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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스룹바벨 성전의 구속사적 특징

by 빛결샘숲 2025.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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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 성전에는 언약궤와 십계명 돌판과 만나를 담는 항아라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없습니다.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약탈한 성물들을 가져가 그의 개선문에 조각해 놓았는데 그곳에는 메노라 등대와 진설병을 들고 가는 것은 조각되어 있는데 언약궤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벨론에게 유다 백성들이 망할 때 빼앗겼던 모든 성물들을 포로들이 귀환할 때 다 돌려받을 때도 언약궤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전이 파괴되고 기물들이 탈취될 때 누군가가 언약궤를 미리 빼내어 숨겨두었기에 언약궤는 처음부터 가져가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언약궤가 없으니 더 이상 이스라엘은 언약궤룰 볼 수도 없고 언약궤를 중심으로 살아갈 수가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사라진 언약궤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언약궤가 없어도 성전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너진 성전을 짓게 하고 언약궤가 없어도 성전 중심으로 구속사의 경륜을 예전처럼 똑같이 진행하여 나가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스룹바벨 성전에는 언약궤 없이 지으라고 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이 성전에 들어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는 이제 곧 언약의 사자가 오신다고 말합니다(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말 3:1)

 

언약궤는 이스라엘의 상징이기 때문에 언약궤가 없으면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어 버립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망한 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적 아픔에 대하여 남유다가 망하기 직전에 예례미야는 이제 더 이상 언약궤를 필요로 하지 않는 때가 온다고 예언을 했습니다(렘 3:15-16).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5-16)

 

즉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가 와서 지식과 명철로 잘 양육하여 거룩한 부흥이 시작되면 주의 백성들은 주와 연합을 이루기 때문에 언약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샬롬

둘째 이삭이 큰 고양이 벽화 앞에서 놀고 있습니다. 이삭은 자기 부모가 자신을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에 큰 동물이라고 하여도 겁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5-16)

 

놀랍게도 남유다가 망하기 직전에 예례미야는 이제 더 이상 언약궤를 필요로 하지 않는 때가 온다고 예언을 합니다(렘 3:15-16).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가 와서 하늘의 지식과 명철로 잘 양육하여 거룩한 부흥이 시작되면 언약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목자란 '내 마음 같은 풀을 먹이는 목자'라는 뜻인데 하나님 마음에 맞추어 행하는 왕을 말합니다.

 

일차적으로 '학개, 스가랴, 에스라, 스룹바벨' 같이 백성들을 회개시켜 바벨론에서 포로 된 자들을 데리고 나온 뛰어난 지도자와 제사장들,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목자는 스룹바벨 성전의 주인이신 선한 목자 예수님을 말합니다(요 10:11,14).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 10:14)

 

주의 마음에 합한 목자가 나타나면 언약궤가 필요 없는 이유는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목자는 새로운 역사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목자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는 지식과 명철로 가르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 지음 받은 백성들로 가득 채우기 때문입니다.

 

렘 3:16절에 번성하여 많아진다는 것은 생육하고(파라 פָּרָה) 번성하라는(라바 לָבָה) 말로써 창조와 번영의 복을 말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6)

 

선한 목자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하나님을 분명히 아는 지식과 명철로 따라 살면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역사와 번영의 복인 전능하신 언약적 성취가 이루어지는 복이 파라와 라바의 복입니다(창 1:22,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창 1: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하나님께 돌아오면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지식과 명철을 따라 살므로 번성하여 많아지고 천지를 창조한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대홍수 후 새롭게 선택된 노아의 가족에게 파라와 라바의 복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것과 같습니다(창 8:17).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창 8:17)

 

고센 땅에 정착한 야곱의 칠십 명의 가족들도 생육하고 번성하여 애굽인들이 두려워하는 자가 됩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이 시작되면 언약궤를 다시는 기억하거나 찾거나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아를 통하여 5번이나 강력하게 언약궤를 찾지 말라(렘 3:16)고 말씀하신 이유는 언약궤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시면 언약궤는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렘 3:16)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궤가 아니라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와 연합하여 예수의 인도만 따르면 하늘의 지식과 명철로 직접 양육받습니다.

