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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하여

대제사장 예수, 멜기세덱 반차를 좇은...

by 빛결샘숲 202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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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우리의 대제사장이라고 언급한 곳은 히브리서뿐입니다. 

 

히브리서는 AD 64년경 로마 황제 네로가 기독교인들을 무지하게 핍박할 때 쓰여진 책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최고 지도자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붙잡혀서 온갖 처참한 방법으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것을 본 히브리서 기자는 고난 가운데서 남은 성도들이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박해가 깊어지니 예수 믿는 성도들은 무섭고 두려워 옛날로 돌아갑니다.  

 

그 당시 유대교는 로마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받았기에 직접적인 핍박을 받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이단으로 몰아 로마 당국에 고발하며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을 끝까지 핍박하고 회유합니다.   

 

그러다 보니 로마의 박해와 유대교의 회유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갑니다.   

 

이러한 때에 히브리서는 오직 예수만 모든 구약의 제사와 율법의 완성자라고 강조합니다.  

 

구약의 제사에는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하는 제사장이 필요합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며 죄의 용서를 구하는 중보자입니다.   

 

제사장의 대표를 대제사장이라고 하는데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 대속죄절에 지성소에 들어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속죄 사역을 합니다.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서 택합니다.

 

인간은 죄를 짓고 무너지는 연약한 자이기 때문에 사람만이 사람의 사정과 형편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 또한 연약한 인간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야 할 연약한 인간임을 늘 기억하고 약한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을 중보 하여 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은 잘못된 것을 보고 정죄하기보다는 회복시키는 데에 초점을 모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제사장도 잘 모르고 연약하고 넘어져서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 선택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선택됩니다.

 

그래서 신앙이나 인격이나 능력이 뛰어난 자가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 자가 선택됩니다.

 

하나님이 영적 지도자를 세울 때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영적 기준이 있습니다.   

 

비록 그 사람이 부족하고 문제가 많아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를 인정하고 기름 부으실 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적 기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존중해야 합니다.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하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샬롬.

히 7:28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기에 지금까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존재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향하여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대제사장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아담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심은 레위인 중에서 제사장을 부르는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히브리서 4장14절을 보면 우리 대제사장은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우리 대제사장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히 4:14)

 

이것은 예수님의 대제사장 사역이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주님은 이미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대제사장이 속죄를 위해서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는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친히 속죄 제물이 되어 자신을 드렸습니다.   

 

구약에서 한 사람의 죄를 속하려면 한 마리의 소나 양을 드려야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죄를 속하는 제사를 날마다 드리려면 세상에 모든 양들을 다 죽여도 모자랄 것입니다.

 

짐승 한 마리에 한 사람의 죄가 용서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단 한 번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속죄하여 버리십니다.

 

예수의 보혈이 그만큼 가치가 있고 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보혈 제사는 구약의 모든 양을 잡은 제사의 완성품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에서 백성들의 죄를 속죄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반드시 성소에 와서 특별한 제사와 예법을 갖추어서 제사를 드려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란 하나님이 정해주신 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 가서 자기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승천하신 예수님은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장막을 세우십니다.

 

하늘의 장막은 사람의 손이 아닌 주님의 손으로 직접 세우신 것이기에 우리는 예수를 통하여 그 하늘 장막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이 땅의 교회는 무엇일까요.

 

하늘 장막에 계신 예수를 만나러 가는 모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서 예배하면 하늘의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하늘의 장막에 가서 예배한다는 것은 내가 24시간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맛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 제사장은 불안전하고 연약하기에 사람을 온전히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기에 어느 때나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면 속죄의 은혜를 주십니다. 샬롬.

히 4:14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으로 칭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지파입니다. 대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대제사장 직분을 레위지파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 오십니다.  

 

그러면 멜기세덱은 누구일까요. 

 

멜기세덱은 신비한 인물입니다. 부모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신비한 인물입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 7:1-3)

 

즉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아들 같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멜기세덱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수입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멜기세덱을 만나 십일조를 드리며 경배합니다.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에 규정되기 이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먼저 바친 것을 보면, 십일조는 처음부터 하나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멜기세덱은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맞아주며 축복하고 격려합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이란 사람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립니다.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한 행동은 예수님이 우리를 맞이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전쟁에 지친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힘을 부어주십니다.   

 

이것은 어둠의 권세와 영적 전쟁으로 지친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새 힘을 대제사장 예수님이 불어넣어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힘을 회복하고 다시 다음 전쟁을 위한 싸울 준비를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전쟁에 패배하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료하시고 새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오신 대제사장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을 그대로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통하여 우리는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새로운 힘을 받아 다시 세상으로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생활이 힘들고, 가정에 위기가 오고, 많이 아프고, 인생이 이리저리 흔들릴 때는 예수를 붙잡아야만 이겨낼 수가 있고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서가 쓰여질 때는 로마의 엄청난 박해를 통하여 믿음의 성도들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자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피흘림보다는 구약의 제사 즉 희생양을 통한 속죄의 방법이 확실하게 죄를 사하여 주는 것처럼 보였기에 유대교로 사람들이 다시 돌아갑니다.   

 

왜 이런 현상들이 생겼을까요. 예수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에 감격이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가 내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 속에서 내가 죽고 다시 사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크고 작은 유혹과 미혹에 흔들리고 시험에 들고 배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며 사는 것이 나의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됩니다. 샬롬.

 

 

 

[예수님에 대하여] - 평강의 왕 예수, 샬롬(שָׁלוֹ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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