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5-10)
누가복음 11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합니다.
제자들이 기도할 줄 몰라서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루에 세 번씩 축복기도하는 '18 기도'를 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거룩을 높이는 '카도쉬 기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께서도 처음 공적 사역을 시작할 때 외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려면 회개와 헌신과 부흥을 위한 기도가 필수적이고 절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회개하러 나오는 자마다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께 헌신하고 변화된 삶을 위해서 기도와 금욕적인 삶을 살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회개하면 하나님의 용서가 선포되기 때문에 죄인들을 영접하여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공동체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보물로 여기는 주님의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 6, 7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주기도문은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산상수훈의 중심이 주기도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기 전에 잘못된 기도가 어떤 것인지를 지적하십니다.
마태복음 5:6-8절까지 보면 잘못된 기도는 외식적 기도와 중언부언의 기도라고 지적하십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와 자기가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의 시간만 낭비하는 중언부언의 기도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중언부언 기도의 대표적인 것이 갈멜산 산상에서 엘리야와 대결하는 바알 선지자들이 하루종일 소리치며 자기들의 신께 기도하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나만의 은밀한 기도를 원하시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중언부언의 기도는 하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기도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1장과 마태복음 6장에서는 공통적으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실 때는 두 가지 약속이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는 우리는 기도할 자격이 있는 자요, 또 하나는 기도 응답의 약속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었는데(요 1:12) 이 권세는 기도할 수 있는 권세, 응답받는 권세를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우리에게 주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하고 요구할 자격이 있습니다(마 7:7-8).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 7:7-8)
그리고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나님은 약속하고 계십니다(마 7:11). 샬롬.
주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는 우리는 기도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여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구하는 자에게는 아비가 자식이 악해도 좋은 것을 주듯이 너희도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는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어떻게 기도하여야 할까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늘은 우리가 보는 푸른 하늘이나 창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삼층천의 하늘을 말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 안에 내재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며 천지만물을 하나님의 섭리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며 불가능이 없으시며 새로움을 날마다 시간마다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하나님은 그 말씀의 권세를 우리에게도 입술의 권세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무에서 유로 창조되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바다도 갈라져 육지처럼 되고 때로는 베드로처럼 바다 위를 걷게도 하십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기적이란 너무나 쉬운 당연한 상식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는 구약 4천 년 동안 단 1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때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친 독생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값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마땅한 자들인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문제를 대신 해결하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이것을 믿는 자들은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꾸어져 버립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처럼 마땅히 받을 진노의 자리에서도 사랑과 용서를 받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반역한 아들 압살롬이 심판받아 죽었을 때 '내 아들아 내가 대신하여 죽었다면 좋았을 뻔했다'라고 통곡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면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보다 더 큰 사랑과 진한 사랑의 관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65:2절에 보면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좇아 불선한 길을 행하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다'라고 기록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품을 떠난 죄인들을 끝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계신 아버지는 내 개인의 아버지이자 우리 모두에 아버지가 되시기에 우리는 하늘의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내 개인에서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요나시대 앗수르는 이스라엘과 원수지간이었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저들도 회개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요나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면 모든 사람들은 더불어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 청구권’입니다(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7)
자식은 아바지께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아버지’라는 단어가 무려 118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이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눈치 볼 이유가 없습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부르며 당당하게 필요를 요구해도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 중에 가징 중요한 ‘기도 청구권’(마 7:7)을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도 청구권을 주시며 기도하라고 하셨으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기도 응답을 약속하신 것이기에 주님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기도 응답받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샬롬.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게 하십니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에는 몇 가지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동양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大를 위하여 小를 희생하는 것이고 서양의 사고방식은 개개인을 중요시 여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의 사고방식은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할까요.
무엇보다 내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이 우리의 사고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이름이란 그 사람의 인격과 신분 지위 성격 취미까지 대표하는 것이기에 그 사람 자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 밖으로 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구원자로서 자신을 스스로 계시하여 주십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라고 부르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쓸 것을 예비해 준다고 믿고 '여호와 이레'라고도 부르며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뜻으로 '임마누엘'로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삼위 하나님이 함께하셨다는 뜻으로 '엘로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엘샤다이(창 17:1)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인간에게 복과 위로의 근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7:1)
그 외에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란 뜻으로 '여호와 체바욧'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하나님을 나의 主라고 고백하여 '아도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더불어 언약은 맺으시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불변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여호와 라파, 여호와 치드케누, 여호와 샬롬, 여호와 로이 하나님으로 나타나고 늘 내가 있는 곳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으로 여호와 삼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기도는 길다 짧다 서툴다 유창하다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금식기도든 서원기도든 모든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와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의 최고 특권은 천지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름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샬롬.
돌판에 새긴 십계명은 가장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기록합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먼저 네 신발을 벗어라는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침 받으려면 먼저 내 신발을 벗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기도하려 갈 때는 제일 먼저 내 발의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을 벗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올바른 존경과 공경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40장에 보면 성막이 완공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거룩이 성전에 가득 나타납니다.
즉 성전에서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충만함 속에서 하는 기도이기에 내 신을 벗는 거룩의 자세가 제일 먼저 나타나야 합니다.
이사야 41:10-12 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 거룩하신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지존자이시며 구속자이시기에 그들을 구원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사 41:10-12)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로부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원하시며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에서 높임을 받기 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 삶을 하나님께 바쳐진 삶으로 거룩하게 구별시켜야 합니다.
'하기오스'라고 하는 거룩의 뜻은 구분하다 구별된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이름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삶도 반드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은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합당하게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히브리 산파들이 출산하는 사내아이는 전부 죽여라는 명령을 듣고도 아이들을 살려줍니다.