 

그러면 정복하고 지배하고 번성하는 번영과 창조의 복, 파라와 라바의 복을 받아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이 됩니다. 샬롬.

생육하고(파라  פָּרָה ) 번성하라(라바  לָבָה )


예수가 교회의 머리가 된 신약시대의 교회들은 언약궤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선한 목자이신 주님과 연합하여 거듭난 사람들은 주의 지혜와 명철로 가르침 받게 되면 천지창조 후 주어졌던 창 1:28-29절의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28-29)

 

즉 모든 언약의 주인이신 주님으로부터 지혜와 명철을 받아 가지고 주님만 따라가면 이것이 가장 밝고 확실한 신앙의 길이 되기 때문에 파라와 라바의 복으로 이 세상을 정복하고 지배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바벨론에 유다가 망하기 직전 예레미야가 언약궤를 느보산에 숨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카베오 하 2:3,5).

그 밖에도 이와 비슷한 충고를 했지만 그 중에서도 예언자는 그들의 마음에서 율법이 떠나지 않게 하라고 일렀습니다 (마카베오 하 2:3)
예레미야가 그 곳에 이르렀을 때에 동굴 속에서 방을 하나 발견하고 그 속에다 장막과 계약궤와 분향제단을 안치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입구를 막아 버렸습니다 (마카베오 하 2:5).

 

하지만 언약궤가 없이 새로 지어진 스룹바벨 성전은 예수를 통한 새로운 창조 시대가 도래되는 것을 가르쳐 주기 때문에 언약궤는 본래의 자리 하늘로 올라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계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계 11:19)

 

스룹바벨 성전은 예수 즉 메시아를 맞이하는 성전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언약궤가 필요 없습니다.

 

짐승을 희생시켜 피 흘림을 통한 구약의 속죄제사는 눈에 확실하게 보이기 때문에 죄 사함의 문제가 일시적으로는 만족과 기쁨을 줍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우리가 완전한 속죄를 받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면 영원한 기쁨이 솟아오르는 좋은 아침을 날마다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중심으로 신령과 진정의 예배, 즉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회복하여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이 오심으로 언약궤가 필요 없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 끝 날에도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성전을 짓는 곳에는 주님이 선택하여 보내신 선한 목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언약궤의 실체이신 예수와 함께하고 있는 성전에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언약궤의 실제이신 예수를 다시 맞이하기 위하여 새 성전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시간대 카이로스의 시간대에 서 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이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성전이었고 그곳에서 살아서 메시아를 만난다는 예언을 받은 시므온과 안나는 실제 초림의 예수를 살아서 맞이합니다.

 

우리 역시 안나와 시므온처럼 살아서 다시 오실 예수를 맞이하는 예언을 받은 자라면 언약궤의 실체이신 주님을 맞이할 성전을 지으면 다시 오시는 재림의 주님을 살아서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창 1:28-29절의 파라와 라바의 복은 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들에게 하늘의 지혜와 명철과 함께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된 사람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므온과 안나처럼 살아서 주님을 만나 새 예루살렘 성을 짓는 주인공이 되어 영원히 신랑예수와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마라나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28-29)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궤는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하는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약궤 위에 좌정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출 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 25:22)

 

그래서 광야의 성막이나 솔로몬의 성전은 언약궤가 놓인 지성소가 가장 거룩한 곳이 됩니다.

 

언약궤가 있는 곳이 성전이 되고 모든 예배의 핵심 장소가 됩니다.

 

솔로몬 성전에 언약궤를 안치할 때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빼앗겼을 때 비느하스의 아내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고 슬퍼하며 막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남)이라고 이름을 짓습니다(삼상 4: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삼상 4:21)

 

그런데 스룹바벨 성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없습니다. 그래서 옛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과 언약궤를 기억하는 노인들은 대성통곡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들 눈에 언약궤가 없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느냐고 하십니다(학 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학 2:3)

 

언약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림자이지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모형은 온전한 것이 나타나면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언약궤가 없는 에스겔 성전은 그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의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스룹바벨 성전에 언약궤가 없다는 것은 언약의 실제이신 예수를 맞이하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제부터 모든 성전은 언약궤 중심에서 성전의 실체요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언약궤에 메이지 말고 참 성전이자 참 언약궤이신 예수를 맞이하기 위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을 스룹바벨 성전이 가르쳐줍니다. 마라나타.

