우리를 회개의 ㅈ리로 인도하며(신 4:30)

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가질 때 회개가 터집니다(고후 7:8-11).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욥 42:5-6)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 (신 4:30)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후 7:8-11)

 

물론 회개할 때 보면 '진실한 회개'도 있지만 '거짓된 회개'와(출 9:27-35), '때늦은 회개'와(히 12:16-17), '잘못된 회개'(민 14:24-45)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화를 당하는 모습도 발견합니다.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모세와 아론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노라 여호와는 의로우시고 나와 나의 백성은 악하도다 여호와께 구하여 이 뇌성과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다시는 머물지 아니하리라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성에서 나가자 곧 내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펴리니 그리하면 뇌성이 그치고 우박이 다시 있지 않을찌라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 그러나 왕과 왕의 신하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 아니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한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모세가 바로를 떠나 성에서 나가서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펴매 뇌성과 우박이 그치고 비가 땅에 내리지 아니하니라 바로가 비와 우박과 뇌성의 그친 것을 볼 때에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강케 하니 그와 그 신하가 일반이라 바로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출 9:27-35)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 12:16-17)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찌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수 사십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찌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고하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산꼭대기로 올라가며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 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모세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치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그들이 그래도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아말렉인과 산지에 거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쳐서 파하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민 14:24-45)

 

지금은 회개하고 구원의 문제를 정확하게 하여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며(막 1:15), 회개의 기회를 하나님이 주고 계시고(계2:21), 회개하라고 하나님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우리를 회개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눅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32)

 

그러면 사람들이 왜 회개하지 않을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기 때문이요 (시 106:24-25)

2. 고의적인 불순종 때문이요 (렘 44:15-16)

3. 목이 곧아서 즉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렘 8:5-7).

4. 안식일과 성물을 더럽히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겔 22:8).   

 

저희가 낙토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시 106:24-25)
때에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거하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렘 44:15-16)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렘 8:5-7)
너는 나의 성물들을 업신여겼으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으며 (겔 22:8)

 

회개치 아니하면 화가 있고(마 11:21) 촛대가 옮김을 당하며(계 2:5)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도적같이 주님이 임하므로 환난에 떨어지게 됩니다(계 3:3).  

화가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마 11:21)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5)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계 3:3)

 

특별히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선택된 사람들은 자신의 죄뿐만 아니리 민족적인 죄와 타인의 죄까지 속죄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민 21:9, 단 9:3-7).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 21:9)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데 있는 자나 먼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단 9:3-7)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회개가 밑받침이 되고나서 그 위에 구원의 집을 지어야 흔들림이 없습니다. 샬롬

페트병에 상추를 시험 삼아 심어 보았습니다.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우리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아무리 좋운 명품이라도 그것을 만든 주인이 있듯이 사람을 만든 분도 주인이 있는데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물건을 만들다 보면 그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물건을 폐기처분 하듯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잘못된 사람을 폐기처분하여 버리는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반면에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은 그가 자신의 마음에 들면 그 사람을 지켜주고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늘 간섭을 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면 그냥 폐기처분하여 버리면 그만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10점 만점에서 9점이나 9.9점을 쏘아도 10점 만점이 되지 않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과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그 어떤 것이라도 죄라고 규정하십니다.   

 

구원은 내가 죄인이냐 아니냐 하는 깊은 고민이 있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착하고 어질고 도덕적인 사람은 구원받기가 힘이 듭니다.  

 

왜 사람들이 죄를 지을까요. 죄의 생명이 사람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것은 포도의 생명이 그 나무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죄의 생명이 있으니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어 하나님의 영광에 갈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에게 있는 죄성을 사람의 힘으로는 제거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와서 죄성을 없애고 하나님의 생명을 부어 주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을 받으려면, 즉 구원 받으려면, 반드시 회개를 하여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구원을 완성하기 위한 기초를 단단히 놓는 것과 같습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지진이나 자연재해에 집이 무너지듯이 회개의 경험이 없는 자는 구원을 제대로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회개를 영어로 repent라고 하는데 죄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꾸어져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180도 바꾸어진 모든 변화를 말합니다.  

