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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하여

평강의 왕 예수, 샬롬(שָׁלוֹם)

by 빛결샘숲 2025.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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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어둠의 권세중 제일 큰 것은 전쟁의 힘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은 평화를 원하지만 자연적으로 파괴로 이어지고 인류의 역사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이루어진 피의 역사가 되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그 무서운 전쟁의 피해는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받는 것이 아니라 힘없는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의 지혜가 뛰어나도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전쟁은 계속됩니다.  

 

공산주의가 사라지면 지구상에 평화가 올 것 같았지만 동유럽과 중동은 피의 전쟁으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고, 미국의 9.11 테러 사건은 세계에서 안전한 곳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르네상스와 계몽주의로 사람들에게 참교육을 시켰어도, 사람들이 국제연맹을 만들고 국제연합인 UN을 만들어도 전쟁을 막지 못합니다.

 

총과 칼로 싸우는 전쟁만이 아니라 지방과 지방,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보수와 진보, 신세대와 기성세대, 심지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의 갈등과 다툼의 전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어지기만 합니다.

 

따라서 평화를 준비하고 제대로 된 평화를 가지려면 전쟁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것을 치료하여야 하는데 성경은 모든 전쟁의 원인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즉 총, 칼에 앞서 우리 마음이 먼저 총, 칼을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절에 나오는 정욕이라는 말은 인간이 가진 이기적인 욕망을 말합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약 4:1)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은 이것을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죄란 이기적인 자기중심주의를 말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좋은가를 먼저 따지는 것이 인간의 죄된 본성입니다. 

 

전쟁은 항상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일어납니다. 좋은 것은 내가 반드시 가져야겠다는 사람들이 모이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요한복음 14:27을 보면 세상도 평화를 주지만 그 평안은 불안한 평안이라고 말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왜냐하면 죄인된 사람끼리 모이면 아무리 좋은 대화를 하여도 죄인이 모이는 곳에서는 평화가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화가 나도 평안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힘없는 평안이 아니라 어떤 폭풍 같은 외부 사항이 터져도 끊을 수 없는 하늘의 평화를 줄테니 이것을 소유하라고 하십니다.  

 

평안을 샬롬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나만이 조용히 가지는 평안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영적 충만으로 주어지는 만족과 회복을 말합니다.  

 

샬롬은 '하나님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삶의 구석 구석까지 함께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태초에 인간은 에덴에서 완전한 샬롬을 누렸습니다.   

 

오늘부터 주의 동산에 거하는 복됨을 통하여 에덴의 평화가 오늘부터 시작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요한복음 14장 27절


태초에 인간은 에덴에서 완전한 샬롬을 누렸습니다.  

 

샬롬이란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과 동행', 우리 삶에 하나님의 임재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평안을 죄가 깨어버렸습니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 놓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아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헙니다.   

 

죄가 들어오니 한 몸처럼 서로 사랑했던 아담과 하와가 싸우고 그들이 낳은 자식은 형이 동생을 죽여버립니다.   

 

하나님과 싸우니 부부가 싸우고 형제가 싸우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미움과 다툼과 불만으로 담이 쌓아집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 샬롬의 도시라는 뜻인데 예루살렘에 우상숭배의 죄가 들어오니 하나님과 함께하지를 못합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니 예루살렘에는 평화가 깨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을 버린 악인에게는 절대로 평화가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따라서 정말 샬롬을 원하면 가장 먼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면 인간은 끊임없이 전쟁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구약에서는 제사 제도를 두어 예배할 때마다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화목제물을 드리게 했습니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가 깨어지니 평화를 회복하려면 죗값을 치르는 제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서는 우리의 모든 죗값을 예수께서 화목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무너뜨려 버렸습니다(엡 2:13-14).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3-14)

 

십자가는 먼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케 하고 그 결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화평케 합니다.   

 

죄인이란 하나님과 전쟁 상태에 있는 죄있는 자를 말합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과 다투는 사람은 반드시 사람과도 다툼이 있는데 이것이 구원받기 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과 화목하면 사람과 사람과는 근본적인 화목의 길이 열려 함께 구원의 길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은 예배의 회복 밖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예배가 무너지게 되면 가족과도 싸우게 되고, 자신과도 싸우게 되며, 가난과 저주와 실패가 따라옵니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반드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분열되는 것도, 집에서 불화가 이어지는 것도, 각자의 삶이 흔들리는 것도, 전부 예배가 무너졌기 때문에 생기는 아픔입니다.   