출 25:22


하나님께서 자기 땅에 찾아와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겠다는 약속은 예수를 통하여 온전히 성취됩니다(요 1:14,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예수님이 언약궤의 실체로 오셔서 모든 언약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고전 11:25)

 

언약궤는 여호와의 전의 보좌로도 설명합니다. 여호와의 보좌는 하나님의 임재하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언약궤의 속죄소 위에 임하시고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를 자신의 발등상으로 삼으신다고 하셨습니다(대상 28:2).

이에 다윗왕이 일어서서 가로되 나의 형제들, 나의 백성들아 내 말을 들으라 나는 여호와의 언약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등상을 봉안할 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할 재료를 준비하였으나 (대상 28:2)

 

여호와의 발등상이 하나님의 보좌와 연결된다는 것은 하나님은 전 우주를 다스리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보좌가 된다고 기록합니다(렘 3:17). 

그 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 할것이며 (렘 3:17)

 

메시아가 오시면 예루살렘이 전 우주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예루살렘에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발을 둘 곳이며 여호와의 성읍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으로 불림받습니다(사 4:5-6, 60:13-14).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천막을 덮으실 것이며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사 4:5-6)
레바논의 영광 곧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이 함께 네게 이르러 내 거룩한 곳을 아름답게 할 것이며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할것이라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사 60:13-14)

 

결국 새 언약의 성취자이신 예수 머리로 하는 교회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이 우리 어머니가 되기 때문에(갈 4:22-31) 우리는 이삭 같은 약속의 자녀가 되어 하늘의 유업을 얻을 자가 됩니다.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 4:22-31)

 

예레미야 3:17절을 보면 예루살렘에 언약궤가 없을지라도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시기 때문에 오히려 열방이 그 성전으로 모이되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 성전에 모인다고 기록합니다.

그 때에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열방이 그리로 모이리니 곧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모이고 다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치 아니 할것이며 (렘 3:17)

 

즉 세상 끝 날에는 새 예루살렘 성이 하나님의 보좌가 되기 때문에 만국이 그리로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상 끝 날에는 새 예루살렘 성에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오고(계 21:24)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와서 복됨의 주인공이 된다고 기록합니다(계 21:26).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계 21:24)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계 21:26)

 

우리는 이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로서 나의 영광과 존귀함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이 일을 위하여 모든 예배를 성공하여야 합니다. 샬롬.

 

언약궤


성전과 연결된 이스라엘의 순수신앙은 마지막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의 소멸로 완전히 사라집니다.

 

이것은 외형적 건물로서의 성전에 의존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성전의 실체이신 메시아를 대망하라는 주님의 깊은 계시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BC 536년에 시작하여 AD 18년에 헤롯성전이란 이름으로 완성했으나 AD 70년에 로마에 의하여 완전히 부서지고 맙니다.

 

바벨론의  포로애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BC 586년에 부서진 솔로몬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자 스룹바벨이 성전지대를 건축할 때의 모습을(스 3:12-13) 보면 그때 모든 사람들은 기뻐하는데 노인들은 통곡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스 3:12-13)

 

왜냐하면 포로에서 돌아와 지은 스룹바벨 성전에는 언약궤도 없고 영광스러운 구름의 임재도 없고 대제사장이 입는 옷에 있는 우림과 둠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저들이 지은 성전은 처음 솔로몬 성전보다 규모가 너무 작고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언약궤와 우림과 둠밈, 영광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없다는 말은, 오늘 날도 구원받았다는 사람들 즉 성전 된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가르쳐줍니다.

 

언약궤가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교회 다니고 직분도 맡고 성경을 많이 읽고 배우고 있지만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대성통곡하여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 중심에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영광의 구름이 없다는 것 또한 내게 주님의 영광의 임재가 없다는 뜻입니다.

