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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스룹바벨 성전과 새 언약

by 빛결샘숲 2024.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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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룹바벨 성전은 장막 성전과 솔로몬 성전 이후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 땅에 건축된 마지막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이 성전을 짓기 위하여 이방인의 고레스와 다리오 왕을 사용했으며 학개와 스가랴 같은 선지자를 부르시고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같은 지도자들을 감동시켰습니다(학 1:12-15).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때는 다리오왕 이년 유월 이십 사일이었더라 (학 1:12-15)

 

스룹바벨 성전은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하나님의 텍하신 선민의 역사는 중단 없이 지속되는 것을 가르쳐주고 하나님의 언약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하여 지어진 성전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구체적인 설계도도 없고 건축 과정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오직 이 땅에 오시는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한 뜨거운 심령으로 짓는 성전입니다.   

 

이것은 이제 곧 다시 오실 재림의 메시야를 맞이하는 성전을 지으려면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지은 것처럼 우리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으로 지음 받은 자 즉 죄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 성전을 짓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고전 3:9,16, 6:19 고후 6:16).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9)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 3:16)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 6:19)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후 6:16)

 

주님 오심을 맞이할 성전을 짓는 사람들은 새 언약의 약속을 받은 사림들입니다.   

 

주님을 맞이할 성잔을 짓는 사림들은 새언약을 가슴 깊이 새기고 그 성취를 바라보며 살아야 할 것을 스룹바벨 성전을 통하여 가르쳐줍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결과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바벨론에 사로잡혀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통하여 옛 언약이 아닌 새 언약을 선포하여 회복과 부흥을 약속합니다(렘 31:31-34, 겔 36:34-3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31-34)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찌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드릴 양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떼 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겔 36:34-38)

 

새 언약이란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언약을 말합니다.   

 

나라가 망하고 이방으로 쫓겨난 암울한 격변의 시기에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시는 새 언약의 말씀은 너무나 파격적인 축복의 말씀이고 소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옛 언약을 새 언약으로 바꾸어 모든 것을 개혁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예레미아 선지자는 새 언약을 선포할 때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라고 하는 주의 말씀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과 새언약을 맺어야만 합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며 새 언약은 다시 오시는 예수를 맞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요 구속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줍니다. 샬롬.

 

높은 산 위로 올라 주께 예배


그러면 옛언약은 무엇이며, 새 언약이란 무엇일까요.   

 

옛 언약은 출 24:3절에 기록된 대로 모세가 중보자가 되어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 즉 십계명에 절대 순종함으로 주어지는 축복으로 육적 할례로 받은 자를 중심으로 맺은 언약입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 24:3)

 

그러나 이스라엘은 십계명에 불순종함으로 옛 언약은 파괴되고 맙니다(신 28:25).

여호와께서 너로 네 대적 앞에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한 길로 그들을 치러 나가서는 그들의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세계 만국 중에 흩음을 당하고 (신 28:25)

 

그러면 새언약이란 어떤 것일까요. 예수께서 중보자가 되시어 우리의 죗값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취된 언약입니다.

 

따라서 이 언약을 맺으면 주의 성령으로 우리 육쳬까지 거듭나서 마음의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됩니다. 이들에게는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지기에(렘 31:34)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34)

 

즉 완전한 죄사함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과 맺은 언약이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었는데 이스라엘은 남편된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합니다.   

 

마치 본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간 음탕한 여인 고멜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열을 올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해 버린 이스라엘에게 '마치 아내가 남편을 속이고 떠남같이 너희가 정녕히 나를 속였노라'라고 탄식하십니다(렘 3:20).   

 

따라서 새언약은 이스라엘의 고집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완전한 죄 사함의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마 26:27-29).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 26:27-29)

 

주님은 마지막 성만찬의 자리에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피는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곧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에게 약속한 영원한 새 언약이 됩니다(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9)

 

이 새언약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자기 몸을 직접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율법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 값을 단번에 치르시고 우리를 속량 하여 주셨습니다(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3)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라는 새언약을 통해 인류의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신 것입니다.   

 

새 언약이 가져다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자유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죄를 범하는 순간 그 사람은 죄의 종이 되어 무서운 죄의 구속을 받게 됩니다.   

 

죄는 참자유를 도적질 하여 가는 강도와 같습니다. 죄는 죄짓는 자를 꼼짝 못 하게 옭아 메어 끌고 다닙니다.   