 

따라서 평화가 회복되려면 각자가 하나님 앞에 와서 회개하고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사람사이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와도 '예배가 회복되면' 관계를 회복시켜 평화를 주십니다. 샬롬

 

에베소서 2장 13-14절


사도 바울은 편지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고 인사합니다.   

 

바울이 그의 편지마다 은혜와 평강의 순서를 한 번도 바꾸지 않는 이유는 은혜가 있어야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평강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평안을 위해서는 은혜가 항상 먼저 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는 은혜', '기도의 은혜', '헌신의 은혜', '찬양의 은혜', '예배의 은혜'가 임해야 내 삶에 하나님의 평안이 임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의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말합니다(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

 

주의 평강이 없으면 사람들의 마음은 늘 불만 갈등 회의감이 가득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삶을 다스릴 수 있도록 삶의 조종간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십시오.   

 

사단은 우리에게 염려와 걱정, 미워하는 마음, 분노의 마음을 갖게 하여 무슨 수를 쓰든지 간에 그리스도의 평강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받았으면 이것을 방해하는 것들과 우리는 끝까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강한 의지의 결단으로 주님의 다스림 밑으로 들어가기를 주님께 구하십시오.

 

주님의 다스림에 들어가서 주님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하여야 합니다(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기도란 나의 모든 불황과 염려와 힘듦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우리 삶이 불안하고 힘든 것은 내 감정과 생각이 복잡하고 더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회복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감싸게 됩니다.  

 

살아 있는 기도를 회복하십시오.

 

염려가 많아지면 기도가 적어지고, 반대로 기도가 많아지면 염려가 줄어듭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내 안을 채우는 기도를 회복하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 터지고 환난의 바람이 불고 사망의 골짜기를 통과하여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그 안에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주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 내면 안에는 평안이 가득했다는 뜻입니다.  

 

살아있는 기도를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두려움과 불안과 슬픔이 떠나고 담대하고 평안함이 마음에 가득차 옵니다.   

 

기도하면 우리 안에 있는 세상에서 받은 상처가 치유 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매일 기도하면 매일 영혼이 강건하여지고 기도할 때마다 샬롬의 축복이 주어지니 기도의 은혜가 이 무더위 속에서도 회복되기를 축복합니다. 샬롬

골로새서 3장 15절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려면 먼저 말씀이 충만해야 합니다.   

 

이사야 11:9절을 보면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것 때문에 아픔도 상함도 있지만 여호와를 아는 지식, 즉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하면 해됨도 상함도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완전한 평화의 시대가 오려면 전쟁과 다툼이 없어야 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만 생명이 유지되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만 생명이 유지됩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신 분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면 예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에 하나님 자녀들 또한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그 말씀의 능력을 통하여 완전한 평화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말을 들으면 세상의 영이 우리를 사로잡게 됩니다.

 

세상의 영은 미움 다툼 폭력 음란 욕심 두려움의 영입니다.

 

이런 것이 내게 오지 않게 하려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은 나의 시간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위하여 바꾸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요, 말씀은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이 하시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평화를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려면 내 안에 우상은 물론 내 주변의 우상까지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역대하 14:6-7을 보면 유다왕 아사에게 하나님이 그 땅에 평화를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해 싸움이 없은지라 저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아사가 일찌기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저희가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 하였더라 (대하 14:6-7)

 

남왕국 유다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늘 강대국들의 먹잇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사 왕이 유다를 다스릴 때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나라들이 아사에게 조공을 바침으로 유다 나라는 최고의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 이유를 역대하 14:17을 보면 아사는 주만 찾겠다는 열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은 과감하게 버렸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아사는 증조부 솔로몬 때부터 시작된 우상숭배와 이교적인 풍속을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아사는 자신을 키워준 태후 할머니까지 폐위시킬 정도로 모든 우상숭배를 온 나라에서 없애 버렸기에 하나님께서 큰 평안를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조건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상황을 물리치고 큰 평안을 주시고자 할 때, 이것을 누리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충만한 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다른 것과 비교하거나 봐주지 말고 아사 왕처럼 철저히 제거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찾아 버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샬롬.

역대하 14장 6-7절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 이상으로 내 마음과 시간과 돈을 다른데 쓰는 것도 우상숭배입니다.   

 

TV 스마트폰 부동산 돈, 운동, 취미생활과 의식주 문제까지, 이것이 내 삶에 우선이 되면 전부 우상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데 방해되는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전부 우상입니다.

