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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내 인생의 흉년 속에서도 '백 배의 복'을 받는 비결: 하나님의 긍휼과 바라크

by 빛결샘숲 2025.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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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벽 재건 후의 큰 역사 (느 9:1-39)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한 후에 가장 큰 부흥의 역사는 말씀을 경외하고 말씀을 밝히 깨닫는 역사가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낭독하자 백성들은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다는 말(느 8:3)은 모든 백성들의 귀가 그 율법책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들은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에스라가 율법 책을 읽을 때 모든 백성들이 일어섭니다(느 8:5). 하나님의 말씀을 앉아서 듣지 않고 서서 들었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경건한 자세를 취했던 것입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전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느 8:3)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느 8:5)

 

그리고 율법이 깨달아질 때(느 8:7-9) 그 말씀을 듣고 그들은 전부 울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자신들의 죄악과 무지와 약함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느헤미야는 회개하는 저들을 향하여 '오늘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울지 말라 이 날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 힘이 되느니라'(느 8:9)고 격려합니다. 힘이라는 말은 기쁨, 피난처, 요새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우리 힘이 되어 주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요새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샬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아는 것이 나의 힘이 되고 기쁨이 되고 요새가 되고 피난처가 됨을 발견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나의 방파제가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생기고 기도의 힘이 생기고 고난도 이기게 됩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사랑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라헬에 대한 야곱의 사랑처럼 어떤 힘든 시간도 순간적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창세기 29:20절 이하를 보면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머슴살이한 7년 기간이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행복의 시간으로 바꾸어져 버립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어떤 힘든 시간도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립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 (창 29:20)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힘의 원천이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전능자의 손이 야곱에게 있었듯이 전능자의 힘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임합니다. 이런 일의 시작이 여호와의 성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아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시편 37:4절에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것이라'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작곡가 하이든은 작곡할 때 하나님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면 자기 마음에 기쁨이 솟아나고 악보는 이미 춤을 추는 것 같다고 간증합니다. 그래서 하이든의 음악은 다른 음악가들에 비하여 기쁨을 노래하는 것이 많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져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 저는 이 말씀을 레마로 가슴에 안습니다. 샬롬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았다(느 8:12)고 하는 말은 이해한다, 통찰한다, 깊이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깊이 깨달아지니 백성들은 더 듣기를 원하고 사모하여 에스라가 있는 성전으로 모입니다(느 8:13).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그 읽어 들린 말을 밝히 앎이니라 그 이튿날 뭇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의 곳에 모여서 (느 8:12-13)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니 그 다음부터는 자발적으로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키지 못했던 초막절을 알고 다시 지키기 시작합니다(느 8:14-17).

율법책을 본즉 여호와께서 모세로 명하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은 칠월 절기에 초막에 거할찌니라 하였고 또 일렀으되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산에 가서 감람나무 가지와 들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와 기타 무성한 나무 가지를 취하여 기록한바를 따라 초막을 지으라 하라 하였는지라 백성이 이에 나가서 나무 가지를 취하여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광장에 초막을 짓되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느 8:14-17)

 

놀랍게도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하여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때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호수아 이후부터 960년 동안 초막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천 년 만에 하나님 말씀이 밝히 깨달아지니 초막절을 다시 지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이 밝히 깨달아질 때 진정한 회복이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고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자들만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귀중함을 알게 되면 자신의 모든 곳을 투자해서라도 그 나라를 붙들기 때문입니다. 샬롬.


하나님의 말씀이 밝히 깨달아지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족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 9:2절에 자복한다는 말은 '던지다', '쓰다'라는 말인데 자기 죄와 쓰린 허물을 하나님 앞에서 던져 버렸다는 말입니다.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며 (느 9:2)

 

죄를 자복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먼저 돌을 던지고 자신의 심장에 화살을 쏘듯이 자기의 죄를 먼저 토설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조의 죄, 즉 자기들의 부모 조상들의 죄까지 자복하게 됩니다. 죄가 자복되니 가장 먼저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여 버립니다(느 9:2).

 

죄가 무엇인지 발견되어지니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변질시키는 자들, 내게 은혜가 되지 않는 자, 내게 영적 쓴 물을 주고 쓴 뿌리가 되는 자들과는 모든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이들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율법책을 읽고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죄를 자복하기 시작합니다.