 

죄는 그 일생을 두려움과 슬픔과 수치와 불안으로 얼룩지게 하고 결국은 죄의 값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주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는 죄에 속아 끌려 다니다가 그 죄 가운데 갇혀서 회개할 기회를 붙잡지 못하고 마침내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와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행 1:17-18).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행 1:17-18)

 

육신의 생각은 우리를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여 하나님의 일을 못하게 방해하고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당부합니다. 샬롬.

혼인 잔치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 4:24-31)

 

예수의 새 언약 아래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자유자의 자녀입니다(갈 4:24-31).

 

새 언약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유를 가진 자는 감옥에 갇혀도 자유가 있고 어떤 질병이나 아픔 속에서도 자유합니다.

 

그 사람 속에는 영원한 자유, 우주적인 자유, 진리의 자유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요 8:22, 롬 5:1,21).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요 8:22)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롬 5:21)

 

미국 CIA 건물 본부 입구에 보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는 말씀을 크게 적어 놓았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위대한 말씀인 줄 아십니까.

 

교회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함을 알면서도 교인들의 삶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마다 강단에서 시간이 되면 선포하는 모든 설교는 진리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진리의 말씀을 듣고 교인들 중에 자유한 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새 언약을 통하여 주어지는 죄 사함과 자유와 함께 진리를 통해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율법과 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진리이신 하나님을 내가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의 종도 아닌데 왜 우리로 하여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하느냐며 예수께 따져 묻습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고 거짓은 노예의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진리로 말마암아 자유합니까. 죄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가요.  

 

어쭙잖은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폄하하고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를 높이는 자기 의에 가득 차 있을까 삼가 제 자신을 전 늘 돌아봅니다. 샬롬

천국 혼인잔치


 

아담과 하와가 진리의 말씀을 따랐으면 자유인의 삶을 살았을 것인데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거짓된 사단의 말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에 죄의 노예가 되어 진정한 누림을 잃어버립니다.

 

거짓을 믿으면 노예의 삶을 살게 되고 진리를 믿으면 자유의 삶을 살게 되는데 여기서 공통점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오직 믿음'이란 예수 안에 완전히 들어가는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오직 한 길, 오직 진리, 오직 생명이라고 밝혀 주셨기에 예수를 떠나서는 진리에 거할 수도, 생명을 가질 수도, 어떠한 진리의 길에도 설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살면서도 죄의 종이 되어 있었듯이 우리 역시 예수를 믿고 주님과 새언약을 맺고 사는데도 진리가 없고 생명이 없고 자유가 없다면 아직도 그는 죄에 메여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머리로만 믿었듯이 우리 역시 예수를 머리로만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교인들은 내 머리로 믿고 아는 데까지만 믿고 더 이상 알거나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진리를 내 것으로 만들거나 예수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지금까지 내가 숨겨둔 것, 남모르게 하여 왔던 것, 은밀하게 좋아하는 것을 전부 깨어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입으로 주님이 하라는 그대로 행하는 새 언약을 받은 자라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새 언약을 주님과 맺고 제대로 진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불가능하다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과 새 언약을 맺고 새 언약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을 누리는 진리의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요(고후 3:17)', 주의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저주와 상관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을 맺은 사람은 주의 영이 내게서 떠나지 않는 은혜를 끊임없이 구하여야 합니다.   

 

주의 영은 진심으로 내가 하나님께 구할 때 은혜로 주어집니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는 것을 예수님은 희년의 선포로 설명하십니다.   

 

희년이 선포되면 모든 것이 회복되기 때문에 그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자유와 해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

 

오늘날 거의 모든 교인들은 분명히 예수를 믿고 새 언약 속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주님 주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죄와 사단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는 진리를 믿고 새 언약 속에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진리가 그 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은 거짓을 좋아하는 본성을 따르기 때문에 사단의 미혹을 받아 살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교회가 미혹의 영에 걸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본성을 따르고 있습니다(살후 2:9-12).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9-12)

 

그래서 미혹의 영에 걸린 자기의 본성으로 말미암아 심판 날에 스스로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미혹의 영을 허락하신 이유는 새 언약을 맺은 자들이 진리의 역사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의 신앙생활 예배생활 헌금생활 헌신의 시간들이 조금이라도 억압이 된다면 내가 지금 미혹의 영에 걸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빨리 벗어나야만 합니다.   