 

이런 우상을 하나씩 제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 가운데 거할 수가 없습니다.  

 

사사 시대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각기 자기 소견대로 행하던 시대였다고 기록합니다.

 

강한 영적 지도자인 왕이 없으니 사사 시대는 온 나라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우상숭배를 한 까닭에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나라는 각종 질병과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 하루 하루가 혼란스럽고 미래가 없는 날들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이라는 사람을 선택하여 일으켜 세웁니다.

 

기드온 시대는 미디안이라는 강한 부족이 추수할 때마다 침략해 와서 모든 것을 약탈하여 가버립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드온을 선택하시고 큰 용사라고 부르십니다.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가장 작은 부족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적의 공격이 무서워 산속에 숨어서 추수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사람인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하시며 그와 함께 예배를 드린 후, 이스라엘을 전쟁에서 벗어나는 평화를 약속하는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 샬롬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기드온이 하나님과의 평화를 체험하고 나니,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제거하여 버립니다.

 

이런 행위 때문에 불가능한 전쟁 가운데서도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게 되고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자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기드온이 승리한 사건과 여호와 샬롬과의 관계는 굉장히 중요한 연관 관계가 있습니다.   

 

주변 상황이 불안하고, 어지럽고, 미래가 암울하고, 전쟁의 공포가 커져가면 갈수록 가장 먼저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찾아서 버려야 여호와 샬롬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부족을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먼저 무릎 꿇고 주를 찾으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가르쳐서 큰 용사라고 말씀하십니다.

 

배운 것이 없고, 힘들고, 가진 것도 없고, 미천한 출생이요,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어도 먼저 하나님의 평강을 소유하게 되면 하나님은 그를 큰 용사로 쓰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환경을 절대로 내 힘으로는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힘든 환경을 내가 어떻게 정복할 것이냐는 것은 예배를 통하여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어떻게 예배를 드리느냐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입니다.   

 

진정한 샬롬을 누리려면 기드온처럼 먼저 예배에 성공하여야 합니다.

 

예베 성공하는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진정한 영적 평강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야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샬롬을 망가뜨리는 것은 그 배후에 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와 싸워 이기는 창과 방패입니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악의 세력과 싸워 마지막 승리를 합니다.   

 

샬롬은 이미 주님이 싸워 이겨 놓은 싸움에서 우리에게 전리품으로 주셨습니다. 

 

즉 평강은 싸워 승리함으로 주어지는 전리품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 전쟁 중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디서나 평화로움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영적 시험에 휩쓸려 있으면 예배가 식어지고, 부르짖는 기도가 사라지고, 사단이 판을 치게 됩니다.   

 

기도가 사라지면 가정에서도 부부 사이, 부모 자식 사이에 평안이 죽어 버립니다.  

 

평강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강의 왕이 임함으로 주어집니다(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눅 2:14)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흘려 우리를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늘나라의 왕인 예수가 평강의 왕이시기에 주님을 모시는 곳마다 평화가 임하고 그 백성들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날마다 하늘의 평안을 누리려면 먼저 주님과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주변 상황이 좋아서 평안하고, 주변에 힘든 일이 없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아니라, 평강의 주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 참 평안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평안을 네게 주노라’고 말씀하십니다(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주님의 평안을 소유하려면 끊임없이 주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현실이 힘들수록 평강의 왕 예수를 끊임없이 내 삶에 초대해야 하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움이 오면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거나, 주님께 이 힘든 문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은 현재의 아픔을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나의 힘든 상황, 어려움의 문제에 하나님을 초대하는 것이 가장 빠른 문제 해결의 비밀입니다.   

 

전쟁과 같은 힘든 형편과 아픔이 깊어지면 그 아픔 속에 평강의 왕, 예수를 빨리 초대하십시오.  

 

기적은 문제에서 빨리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 삶, 내 가정, 내 육체, 인간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 곳에 하나님이 오시도록 초대하십시오.  

 

고난이 깊어지면 고난에서 빨리 탈출하려고 몸부림치는 기도를 하지 말고, 평강의 주님을 먼저 나의 고난의 현장에 오시도록 초대하십시오.

 

이것이 진정한 평안이 임하는 길입니다. 샬롬.

 

누가복음 2장 14절

 

[하나님의 이름] - 여호와 샬롬 하나님 (삿 6:22-24) - 1

 

여호와 샬롬 하나님 (삿 6:22-24) - 1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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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기도와 예배] -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마 6:5-10)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마 6:5-10)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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