 

회개가 이루어지면 죄를 지으면 불편하고, 죄를 미워하고 적극적으로 죄에서 떠납니다.

 

그러니까 회개하면 인생의 목적과 삶의 목표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바꾸어집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고 회개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는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샬롬.

능소화가 장마 속에서도 피었습니다. 꽃에 독이 있으니 만지고 눈을 비비면 안됩니다. 우리 역시 죄없는 것 같지만 숨어있는 죄가 많지 않을까요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를 베드로는 모두가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사람들을 회개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공생애를 시작할 때 예수께서 제일 첫 번째 하신 말씀도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마 9:13, 4:17).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13)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마 4:17)

 

우리는 가끔 회개에 대하여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행실을 고쳐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를 버리는 어떤 행위를 하는 것도 회개가 아닙니다. 

 

사울은 다윗의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회개한다고 했지만, 즉 죄를 인정하는 것도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바로처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도 회개가 아닙니다(출 9:6).

이튿날에 여호와께서 이 일을 행하시니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 자손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아니한지라 (출 9:6)

 

가룟유다의 경우 예수께 행한 자신의 잘못을 알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것도 회개가 아닙니다.   

 

사을도 바로도 가룟유다도 잘못울 인정하고 힘들어 했지만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던 자가, 예수 믿는 것이 회개라고 하는데 이것도 회계가 아닙니다.   

 

또 어떤 이는 마음을 바꾸고 믿기만 하면 된다라고 하는데 이것도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란 성령께서 그 마음을 주장하여 주님께로 그 마음이 완전히 180도로 변하여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살전 1:9, 행 9:17, 눅 19:8-9).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전 1:9)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행 9:17)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살전 1:9)

 

즉 회개에 합당한 열매, 반드시 행동의 변화로 나타나지 않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샬롬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전부 이단의 교리입니다. 

 

그러면 왜 어떤 성경구절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기록해 놓았을까요(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에는 먼저 회개가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참된 구원에는 반드시 회개가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다섯 남편을 가진 것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고백하게 했고, 빌립보 감옥의 간수도 감옥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건을 보고 먼저 회개하고 구원의 방법을 물을 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회개란 죄를 완전히 닦아내는 것과 같기에 회개가 없으면 죄성이 사라지지 않기에 그는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반드시 회개를 위한 죄를 지적하는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회개에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자신의 죄가 드러나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간절함으로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회개의 은혜와 함께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일생에 단 한 번의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하게 하십니다(행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8)

 

문제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했지만 우리는 살면서 계속 죄를 짓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럴때는 주의 성령께서 매 순간마다 말씀과 사건을 통하여 죄를 지적하여 주시는데 이때 우리는 즉시 회개하여야 합니다.

 

내가 주님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을 행할 때마다 진정한 회개를 위한 주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은혜란 보상이나 행위나 조건을 따르지 않고 조건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주시는 선물을 말합니다.

 

한번 회개한 것을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가 지적될 때마다 그냥 넘어가지 마십시오.

 

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때 일곱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매 순간마다 회개하여 구원을 빼앗기지 말고 이긴 자가 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샬롬.

 

https://youtu.be/0aw1mOAV-Tg?si=HkgfnK2z23cONPOn

 


모든 물건마다 만든 사람이 있고 그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다가 잘못되면 폐기처분하거나 수선하기도 합니다.

 

사람도 만든 분이 있기에 사람이 부실하거나 잘못되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심판하여 버리시거나 수선하여 다시 쓰실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들 때 모두가 구원 받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있어 구원의 가장 큰 방해물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입니다.

 

자유의지 때문에 사람들이 마음대로 하여도 하나님은 간섭하지 않고 있다가 그냥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나면 폐기처분하여 버립니다.

 

죄란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즉 5×5=25인데 하나가 모자란 24가 되거나 하나가 많은 26이 되어도 틀린 답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은 전부 죄입니다.   

 

죄는 간격의 차이가 크다 작다는 것이 아니라 1mm라도 하나님의 영광에서 벗어나면 죄가 되어 버립니다.  

 

구원받기 제일 힘든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인간적으로 착하고 어질고 도덕적인 자들입니다.