 

미혹의 영에 걸리면 겉으로는 예수 믿고 죄 사함 받고 진리 가운데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죄와 사탄의 노예로 살아가게 됩니다.   

 

갈릴리 바다 심한 풍랑 속에서 제자들이 두려워 떨 때 예수님은 그냥 편안하게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예수님을 깨울 때 주님은 단 한마디로 '너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눅 8:25)고 책망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눅 8:25)

 

제자들은 분명히 새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와 함께 새 언약을 맺고 예수와 함께 있는데도 정작 풍랑이라는 큰 어려움이 오니 그들 속에는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가 없고 진리가 없고 생명이 없고 평안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새 언약의 실체이신 예수와 함께 있으면서도 새 언약의 주인이신 예수를 믿는 믿음이 그 안에 실제로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새 언약을 맺었으면서도 죄의 뿌리를 따르는 본성에 젖어 있기 때문에 미혹이 올 때마다 순간순간마다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샬롬

 

2024.12.05 - [재물, 부자, 돈에 대하여] - 천배의 복을 받는 비결(창 49:25) - 하늘의 복, 땅의 복, 원천의 복, 정수리의 복 그리고 천배의 복

 

천배의 복을 받는 비결(창 49:25) - 하늘의 복, 땅의 복, 원천의 복, 정수리의 복 그리고 천배의 복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창 49:25) 

je-shurun.com

 


새 언약의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사함으로 말미암은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도 죄를 범하는 순간 그 사람은 죄의 종이 되어 무서운 죄의 구속을 받게 됩니다.  

 

죄는 참 자유를 도적질해 가는 강도와 같습니다.  죄는 죄지은 자를 포로로 삼아 꼼짝 못 하게 옭아매어 끌고 다닙니다.   

 

죄는 그 일생을 두려움과 슬픔과 수치와 불안으로 얼룩지게 하고 결국은 죗값으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욥 4:7, 겔 18:4).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욥 4:7)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겔 18:4)

 

주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는 죄에 속아 자신이 죄의 종으로 끌려다니는 줄을 몰랐습니다. 자신은 언제나 예수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가롯유다는 예수 곁에서 그분의 말씀을 늘 들었고 주의 일을 많이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기회를 잡지 못해서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오는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우리를 하나님과 늘 원수 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진심으로 못하게 방해하다가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고 합니다.   

 

우리가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은 예수의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자유자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밀씀 안에 있는 자유를 가진 자는 철창 감옥에 갇혀 있어도 자유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사는 자들에게는 우주적인 자유, 진리의 자유가 충만합니다.   

 

시편 32:1 절에 보면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지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한한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민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민 6:24)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하늘과 땅의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창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7-28)

 

우리의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여 주시기 때문에 기도하라고 하셨고 기도하여 구체적인 응답을 받은 사람 중애 대표적인 사람이 야베스입니다(대상 4:10).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부르며 이르되 원하건대 주께서 참으로 내게 복을 주사 내 지경을 넓이시고 주의 손이 나와 함께하사 주께서 나를 악에서 지키심으로써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가 요청한 것을 그에게 주셨더라.  

 

이런 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세력이 바로 죄입니다. 샬롬.

 

새 언약


렘 5:25절으류보면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죄와 허물이 있는 상태에서는 말씀의 은혜 평안의 은혜 기쁨의 은혜 위로의 은혜 소망과 물질과 자녀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번성케 하시고 도와주시고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시고 부요케 하시는 복을 주시기를 원하지만 죄가 이것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허물의 사함과 죄가 가리움 받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 문제에 대하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된다'는 것입니다(사 1:18).   

 

죄문제에 대하여 주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분명히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을 받은 자가 누리는 첫 번째 특권입니다.   

