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성막은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상징이요, 하나님의 그림자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있어 성막에 대한 신앙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나 성막은 그림자요 상징이었기에 그 성막을 통하여 앞으로 완전한 원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경은 예언의 책입니다.
모형은 앞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을 가르쳐주기에 기쁨을 줍니다.
이 모형과 바라봄의 갈망이 신약성경에 와서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성막 가운데 계시기 위하여 모세에게 내가 너희 중에 거할 성소를 나를 위하여 지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에 와서 좀 더 직접적이고 친숙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성소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납니다(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어떻게 보면 전 성경의 역사가 요 1:14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입니다.
광야에서 처음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구름이 회막을 덮으며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했습니다(출 40:34-35).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출 40:34-35)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과 함께하신다는 증거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 영광이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예수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요한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본다’라고 말합니다.
성막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처럼 예수 안에 하나님이 임재하신 것을 요한이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친히 성전이라고 하십니다(요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2:21)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은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성전보다 더 큰 자라고 한 것은 구약의 모형적 성전보다 더 온전하고 실제적인 성전이 바로 자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에 예수를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딤전 3:16)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마 1:23)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3)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임마누엘이었듯이 이제는 예수가 성전이 되어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예수가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성전만 보고 인정했기에 예수를 성전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가 자신이 성전이라고 하니 유대인들은 강한 반발을 하여 예수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요, 이단 중의 이단으로 정죄하여 예수를 죽여버립니다.
영적 무지함이 얼마나 무서운 죄를 저지르는 것을, 우리는 유대인들이 성전 된 예수를 죽이는 사건을 통하여 볼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여도 영적 무지에 젖어 있거나 예언을 잘 모르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것, 이것이 영계의 진리입니다. 샬롬
유대인들에게 있어 성막은 삶의 중심이요, 소망 그 자체요, 예배의 장소를 넘어 예배의 대상 그 자체입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 마당만 밟고 다녀도 구원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왜 그들이 성전에 집착하고 지금도 성전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내가 성전이요 성전보다 더 큰 이’라고 하니 저들은 예수를 엄청난 신성모독자로 봅니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형으로 선고하여 죽일 때 죄목을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는 자라고 하는 성전모독죄로 기소하여 죽입니다(마 26:61).
가로되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 하니 (마 26:61)
성전모독죄라는 죄명에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때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라고 비웃으며 조금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성전보다 더 큰 일을 하는 분임을 증명하십니다.
성막의 위대한 모형 중 꼭 생각하여야 할 것이 성전 휘장입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제사장 외에는 누구도 성전 휘장을 지나 들어가지 못합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에 죄가 있는 인간은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에 죄인이 들어가면 그 누구도 살 수 없기 때문에 휘장이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을 지키는 그룹 천사의 모형입니다(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 3:24)
그래서 휘장에는 그룹 천사의 모형과 하나님의 눈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성소와 지성소는 죄 있는 인간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휘장은 하나님께 가지 못하게 막는 하나님의 거룩한 힘입니다.
그런데 이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 위에서 아래로 찢어져 버립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마 27:50-51, 막 15:37-38).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 27:50-51)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막 15:37-38)
휘장은 인간의 손으로 절대로 찢지 못합니다.
휘장은 황소 2마리가 좌우에서 당겨도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이어진 직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실 때 도저히 수선이 안 될 만큼 하나님의 손이 두 조각으로 찢어버렸습니다.
그 후에 제사장들이 아무리 수리하여도 수리하지 못했다고 기록합니다.
문제는 예수의 죽으심으로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제거되어 버렸기에 성소와 지성소의 구별에 없어지고 하나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를 따라가면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히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 10:19)
성막 자체가 예수를 가르치고 있기에 성막의 모든 구조물 하나하나는 예수의 몸을 상징합니다(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히 10:20)
성소의 휘장도 예수의 육체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성전 휘장이 찢어진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인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하여 자기 육체의 몸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완전히 없애버린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엡 2:12-15). 샬롬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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