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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제단의 뿔에 나를 매소서 (레 1:8)] - 일생을 주의 은혜에 빚진 자 되어: 제단 뿔에 매인 인생의 행복

by 빛결샘숲 2026.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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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8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는 정결치 않으면 하나님께 나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 정결의 유일한 표현이 제사와 제물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정결한 삶을 살았고 정결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삶을 날마다 살았습니다.

 

정결하려면 먼저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이 순결해야 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즉 우리 몸은 항상 주 앞에서 깨끗한 그릇이 되고 깨끗한 손과 발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의 은혜로 정결해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결한 삶을 살아야 우리 삶이 깨끗하여 우리 마음과 몸이 하나님께 바쳐지는 산 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레위기 1:8절에 보면 제사장은 각을 뜬 제물과 머리를 번제단 위에 놓고 불에 태우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제단 위에 제물을 놓을 때 짐승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각을 맞추어 제단 위에 벌려 놓아야 합니다.

 

이 장면에 대하여 시편 118:27절에 보면 '하나님은 여호와시로다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희생을 제단 뿔(케렌, קֶרֶן)들에 맬지어다'라고 기록합니다.

시편 118:27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자는 그 제물을 밧줄로 제단 뿔에 잘 묶으라는 것입니다.

제물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수가 있고 타다가 밖으로 튀어 나갈 수도 있고 실제 모습으로 맞추어 놓았더라도 불에 타다가 무너지거나 흐트러지거나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일부는 제물을 던져 불에 태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핵심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반드시 하나님께 흐트러짐이 없이 마지막까지 불에 다 타서 하나님의 향기가 될 때까지 온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제단 중심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즉 우리 역시 항상 제단의 줄에 묶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가 항상 사슬이 되어 우리를 지켜 주시도록 제단 줄로 꽁꽁 묶여있는 삶, 이것이 정결한 삶이요, 생각만 하여도 행복한 삶입니다. 샬롬


제단 뿔에 매인 행복을 아는 사람 즉 하나님의 은총을 아는 사람이 지은 찬송이 찬송가 28장입니다.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몸은 연약하여 범죄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라는 찬양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깊은 자라 할지라도 은혜의 사슬에 매여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실족할 수 있고 배도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항상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 몸을 제단 뿔에 매어 놓고 생활하여야 합니다.

 

히브리서 6:4-6을 읽어 보십시오.

'이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선물을 맛보며 성령님께 참여한 바가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본 자들이 만일 떨어져 나가면 다시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니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을 새로 십자가에 못 박고 공개적으로 그분을 모욕하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우리가 은혜의 사슬에 단단히 매여있다고 믿고 있어도 실제로는 허술하게 매어 있다면, 즉 죄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육욕에 현혹되어 범죄하여 은혜의 사슬에서 떨어져 버릴 수가 있습니다.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갑자기 목이 멥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는 주의 은혜의 사슬에 매인 인생이었습니다.

사슬처럼 매여 있어서 때론 버겁고 불편했기에 벗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나를 매고 있는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주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여기와 있는 것도 주의 은혜요, 내 남은 생애도 은혜입니다.

은혜가 내 생애를 만들었고, 또 남은 생애를 은혜가 만들 것입니다. 아멘

히브리서 6:4-6


번제단의 뿔의 기능은 희생제물을 붙들어 매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때도 결박하여 나무 위에 놓고 아브라함은 칼을 들고 아들을 잡으려고 했습니다(창 22:9-10).

이삭이 죽음이 두려워 온전한 번제물이 되지 못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창 22:9-10)

 

내가 하나님의 산 제물이 되는 순간부터 나에게는 어떠한 자유나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가 없도록 제단의 뿔에 붙들어 매어야 합니다.

 

제단에 올려놓은 제물은 죽음이 두려워 언제든지 뛰어 나가거나 발버둥 치므로 그 제물이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에 제물은 반드시 제단의 네 뿔에 밧줄로 붙잡아 매어야 합니다.

우리는 곧잘 은혜받고 뜨겁게 신앙생활 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배도하거나 시험에 들어 넘어지는 것을 많이 발견합니다.

이것은 영적 깊은 자라고 하여도 제단의 뿔에 날마다 은혜의 사슬로 매지 못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혜의 사슬에 제단 뿔에 제대로 묶여 있는가를 날마다 확인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한순간에 주님을 세 번이나 그것도 맹세하며 부인하는 엄청난 죄를 짓습니다.

이것은 제단의 뿔 즉 은혜의 사슬에 우리 역시 꽁꽁 묶여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우리도 배도할 수 있고 한순간에 하나님의 자녀로부터 벗어나 어둠의 자식이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쇠사슬은 묶거나 매어두는 도구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마치 쇠사슬처럼 강력하게 우리를 붙들어 묶어주기를 기도합니다.