 

문제는 죄 사함 받아 죄가 없는 자라고 하여도 '자범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히 죄가 사함 받아 죄가 없는데 우리 생각과 말과 행동과 표정은 순간순간 죄를 짓고 이것이 밖으로 곧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죄가 드러날 때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은 밖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회개란 깨끗한 그릇에 묻어 있는 더러운 것을 씻어 버리고 원래의 깨끗한 그룻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좋고 깨끗한 그릇이라고 하여도 담겨있는 것이 더럽고 그릇 주변에 불결한 것들이 묻어 있으면 쓸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그릇은 씻어내어야만 그 그릇을 쓸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따라서 회개란 예수 믿을 때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했을 때마다, 죄를 깨달을 때마다, 죄짓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마다, 말씀을 들을 때 잘못된 것이 생각날 때마다 회개하여야 깨끗한 그릇이 되어 주님이 쓰시는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회개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은혜의 자리, 복된 지리로 다시 들어가 새 언약을 완성하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새 언약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모든 복과 하나님께서 내게 기대하시고 더 큰 복을 주시려고 할 때 그것을 가로막는 죄 문제를 치워버리는 은혜가 회개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첫 번째 은혜가 회개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오늘 하루도 늘 머무는 복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새 언약


모세가 건축한 장막 성전에 대해서는 건축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반면 스룹바벨 성전은 위치도 규격도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스룹바벨 성전은 오시는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스룹바벨 성전이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되는 성전인 것처럼 우리 역시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 또한 거룩한 성전으로 지어져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는 새 언약의 약속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그 성취의 날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한 결과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통하여 옛 언약과는 완전히 다른 새 언약을 선포합니다.(렘 31:31-34, 겔 36:24-38).   

 

새 언약은 세 가지를 약속합니다.

 

1. 완전한 죄 사함의 약속입니다.

 예수의 새 언약 안에 있는 자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자유의 종이 된다는 사실입니다(갈 4:24-31).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 4:24-31)

 

2.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다 알게 된다는 약속입니다.   

 즉 주의 날이 오면 보혜사 성령,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사람의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하나님을 모두 알도록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요 14:26, 15: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5:26)

 

새 영의 역사로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약속은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들의 공통된 예언입니다(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겔 36:26-27)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영을 받으면 돌같이 굳은 마음이라도 생명체의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 생명이 있는 마음으로 바꾸어져 버립니다.   

 

이런 성령을 주의 날이 시작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어 주신다고 예언합니다(사 44:3, 59:21, 겔 11:19-20, 36:26-27, 욜 2:28-29).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사 44:3)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영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 59:21)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11:19-20)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겔 36:26-27)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욜 2:28-29)

 

마지막 때의 성령은 우리 구원의 보증이 되시고 부활의 보증이 되시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성령을 슬프게 하거나 근심되게 해서는 안됩니다.   

 

3. 말씀을 마음속에 새겨 주시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할 때는 십계명을 돌비의 기록했지만 새 언약은 '나의 법을 그들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하십니다.   

 

여기서 그들 속에는 말은 '케레브'라고 하는데 심장, 내부, 중심을 뜻합니다.   

 

마음은 '레브'라고 한데 속사람 혹은 영혼과 생명이 있는 곳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생각과 행동이 시작되는 우리 마음속에, 지능과 지해가 있는 곳에, 사람의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는 곳에 새겨 주십니다.   

 

고후 3:1-3절을 보면 사랑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다는 것은 인간의 행동을 강제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물든 인간의 완악한 심령을 변화시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천거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 너희에게 맡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고후 3:1-3)

 

지금은 세상 끝 날입니다.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심비가 되어 주님을 맞이함에 부족함이 없는 성전으로 지어져야 합니다.  샬롬.

케레브


렘 5:25절을 보면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고 기록합니다.   

 

즉 죄와 허물이 있는 상태에서는 말씀의 은혜, 평안의 은혜, 기쁨의 은혜, 위로의 은혜, 소망과 물질과 자녀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번성케 하시고 도와주시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 주시고 부요케 하는 복을 주시기를 원하지만 죄가 이것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허물의 사함과 죄가 가리움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 문제에 대하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아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는 것입니다(사 1:18).   

 

죄문제에 대하여 주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모든 죄의 문제를 확실하게 사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새 언약을 받은 자가 누리는 첫 번째 특권입니다.   

 

하지만 죄 사함 받아 죄가 없는 자라고 하여도 '자범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분명히 죄 없는 자인데도 생각과 말과 행동과 표정으로 죄를 짓고 이것이 밖으로 곧 잘 드러납니다.   