 

그들은 죄를 짓는 죄인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과나무에는 사과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사과 열매가 맺히듯이 죄를 짓는 것은 죄의 생명이 그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죄의 열매를 멪는 것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지옥가는 것이지 구원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지옥가지 않습니다.   

 

죄의 열매 맺는다고 잔가지를 아무리 쳐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죄짓는 생명을 끊어 내어야 죄가 없어집니다.

 

성경에서 죄인이라고 할 때는 죄의 생명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면 죄의 생명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물건을 만든 회사가 물건을 수리하고 AS 하듯이 사람도 사람을 만든 분만이 죄인을 AS 할 수 있고 수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구원은 죄 문제로 자기의 앞날을 깊이 생각하고 죄를 회개하고 죄의 생명을 구원의 생명으로 바꾼 자만이 구원받습니다.   

 

즉 돌감람나무는 참감람나무에 접붙혀져야 참감람나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원리와 같습니다.  

 

성경에서 회개는 구원의 기초로, 믿음은 구원의 방법으로 설명합니다.

 

기초가 부실하면 집이 무너지듯이 회개라는 기초가 없기 때문에 오래동안 교회를 다녀도 시험이 들고, 믿음이 요동치고, 헷갈리고, 신앙생활을 제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예수 믿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회개란 죄와 하나님의 대하여 생각이 바뀌고 삶의 변화가 오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지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죄를 미워하고 떠나는 것이 회개입니다.   

 

사단이나 지옥에 대한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그의 길에서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회개한 자는 인생의 목적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마 6:33-3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33-34)

 

삶의 목적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동으로 즉시 바꾸어지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기에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나의 본성을 바꾸어 주셔야 합니다.   

 

따라서 구원 받으려면 반드시 먼저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됩니다(행 26:20-21).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행 26:20-21)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도 우리 모두가 멸망치 않도록 하나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이것은 오늘 날 교회 안에는 회개치 않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가 갈 때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회개에 대한 열매는 의 식 주라는 우선순위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한 것으로 우선순위가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제일 첫 마디가 회개하라는 말씀이었고(마 4:17),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9:13). 샬롬.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마 4:17)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13)

 

https://youtu.be/s8O6FEmOHMQ?si=63QqqYwa11Y59ZtT

 


베드로 사도는 주의 재림이 늦어지는 이유를 설명할 때 주께서 아무도 멸망하지 않도록 회개하기를 기다리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9)

 

회개하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적 생애를 시작할 때 첫 외침이었고 예수님께서도 직접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죄인을 회개시키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마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 9:13)

 

그래서 회개치 아니하면 갑자기 멸망하는 사람들처럼 망한다고 기록합니다. (눅 13: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3-)

 

우리가 회개에 대하여 착각하는 것 중에 몇 가지가 있는데   

1. 스스로 개선하고 개혁을 하거나 행실을 고치는 것 혹은 점점 고쳐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2. 참회하고 난 뒤, 부속적인 행위로 카톨릭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한 행위를 하는 것도 회개가 아닙니다.   

3. 사울처럼 다윗의 말을 듣고 후회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것도 회개가 아닙니다.   

4. 바로처럼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도 회개가 아닙니다(출 10:16).   

5. 가룟 유다처럼 자기 잘못을 알고 후회하며 양심의 가책을 받아 엄청난 고통을 가지는 것도 회개가 아닙니다. 가룟유다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면서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고 스스로 자살하고 맙니다.   

6. 믿지 않는 자가 믿는 것을 회개라고 하는데 이것도 회개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마음과 혼과 육이 주님께로 온전히 돌아서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마 3:2-7).   

 

탕자가 자기 자리에서 완전히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나(눅 15) 삭개오처럼 회개했으면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회개입니다. (눅 19:8-9)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 19:8-9) 

 

회개는 반드시 행동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요 3:16을 보면 회개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합니다.   

 

행 16장에서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왜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에게는 이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먼저 맺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수가성 여인에게도 주님은 회개하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여인은 영생의 물을 마십니다. 

 

수가성 여인과 주님은 대화 중에 여인에게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길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요 4).  

 

회개가 없는 구원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교회에서는 말씀으로 양심의 가책을 주는 죄를 지적하여 주어야 합니다.