 

느헤미야 9:3절에 나오는 낮 4분의 1은 3시간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은 3시간 동안 서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3시간 동안 죄를 자복합니다. 회개는 하나님 말씀이 근거되어야 제대로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느 9:3)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지니 백성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송축하기 시작합니다(느 9:5). 회개가 분명하지 않으면 예배를 제대로 드릴 수가 없고 찬양이나 기도 또한 제대로 할 수가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회개의 능력이 임하는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샬롬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느 9:5)

송축한다는 말은 '바라크'라는 말로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할 때 주어지는 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하면 내가 송축하고 찬양하는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라크의 복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송축할 때(느 9:6-15)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구속사의 역사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광야 40년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하나님께 범죄한 내용을 고백합니다(느 9:6-31).

 

그러자 하나님께 찬양하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긍휼의 복, 바라크의 복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고 회개하기 시작할 때(느 9:6-31) 그들이 고백한 내용을 보면 24개의 범죄와 48개의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끝없는 범죄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긍휼이란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 구제해 주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를 말합니다. 샬롬


인간의 끝없는 범죄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은 더 크게 나타납니다.

 

긍휼이란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 구제해 주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십자가의 긍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자비이기에 자신의 부요함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는 매어 달리는 자에게는 재물을 얻는 능력(신 8:18)과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최고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풍성한 재물을 얻어 하나님의 긍휼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 대표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솔로몬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창대함를 받았고(창 24:35) 이삭은 흉년 가운데서도 백 배의 복을 받습니다(창 26:12).

여호와께서 나의 주인에게 크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시되 우양과 은금과 노비와 약대와 나귀를 그에게 주셨고(창 24:35)

 

솔로몬이 받은 복은 천하 만민이 그를 섬기러 오며 그가 가진 금과 은과 보물들은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긍휼을 헤세드()' 라고 합니다. 헤세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언약적 사랑, 자비, 인애, 긍휼 등을 포괄하는 말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시편 136편은 하나님의 헤세드가 우리에게 영원하다고 찬양합니다. 오늘부터 이 긍휼의 은총이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긍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9:15,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긴다'고 기록하고 '하나님의 긍휼은 무궁하시기에 우리가 범죄해도 진멸하지 않는다'(애 3:22)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긍휼은 재물의 복에 이어 병을 고치고 근심을 면케 하는 복까지 더하여 주십니다(빌 2:27).

 

결국 하나님의 긍휼의 복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헌신하는 복까지 가지게 됩니다(롬 12:1). 그래서 유다서 1:21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복은 재물을 얻고 문제 해결의 복으로 주어지고 이 복을 제대로 받은 자는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헌신하는 복까지 받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긍휼의 복을 받으려면 제일 먼저 하나님 말씀을 밝히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 힘이 되는 여호와의 성일을 지키며,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다윗은 시편 103편 13-14절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노래합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아버지가 연약한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그렇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03:8에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라고 노래합니다. 다윗은 평생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구하고 노래합니다. 이 하루도 긍휼의 하나님을 구함으로 하늘과 땅의 복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긍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9:15, 16절을 보면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긴다'고 기록하고 '하나님의 긍휼은 무궁하시기에 우리가 범죄해도 진멸하지 않는다'(애 3:22)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긍휼은 재물의 복에 이어 병을 고치고 근심을 면케 하는 복까지 주십니다(빌 2:27).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빌 2:27)

 

결국 하나님의 긍휼의 복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헌신하는 복까지 가지게 됩니다(롬 12:1). 그래서 유다서 1:21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긍휼의 복은 재물과 함께 문제 해결의 복으로 주어지고 이 복을 제대로 받은 자는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헌신하는 복까지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중요한 것은 이런 엄청난 긍휼의 복을 받으려면 제일 먼저 하나님 말씀을 밝히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일을 지키므로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 힘이 되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긍휼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온 가족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샬롬


하나님을 제대로 송축하는 자가 되면 바라크의 복을 먼저 받게 됩니다. 나의 죄보다 더 큰 하나님의 긍휼의 역사가 나에게 일어나면 우리도 이삭처럼 흉년 가운데서도 백 배의 복을 받을 수가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부딪히는 모든 문제까지 해결 받는 복까지 받게 됩니다.

 

긍휼은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성품이 아닙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예수님의 성품이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가장 먼저 나타난 말씀은 출애굽기 33:19절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며 말씀을 받아들일 때 주어지는 바라크의 복은 하나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복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후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믿는 아브라함에게는 바라크의 복을 통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하고 자손의 복을 통하여 대 민족의 시조가 되게 하십니다.

 

바라크와 긍휼의 복이 유다 사람들이 마지막 성벽 공사를 마치고 하나님만을 나의 힘으로 고백할 때 주어집니다. 여호와의 성일을 기다리는 오늘, 긍휼과 바라크의 복이 준비되어 사모하는 자마다 거룩한 주일 예배를 통하여 주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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