 

죄가 드러날 때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은 밖에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회개란 깨끗한 그릇에 묻어 있는 더러운 것을 씻어 버리고 원래의 깨끗한 그룻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좋고 깨끗한 그릇이라고 하여도 담겨 있는 것이 더럽고 그릇 주변애 불결한 것이 묻어 있으면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그릇은 더러움을 씻어내야만 그 그릇을 쓸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따라서 회개란 예수 믿을 때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했을 때마다, 죄를 깨달을 때마다, 죄짓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마다, 말씀을 들을 때 잘못된 것이 생각날 때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   

 

회개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은혜의 자리, 복된 지리로 다시 들어가 새 언약을 완성하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새 언약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모든 복과 하나님께서 내게 기대하시고 더 큰 복을 주시려고 할 때 그것을 가로막는 죄 문제를 치워버리는 은혜가 회개입니다.   

 

새 언약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첫 번째 은혜인 회개의 은혜가 늘 우리 곁에 머물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2023.12.14 - [OOO이란? - 성경 속 궁금한 단어 알려드려요] - 슈브(שׁוּב)와 낙함(נָחַם)

 

슈브(שׁוּב)와 낙함(נָחַם)

슈브(שׁוּב)란 단어의 원뜻은 옛집을 부숴버린 다는 뜻입니다. 즉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슈브라는 뜻은 회개한다, 돌이킨다는 뜻으로 죄 된 생활을 완전히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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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판에 새겨지기를 원합니다.   

 

십계명을 언약의 백성들이 보고 읽듯이 새언약을 맺은 백성들의 心碑에 새겨진 주의 말씀을 모두가 보고 읽고 생활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마음 판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것은 성도의 순종과 아름다운 삶을 보고 우리 이웃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를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두 돌판에 새겨 주신 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주는 것과 같습니다.   

 

십계명 판을 기록한 돌판을 '루아흐'라고 하는데 문자적으로는 돌이나 나무 금속을 말하지만 인간의 靈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 7:3과 3:3절애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영)에 새겨라고 합니다.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 7:3)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 3:3)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맡씀이 우리 마음 판(영)에 그대로 새겨져서 내 영, 내 마음이 늘 보고 읽고 준비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 3:2-3에서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육의 심비의 새겨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너무 단단하게 굳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 손가락 외에는 그 단단한 마음 판에 하나님 말씀을 새길 방법이 없습니다.   

 

출 31:18절을 보면 십계명의 두 돌판도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출 31:18)

 

여기서 '친히'라는 말은 '에츠바 엘로힘'이라는 말로 구약 성경에 세 번 나오는데 모두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따라 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애굽에서 출애굽을 위한 열 가지 재앙을 시작할 때 애굽의 술객들이 처음에는 따라 했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시작되는 세 번째 재앙부터는 따라 하지를 못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모든 병자를 고칠 때도 권능의 손가락을 행하셨고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거나 귀신 들린 자나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자를 용서하여 줄 때도 권능의 손가락 즉 에츠바 엘로힘의 손으로 땅에 글을 쓰셨기에 아무도 나서지를 못합니다(요 8:6-8).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요 8:6-8)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 판에 새겨지려면 먼저 마음 판을 깎아내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돌 판을 깎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출 3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출 34:1-)

 

여기서  깎아 만든다는 말은 '파살'이린 말인데 그 뜻은  새기다 채석하다 자르다의 뜻으로 명령형으로 사용합니다.   

 

돌을 떠내어 세밀하게 자르고 다듬어서 돌판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 판을 깎아내는 회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큰 원수는 날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따라서 양 날이 날카롭게 선 말씀의 검으로 마음속 부패한 곳마다 도려내고 말씀의 불로 숨에 있는 허물까지도 전부 태워 새로운 마음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짓 없는 진실한 믿음과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힘쓰야 합니다(딤전 1: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딤전 1:5)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해서 죄의 본성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타락으로 인한 절망 속에서 메시아를 소망하게 하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깎아서 준비한 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셨듯이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 그 마음 판에 예수의 말씀을 그 마음 판에 영원히 새겨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새겨 주신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만이 우리를 변화시켜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고전 15:51-54).   

 

레마는 마음 판에 印침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 판처럼 우리 마음 판에도 주의 날을 사모하며 주님 맞이 할 성전을 짓고 있는 주의 신부들에게는 '에츠바 엘로힘'의 역사, 즉 주의 손가락으로 우리 마음 판에 말씀을 새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샬롬

 

2023.12.12 - [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 스룹바벨 성전의 중요성

 

스룹바벨 성전의 중요성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가 BC 537년에 제1차 귀환을 합니다. 그리고 BC 536년 2월에 파괴된 솔로몬 성전자리에 새로운 성전을 짓기 시작하지만 대적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이 중단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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