 

틈만 나면 연약하여 쉽게 죄를 짓는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라는 쇠사슬로 묶어, 하나님께 매어달려 살아가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오늘도 담아봅니다. 샬롬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입니다.

여호와는 언약의 이행자라는 뜻이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란 뜻입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은 여호와이십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 즉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스스로 계신 분이란 영원히 지존하시는 분으로서 영원한 현재의 분이라는 말입니다.

과거 미래도 아니고 현재 모든 언약을 이행하여 주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에서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절대 주권자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시편 89:8절을 보면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시여 주와 같이 능하신 자가 누구리이까" 고백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릴 수 있는 행복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산 제물이 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절대 주권, 즉 구원의 문제, 선택의 문제, 의식주 문제까지 하나하나 행사하여 책임져 주십니다.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한 자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시 89:8)

 

뿐만 아니라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죽으시고 그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2:24절에 보면 "그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베드로전서 2:24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사랑을 아는 바울은 "나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진실된 고백을 합니다(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롬 14:8)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하나님의 절대적 희생과 사랑으로부터 기인합니다.

과거 미래가 아니고 현재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그 아들 예수까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 사슬에 오늘, 제 자신을 스스로 산 제물이 되기 위하여 맵니다.

 

은혜의 사슬, 제단 뿔에 매인 자신을 보니 목이 멥니다.

그리고 저를 가만히 쳐다보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눈이 보입니다. 샬롬


예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죽으신 것은 제단 뿔에 매여 온전히 죽으시는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우리 죄를 담당한 속죄물이 되신 것을 계시합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요 14:16).

보혜사 성령님께서 그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면 내가 죄인임을 확실하게 보여지므로 바울처럼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6)

 

그래서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라고 고백합니다(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은혜를 아는 사람은 오늘도 제단의 뿔에 나를 매어달라고 기도하는 삶을 삽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자신의 가장 행복한 삶과 시간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희생의 제물은 제단 뿔에 매이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산 제물이 되려면(롬 12:1) 제단 뿔에 든든히 매어져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죽고자 하여도 실제로 피를 흘리는 희생이 시작되거나 죽음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어지면 약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라 할지라도 엄청난 시험을 받을 때 주를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합니다.

우리가 시험에 들었다는 말은 제단에서 튀어 나가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제단 뿔에 온전히 매인 내 삶이 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육 간의 내 삶을 완전하게 보장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참 자유는 제단 뿔에 매이는 데서 누려집니다."

 

주의 귀한 은혜 받고 일생 빚진 자 되네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

우리 맘은 연약하여 범죄 하기 쉬우니

하나님이 받으시고 천국인을 치소서.

아멘

https://youtu.be/I-BjPHGRCcw?si=xo0vDx1H5X4bZW7i

 


제물들은 처음에는 돌이나 흙으로 만든 원래의 제단 위에 붙들어 매어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제물들은 성막 뜰에 있는 제단 위에서 처음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성막이 만들어지고 성전을 짓고부터 도살의 장소가 "여호와 앞 단 북쪽"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레 1:5-11).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찌니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레 1:5-11).

 

그러나 이곳이 너무 붐빌 때는 제물이 임시로 제단 뿔에 동여매어져 죽임을 당합니다(시 118:27).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찌어다 (시 118:27)

 

이것은 모든 제물들은 하나님의 능력 아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예수께서 모든 승리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노래는 시편 기자의 예언인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시 118:26-27, 마 21:9, 23:39)라는 것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머물러 있기를 바랐던 곳도 제단의 뿔에 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산 제물"(롬 12:1-2)로서 자기 자신을 사랑의 줄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 갈보리의 십자가에 동여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성령께서는 제단의 뿔 즉 은혜의 사슬로 자신을 스스로 매일 것을 권유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처럼 우리 자신과 우리 모든 소유를 하나님의 제단 위에 올려놓아 매이는 것을 소망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주의 사랑을 아는 자는 주께 빚진 마음과 연약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을 주께 묶어두고 그 은혜가 떠나지 않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스스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유혹, 하나님의 은혜의 중요성과 그 은혜가 묶어두는 힘을 발견하는 귀한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시간이 흐를수록 제단의 뿔은 속절없는 사람들을 위한 피난처로 사용되었습니다.