 

우림과 둠밈은 대제사장의 가슴에 안고 있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다는 것은 주님을 가슴에 안고 살므로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로 말미암아 성전 된 사람들에게 성전의 3가지 요소 즉 언약궤와 영광의 임재, 우림과 둠밈이 없다는 것은 그는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기에 대성통곡하여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이 문제를 요한계시록 3:14-22절까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계 3:14-22)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은 세상 끝 날에는 교회에 꼭 있어야 할 언약궤 우림과 둠밈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임재가 없는 것을 보고 통곡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교회는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예수님의 모형이요 그림자이고 스룹바벨 성전은 성전의 본체이신 주님이 임하시는 영광스러운 성전이기에 더욱 중요합니다. 샬롬


솔로몬 성전은 설계도로 지었지만 스룹바벨 성전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다림줄로 성전을 짓습니다(슥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슥 4:10)

 

다림줄이란 예언의 말씀과 진리의 말씀의 정확성을 뜻합니다.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림줄로 다시 측량받아 하나님이 쓰시는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다림줄로 측량받아 합격한 자는 다시 예언하는 두 증인 혹은 두 감람나무로 쓰임 받지만(계 11:1-6) 그렇지 못한 자는 전부 환난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계 11:1-6) 

 

우리가 성전 된 주님을 모셔야 우리 역시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 된 자의 중심에는 반드시 언약궤 즉 하나님이 좌정하시고 계셔야 합니다.

 

언약궤는 말씀이요 하나님이시요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6)

 

스룹바벨 성전의 중요성은 다림즐을 든 예수님을 맞이하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전이 얼마나 크냐 언약궤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림과 둠밈이 있느냐,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인 영광의 구름 즉 궤키나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한 새 언약의 성전으로 스룹바벨 성전을 지었고 실제 살아서 메시아를 만다는 예언을 받은 시므온과 안나는 스룹바벨 성전에서 육체로 오신 초림의 예수님을 만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이제 시므온과 안나처럼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을 살아서 만난다는 예언을 받고 측량줄에 통과된 사림들은 다시 오시는 재림의 메시아를  맞이하는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옛 신앙의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고 합니다(히 6:1-3).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히 6:1-3)

 

우리 신앙의 완전함의 기준이 비로 스룹바벨 성잔을 지을 때 가진 측량줄(다림줄)입니다.

 

신랑 예수님이 자기 몸 된 성전에 오실 때는 맡씀의 잣대인 다림줄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정확하게 측량하십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 쓰임 받는 사람들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우리는 주님을 모신 성전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고전 4:16-17).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고전 4:16-17)

 

주님이 성전이기에(히 9:14) 주님을 모신 성전 된 사람들만 들림 받는 자들이요 주님 거하시는 성전입니다(고전 4:16-17).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 9:14)

 

성전의 역사는 에덴 성전- 성막 성전-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으로 이어지다가 예수님이 성전의 실체가 됨으로 이 땅에서는 성전의 역사가 끝이 납니다.

 

지금은 성전 된 예수를 영접함으로 우리가 실제 언약궤와 우림과 둠밈 여호와의 쉐키나가 있는 성전 된 몸을 지어야 합니다.

 

성전의 마지막 단계인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주의신부가 될 사람들은 성전의 주인 되신 예수님, 즉 언약궤와 우림과 둠밈 주의 영광의 임재인 쉐키나가 印침으로 있는 자가 새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공이 됩니다.

 

지금은 주님께서 자기 신부 된 성전 된 자를 다림줄로 한 사람 한 사람 측량하고 계십니다.

 

만약 새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우리에게 언약궤와 우림과 둠밈 하나님의 영광의 쉐키나가 없다면 우리 역시 대성통곡하며 울며 빨리 회복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때의 복음이요 구원의 길이요, 신부단장하여 시므온과 안나처럼 살아서 주님 만나는 기름준비한 자가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샬롬

 

[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 스룹바벨 성전의 재개

 

스룹바벨 성전의 재개

학개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 후 하나님께서 최초로 보내신 여호와의 선지자로 스가랴 선지자보다 2개월 먼저 사역을 시작합니다.    학개라는 이름의 뜻은 축제, 절기의 사람이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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