 

물론 구원을 위한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일생에 단 한 번만으로 끝이 납니다. (행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1:18)

 

그러면 구원받은 자는 더이상 회개할 필요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 받았으면서도 불구하고 계속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이런 죄에 대하여 주의 성령께서 혹은 말씀으로 지적하여 주시면 우리는 반드시 회개하여야 합니다(고전 10:1-12). 

 

그렇지 않으면 광야에서처럼 구원받아 놓고서도 멸망한 자의 길로 들어서선 것과 같습니다.   

 

구원받은 자도 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늘 죄에 빠질 수가 있고 또 죄를 짓기 때문에 회개가 늘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보십시오. 주님은 각 교회마다 회개하여야 할 것을 지적하시면서 계속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생명의 회개(행 11:18)를 하여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육체 때문에 계속해서 죄를 짓습니다. 주의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계속해서 말씀을 통하여 죄를 지적하여 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 오실 때는, 정말 흠과 점 하나 없는 죄와 상관없는 자가 되어 모두가 들림 받아 새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샬롬.

 

https://youtu.be/_r4Sgi6k2M8?si=8VHQhhzpqI-rt_C6

 


죽은 자라고 하는 것은 죄값에 메여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구원이란 이런 죽음의 권세 아래에서 살려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가 왜 구원자일까요. 그분은 죽음의 권세 아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원이란 바로 부활하는 것, 즉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은 구원의 첫 열매를 이루었으니 우리는 구원의 첫 열매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고 이 구원은 예수의 재림 때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구원에 대한 개념은 각 종교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악을 행하는 것보다 선한 행위가 많으면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행위와 상관없이 죽음을 이기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보수란 행위에 대한 대가로 지불 되는 것이고, 은혜란 거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자의적인 사랑으로서 대상의 가치나 공적에 상관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사랑을 말합니다.   

 

물론 은혜에도 특별 은혜 즉 하나님이 구원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택적 은혜가 있고 모든 사람들이 다 받는 일반은혜가 있습니다.   

 

세상의 시스템은 공짜가 없기 때문에 그토록 귀한 구원을 거저 준다고 하니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와 클래스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구원은 공짜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꼭 무슨 행위가 있어야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햇빛, 산소, 천국, 영생이라는 것은 너무 귀중한 것이지만, 사림이 도저히 돈으로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과 연결된 필수적인 것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속 죄를 지어도 구원은 공짜일까요.   

 

하나님의 은혜란 사람이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에 따라 거두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은혜를 거두어 간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내가 죄를 지었든, 짓지 않았던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어떤 선한 행위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귀는 자꾸만 우리 죄의 행위를 들추어내어 죄의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와 상관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10,000원을 그냥 줄 때 어른들은 왜 내게 10,000원을 주느냐고 따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내가 그 돈을 왜 받느냐면서 안 받는 사람도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고맙습니다하며 인사하고 그냥 받습니다.   

 

즉 하나님은 믿는 자마다 구원받도록 은혜를 준비하여 놓고 은혜 받는 자마다 구원을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구원이 귀해서 거저 준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면 강제적으로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내 죄 때문에 예수의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지는 은혜가 임한 자에게만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사람이 회개했으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하듯이 구원 받은 자는 구원 받은 열매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순종과 착하고 선한 행위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엡 2:8-10).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2:8-10)

 

세상의 종교는 먼저 선한 행위를 하여야 구원받지만 우리는 구원받았기 때문에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 세상 종교와 다른 것입니다 .   

 

즉 구원받은 자들은 선한 행위를 하도록 재창조 되었기 때문에 구원의 땅에 분명히 서 있기민 하여도 좋은 열매가 30, 60, 100배의 결실이 맺힙니다.

 

그러면 구원의 열매는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어떻게 제대로 맺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예배를 통해서 주님께서 각사람마다 가슴에 '레마'라는 씨를 심어주십니다. 샬롬.

https://youtu.be/aON0UqPZTsQ?si=LFAcFIThug3ZIekL

 


예수님의 단번에 죽으시는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죄가 일시에 처리되었기 때문에 영원한 구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들인데 구원을 위한 예수의 탄생 죽음 부활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새언약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맺어집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처럼 사람도 영 혼 육의 전인격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천국을 가든, 지옥을 가든 사람은 전인격체로 결정되어집니다.  