복수를 피해 도망가는 도망자들이 제단의 뿔을 붙듦으로써 자기 자신을 여호와의 보호 아래 놓고자 노력했습니다(암 3:14, 렘 17:1, 왕상 1:50-55).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단들을 벌하여 그 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암 3:14)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렘 17:1).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혹이 솔로몬에게 고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솔로몬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왕이 오늘날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솔로몬이 가로되 저가 만일 선한 사람이 될찐대 그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저의 가운데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사람을 보내어 저를 제단에서 이끌어 내리니 저가 와서 솔로몬왕께 절하매 솔로몬이 이르기를 네 집으로 가라 하였더라 (왕상 1:50-53)

 

그러나 회개하지 않은 자와 범죄한 자에게는 이 피난처가 무효였습니다(출 21:13-14).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짐짓 모살하였으면 너는 그를 내 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찌니라 (출 21:13-14)

 

살인자 요압이 거기로 도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제단에서 끌어내어 죽이라고 명령하십니다(왕상 2:28-34).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 혹이 솔로몬왕에게 고하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로되 너는 가서 저를 치라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저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고하여 가로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왕이 이르되 저의 말과 같이 하여 저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부친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 머리로 돌려 보내실 것은 저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대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대장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부친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저희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돌아 갈찌라도 다윗과 그 자손과 그 집과 그 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저를 쳐죽이매 저가 거친 땅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왕상 2:28-34)

 

그런데 아도니야가 솔로몬을 반역한 후 제단 뿔을 붙잡고 "솔로몬 왕이 오늘날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여, 잠시 동안 생명을 부지합니다(왕상 1:50-53).

 

중요한 것은 구원과 생명의 상징인 제단 뿔을 잡으면, 어떤 죄를 지었다 해도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과 사무엘하 기자는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뿔'이라고 찬송했습니다(시 18:2, 삼하 22:2-3).

시편 18:2

 

오직 하나님의 제단 뿔에 매인 삶을 살기로 작정한 다윗은 자신의 삶을 제단에서의 삶으로 소망하며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시 84:3)고 노래합니다.

 

구원의 뿔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나타냅니다(눅 1:68-69, 마 1:1).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눅 1:68-69)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 1:1)

 

즉 제단 뿔의 본질은 구원의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 붙들린 삶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삶이 되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 붙들린 삶'이란 예수님으로부터 온전히 분리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우리가 먼저 예수님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먼저 붙잡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참포도나무이신 주님으로부터 가지 된 우리가 붙어 있는 삶을 살므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샬롬


은 방어와 공격을 시사하고 면류관은 왕들과 승리자를 말합니다.

희생과 중보의 제단 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중재를 나타내고, 반면에 은혜의 보좌뿐 아니라 친교의 식탁 위에 있는 면류관은 왕과의 교제를 약속합니다.

뿔은 승리자 그리스도를 알려주고, 면류관은 그분을 만왕의 왕으로 선포합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갔을 때, 제사장은 "산 제물"(롬 12:1-2)로 주님의 봉헌을 나타내기 위하여 "아기를 그의 팔에 안고 제단 앞에서 그 아기를 쳐들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이 순간부터 주님의 지상 생애는 제단에 바쳐진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고난과 굴욕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놋제단 위에 매임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회개하는 자세로서 용서와 거룩함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무릇 단에 접촉하는 것이 거룩하리라"(출 29:37, 마 23:19)고 선포합니다.

출애굽기 29:37

 

4면과 4개의 뿔로 구성된 번제단은 사람을 대신한 희생제물의 번제를 통해 속죄함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과 성육신을 보여주는 예표이기에 사망의 법이 우리를 정죄하고 죽이려고 달려들지라도 제단에 있는 뿔을 잡게 되면 우리는 생명을 건질 수가 있습니다.

 

성인(聖人)들이 사망의 법에서 빠져나오려고 무수한 노력을 했지만 인류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죄와 사망의 법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로 세워진 구원의 뿔을 잡는 것만이 사망의 권세가 우리의 생명을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구원의 뿔'은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 은혜, 권세를 상징합니다.

짐승의 뿔이 힘의 상징이듯, '구원의 뿔'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구원과 은총을 의미하며, 특히 죄의 심판으로부터 건져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의 뿔'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비와 긍휼을 통해 자격 없는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시고 구원하시는 은혜를 약속하는 표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8:2에서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오, 나의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라고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의 구원의 뿔에 오늘도 나를 맵니다. 샬롬

시편 18:2


제단 뿔에 매인다는 말은 제단 뿔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제단 뿔을 잡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 되기 때문에 그때부터 우리는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아도니야와 요압이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을 반역하다가 도망가서 제단의 뿔을 붙잡습니다(왕상 2: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 (왕상 2:28)

 

그런데 솔로몬은 이 두 사람에 대하여 아도니야는 그 순간에는 살려주었지만 요압은 그 자리서 죽여버립니다.

