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약 17년 정도 흘렀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가 지시하는 산에서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하여 삼일 길을 걸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결박하고 제단에 묶어 칼을 들어 죽이려고 할 때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이 일을 막으시면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십니다(창 22:13, 14).
"여호와 이레"란 ‘나타난다’의 뜻으로 하나님의 강한 의지를 역사와 시간, 사건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 이레"란 하나님이 내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말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은 반드시 경험한 자만이 고백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경험하고 난 다음에 고백한 말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살펴보고 계시다가 준비하시고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자식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분명하고 확실하지 않으면 자기 자식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죽이라고 할 때 절대로 죽일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늘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실패한 신앙의 반복자였습니다.
자기 아내조차 제대로 지켜 주지 못하는 믿음이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지도, 지키지도 못하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이스마엘을 낳았고 이것 때문에 가정불화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분리의 역사를 끊임없이 이어갔습니다.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면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하란에서는 145세 된 아버지를 두고 떠났으며 가나안 땅에서는 조카 롯과 분리하고 이스마엘과도 분리합니다.
이런 삶 가운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십니다(창 22:1).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은 아브라함을 무너뜨려는 것이 아니고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전적으로 경험하게 하려는 것, 즉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단의 시험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시험은 우리에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나타나기 위한 축복임을 잊지 마십시오. 샬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공급하시기 위한 그 중심에는 이삭이라는 자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렇지만 이삭은 죽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정말 결박하여 번제로 드리려고 칼까지 들었지만 아브라함은 아들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아브라함에게서 뺏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난 뒤에 자신의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이레라는 말은 하나님의 테스트에 성공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복된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테스트는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내어놓는 시험입니다.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고 움켜잡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 위하여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 믿음이 자랍니다.
형편없는 자이지만 하나님이 지켜 주시고 높여주시고 보호하여 주는 것이 발견되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달아지고 그러면 누구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는 두려움이 없고 비범한 힘이 넘치며 어떤 강한 것들이라도 그 사람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보호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하나님이 너와 동행하는 것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창 21:22).
하지만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고 있었어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삭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믿음의 걸림돌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에게는 100세에 얻은 자식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냐, 이삭이냐를 선택하기 위한 테스트를 하십니다.
그리고 네 삶에 중심에 하나님만 있으려면 네 삶의 중심에 있는 이삭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냥 이삭을 밀어내고 옆에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완전히 아브라함의 중심에 계시기 위하여 아예 없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내 삶의 중심에 들어올 수 있을까요.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를 위하여 버렸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라고 했을 때 아브라함은 115살, 이삭은 15살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은 75세에 아들을 약속하시고 백 세에 이삭을 주시면서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아들을 죽이라고 하니 논리적으로 상식적으로 전혀 맞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원망은 했겠지만, 항의하지 않습니다.
지난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히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테스트에 항의하거나 질문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처음 출발할 때부터 자기에게 원하시는 것은 분리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선택이 있을 때마다 그는 언제나 순종했고 이것이 분명할 때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하여 새로운 길을 늘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삭마저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하는 문제를 분명히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항상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나에게 나타나십니다. 샬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것은 그 중심에 하나님만 들어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내 중심에는 하나님만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결단하자 자기 상식과 판단을 내려놓습니다(창 22:8, 9).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이삭을 묶어 제단에 바칩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너무 소중하고 귀한 아들이지만 하나님께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니 아들을 묶어 칼로 들어 죽이려고 합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알아서 준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단번에 칼로 들어 죽이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숨 가쁘게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 아들에게 손대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까지라도 주님이 원하시면 내어놓는 것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네 아들까지 내게 아끼지 않은 것을 내가 보았다’고 두 번씩이나 말씀하십니다(창 22:16, 13). 그리고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어 보니 수풀에 수양 한 마리가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수양을 준비해 놓고 계셨는데 아브라함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자기의 생각과 판단과 내려놓고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아브라함의 눈이 열려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여 놓은 것이 보인 것입니다. 샬롬.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의 이별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발견하고 눈물과 감사로 살아갔을 때가 언제쯤이었을까요. 그때는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소유했을 때였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여호와 이레의 역사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이 준비하여 주시는 복입니다.
내 삶의 중심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내 안에 하나님과 대체할 정도의 소중한 것은 반드시 찾아내 버려야 합니다.
도저히 끊어내지 못하는 나의 이삭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독자 이삭까지 아끼지 않았다고 인정하십니다.
여호와 이레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 자에게만 주어지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내 상식과 생각을 완전히 깨어버릴 때 하나님은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십니다(창 22:18).
하나님은 자신이 내는 테스트에 이긴 자에게는 자신의 사랑하는 독자 예수까지 아낌없이 주십니다.
여호와 이레의 복을 위하여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있어야 할 내 중심에 다른 것이 있지 않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과 축복은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 앞에서 깨어 버릴 때 주어집니다.
나의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만 앉아 있도록 인간적인 모든 것은 빨리 포기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가장 아끼시고 좋아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리고 그 축복은 언약의 성취를 위하여 더 크고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할 때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오시어 우리를 마음껏 축복하십니다.
오늘 이것을 보는 영안이 아브라함처럼 열려 여호와 이레의 복이 준비되게 하소서. 샬롬
2023.01.25 - [하나님의 이름] - 여호와 이레 하나님 (창 22:2) - 1
'하나님의 이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호와 삼마 하나님 (에스겔 48:35) - 2 (0) | 2023.02.05 |
---|---|
여호와 삼마 하나님 (에스겔 48:35) - 1 (0) | 2023.02.05 |
여호와 이레 하나님 (창 22:2) - 1 (0) | 2023.01.25 |
엘 샤다이 (אל שדאי) 하나님 (0) | 2023.01.24 |
엘 엘론(אֵ֣ל עֶלְי֔וֹן)의 하나님 (0) | 2023.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