 

첫째 부활은 구원받은 자들을 중심으로 예수님 부활 때, 휴거 때, 예수의 재림 때 이루어지고 둘째 부활은 죄인들이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부활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을 표현할 때는 혼과 육으로 표현합니다. 베드로가 한번 설교할 때 3000명이 구원받았다는 말은 3000의 혼(행 2:41)이 구원받았다는 뜻입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 2:41)

 

야고보는 구원에 대하여 돌이키는 영혼이라고(약 5:19-20)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약 5:19-20)

 

로마서 8장에서 구원받은 자들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영과 혼의 정죄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도 죄를 지으면 반드시 몸의 징계(정죄)가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도 연약한 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신하고 불순종의 행위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완전한 구원은 영 혼 육의 온전한 구원입니다. 

 

그러나 몸이 구원 받지 못하면 혼과 영은 반드시 구원 받아야 합니다.  

 

출애굽한 것 자체가 구원이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고전 10).  

 

구원은 어린 양의 피흘림으로 단번에 이루어졌습니다.  

 

민수기는 구원 받은 자들의 죄악을 기록하며 그 죄에 대한 육체의 징계를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모세를 대항한 미리암에 대한 육체적인 징계가 기록되고 10명의 정탐꾼과 백성들의 원망으로 40년 동안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신은 광야에서 죽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이 나오고 바알브올에서 음행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런 자들은 구원에서 떨어져 나갔을까요. 

 

출애굽한 자들은 분명히 구원받았다고 고린도전서 10장에서 기록합니다. 

 

그렇지만 육체로 범죄한 자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광야에서 전부 죽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일들은 말세를 만나 살아가는 우리들의 경계라고 말합니다(고전 10:1-12).  

 

소돔 고모라의 롯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죄악과 함께 분명히 망한 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의인 롯이라고 기록합니다(벧후 2:6-7).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벧후 2:6-7)

 

교회 내에서 엄청난 음행을 저지른 자에 대하여 그 영은 구원받고 육체는 죽었다고 기록합니다(고전 5). 

 

이런 자들을 향하여 고전 3:12-15을 보면 불 가운데서 겨우 구원받은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처음 구원받으면 영적 어린이 상태, 즉 도의 초보에 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반드시 영적 성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즉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도 자라지 못하여 영적 미숙아가 되어 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주 앞에 서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까요.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보면 성전을 더럽힌 자는 누구든지 죽임을 당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았으면서도 육체로 범죄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 육체는 죽습니다(고전 3:16,17, 11).   

 

마 25장에 보면 미련한 다섯 처녀를 향하여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주님은 처음부터 구원받았다고 하는 저들을 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구원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척 착각하고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소속과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확실하게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죄는 다 사함 받지만 성령 훼방죄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역사를 귀신의 역사나 사단의 역사로 보는 자들은 반드시 망한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구원받은 자들에게서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시는 분입니다.   

 

구원은 영원합니다(히 5:8-9, 7:25, 9:12). 그러나 잘못하면 육체의 징계가 있습니다(히 12).   

 

그래서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는 자는 사생아라고 기록합니다(히 13:5).  

 

구원에 대하여 맛만 보고 먹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히 6:4-6).

 

구원 받고도 오래되어 선생이 되지 못하면 어찌될까요(히 5:12).   

 

주님은 구원 받았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장성한 믿음의 큰 분량으로 자라 도의 완성자가 되기를 바랍니다(히 5:14).  

 

하나님의 성전된 육체가 범죄하여 그 육체가 죽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영 혼 육의 완전한 구원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완전한 구원의 시작이 회개에 있습니다. 샬롬

 

 

[짧은 영성의 만남] - 새 언약을 주시는 이유(렘 31:31-34) - 베리트 하다샤 בְּרִית חֲדָשָׁה

 

새 언약을 주시는 이유(렘 31:31-34) - 베리트 하다샤 בְּרִית חֲדָשָׁ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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