분명히 요압은 제단 뿔을 잡을 때 이 뿔을 붙잡으면 살 수 있다는 확신으로 자신의 반역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제단의 뿔을 붙잡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요압은 그 자리서 잡아 죽여버리고 나중에는 아도니야까지 죽여버립니다(왕상 2장).

 

왜냐하면 그 영은 구원받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몸은 죄값을 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요압은 유다 지파로서 다윗의 누이동생의 아들이요 통일왕국에서 다윗 다음으로 강한 권력 서열 2인자였습니다.

요압은 자기 동생 아사엘을 죽인 사울의 장수 아브넬이 평화협상자로 왔을 때 그를 죽여버림으로 다윗과 사울가의 원한을 촉발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한군데로 모으지 못하는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나중에는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저질렀을 때 다윗의 요청을 무시하고 압살롬을 죽여버립니다.

 

분명히 요압은 다윗의 총애를 받는 자였습니다. 심지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죽여 다윗을 지켜줍니다.

요압은 이스라엘 권력의 2인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권력이 요압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했고 다윗 왕의 말을 무시하고 사적 감정으로 중요한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여 아브넬을 죽여버립니다.

 

결국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려고 할 때 요압은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기 위하여 항명죄까지 저질렀기 때문에 제단 뿔을 잡아도 죄값으로 끌어내려 죽여 버립니다.

 

고의적인 죄는 용서받을 수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돈 있고 권력 있고 힘 있을 때 건강할 때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신명기 11:18-19절에 보면 "너희는 나의 이 말들을 너희 마음과 너희 혼에 두고 그것들을 너희 손에 매어 표적으로 삼으며... 네 집에 앉았을 때에나 길을 갈 때에나 누워 있을 때에나 일어날 때에나 이 말씀을 강론하고"라고 기록합니다. 샬롬

신명기 11:18


뿔은 어떤 동물들에게 있어서 공격과 방어의 무기입니다.

이런 원리로 한나는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고백하고 다윗은 야훼를 "그의 구원의 뿔"로 높여 올려 세웁니다(삼하 22:3, 시 18:2, 눅 1:69).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란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삼하 22:3)

 

사도 요한은 영원한 분의 보좌 위에서 죽임을 당하고 살아나신 어린양이 그의 완전한 힘의 증거로서 "일곱 뿔"로 무장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계 5:6).

요한계시록 5:6

 

주님의 재림 때에는 밝은 빛의 뿔들이 예수의 손과 옆구리에서 흘러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굵은 줄로 매여 돌아가신 것이 우리 능력의 근원으로 믿습니다(합 3:4).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합 3:4)

 

제단 뿔은 생명을 살리는 힘을 나타내고 제단에 바쳐진 우리의 가장 소중한 기름과 피는 우리를 주의 신부 됨으로 가장 귀한 성별자로 만들어 주십니다(출 40:9-10, 30:23-28).

또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출 40:9-10)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 오십 세겔과 향기로운 창포 이백 오십 세겔과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찌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찌라 너는 그것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 상과 그 모든 기구며 등대와 그 기구며 분향단과 및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와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출 30:23-28)

 

하나님의 어린양과 성령의 봉사를 나타내는 제단 위의 기름과 제단 뿔과 피는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 끝날까지 붙들어 주시는 예표입니다.

 

따라서 제단 뿔에 자신을 완전히 매지 못하는 자들은 죄짓는 데 있어서 고의성이 있는 자들입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제단 뿔을 붙잡는 사람은 십자가의 구원을 악용하는 자들입니다.

제단과 제단 뿔에 관하여 자신을 산 제물로 붙들어 매지 못하는 자들은 지식적으로만 예수를 믿는 것이기에 진실로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4-6) 합니다.

 

시편 118:27: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생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

시편 118:27

 

성막의 번제단 네 모퉁이에는 뿔이 있는데, 이 뿔을 붙잡는 행위는 용서와 보호를 받습니다.

 

도피성으로 피한 사람이 보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제단 뿔을 잡는 것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고 그 은혜 아래 거하겠다는 순종을 약속하는 고백입니다.

 

"주의 은혜 사슬 되사 나를 주께 매소서"라는 찬송 가사처럼 일생을 하나님의 은혜에 이끌려 살아가겠다는 고백으로 주의 제단 뿔에 우리를 매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 성막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그리고 생각해 보아야 할 '성전 휘장')

 

성막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그리고 생각해 보아야 할 '성전 휘장')

구약성경의 성막은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상징이요, 하나님의 그림자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있어 성막에 대한 신앙은 절대적입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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