로마서 11:33절 이하를 보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기도를 하라고 권하고, 에스겔 39:22절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때문에 아브라함과 언약한 그 약속을 따라 범죄 한 이스라엘을 용서하신다고 기록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 11:33-)
그 날 이후에 이스라엘 족속은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줄 알겠고 (겔 39:22)
우리는 밥 먹을 때도 어른들의 식사를 먼저 구별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우리는 어떻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날은 물론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그리고 예배 때 입는 옷과 신발까지 구별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세상 사람과 다른 하나님이 자녀로서 구별된 삶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거룩이란 말 자체가 구별된 삶이며 정말 내 중심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가장 귀히 여기며 거룩히 여기는 겸손한 삶의 자세랍니다. 샬롬.
레위기에 나타나는 제사의 핵심은 제사를 드릴 때 그 예물은 모두 흠 없는 온전한 예물이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반드시 성결과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거룩의 모습으로 나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는 거룩의 자세로 예배할 때 우리 모든 찬양과 시간과 예물을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그래서 호세아 6:3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을 힘써 알자'라고 고백했고, 시편 16:9절에서는 '내 마음과 육체가 오직 하나님을 기뻐한다'라고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 6:3)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시 16:9)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을 나의 소원으로 삼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 영적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초월성, 곧 그분이 세상 만물보다 무한히 월등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스스로 거룩함을 지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시면 평범한 것도 즉시 거룩한 것으로 바꾸어져 버립니다.
거룩함은 '두려운 신비'이기에 우리는 거기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멀리 도망치고 싶어 합니다.
레위기에서 말하는 거룩은 ‘구별된 삶’을 의미합니다. 구별은 선택되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해져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에는 어떠한 특권의식이나 개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별되었으니까 특권의식을 가지고 자기 의에 따라 마음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별되었다는 것은, 우리를 구별하신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구별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성도라고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은 도덕과 윤리에 매여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께 매여 살기 때문입니다. 샬롬.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주기도문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기도는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공적 생애를 시작하실 때 제일 첫 번째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모든 주제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곳이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 하나님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입니다.
따라서 교회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의 통치에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마태복음 12:28절을 보면 우리가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8)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지옥은 하나님의 은총 밖의 세계, 하나님 은총 밖으로 떨어진 곳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하는 심령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을 소유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스스로 자신이 죄인 됨을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만 내 삶을 고쳐주시기에 하나님께 잘못이 있을 때마다 전적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주님이 속히 이 땅에 오시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면 에덴이 회복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노아시대에 온 세상이 타락할 때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새로 시작되었고, 가나안 땅의 모든 사람들이 타락해 갈 때 아브라함을 불러 그 자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곳에서 그 다스림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나라는 멸망하여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메시아를 통하여 새로 건설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누가복음 17:20-21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하였고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눈에 보이는 나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내 마음이 오셔서 나의 왕이 되시고 나는 그 왕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의 왕국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오셔서 나의 왕으로 계시는 것,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그 마음이 은혜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영광의 왕국이란 이 땅에 실제로 주님이 재림하심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땅에 영광의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면 아픔 죽음 고통 괴로움 슬픔 가난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영광의 나라의 주인공으로 우리를 삼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죗값으로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고 그 구원받은 자들을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귀중함을 발견한 자들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자와 같이 자기의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고야 맙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아는 자들은 나의 신체 어느 부분이라도 범죄 하면 찍어내어 불구를 만들어서라도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마 5:29-30).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 5:29-30)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귀중함을 아는 자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절대적으로 살아갑니다.
주님께서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기도를 하라는 말씀은 먼저 내 마음에 은혜의 왕국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내게 임한 자들은 주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어 영광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샬롬.
주님께서는 세 번째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기도를 완성하려면 내 뜻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난 다음에 나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절대순종하는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던 내용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요.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구원과 회복을 계획에 놓으시고 그 뜻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엡 1:11, 딤후 1:9).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 1:11)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1:9)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내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라고 하셨고(요 5:30), '나도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한다'라고 하셨습니다(요 4:34).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5: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기도하여야 하며 자기를 부인하고 실제 내 삶의 목표를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살아야 합니다(요 6:38-39).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38-39)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자신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시킨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라고 하셨습니다(마 7:21-2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7:21-27)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하나님 뜻대로 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뜻을 '델레마'라고 하는데 의지 원함, 뜻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지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를 주님께서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 하나님의 계획하신 바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간절하게 날마다 하여야 합니다. 샬롬.
하나님의 뜻은
1.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이라도 디시 찾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마 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마 18:14)
그래서 예수께서도 주께서 내게 주신 것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요 6:38-39).
내가 하늘로서 내려 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38-39)
2. 성도의 거룩입니다.
성화란 하나님 자녀된 자가 점차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성결케 되어 예수의 형상을 닮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거룩입니다(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살전 4:3)
이사야 6:1-3절을 보면 스랍천사들이 하나님의 거룩을 노래할 때 성전 문기둥이 들썩거릴 정도로 강한 거룩의 힘이 나타납니다.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사 6:1-3)
즉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거룩의 무게와 힘이 있기를 원하십니다(레 11:45, 벧전 1:1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레 11:4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5)
거룩을 카도쉬라고 하는데 구별, 밝음이란 뜻입니다.
죄가 1%라도 섞이지 않은 순수함, 더러움이나 어둠은 전혀 없는 순수 그 자체, 깨끗함을 거룩이라고 합니다.
왜곡함이 전혀 없는 온전함, 그 자체가 영광이 되는 것이 거룩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기 위하여 죄 없는 상태에서 부동자세로 꼼짝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의도하신 그대로 진실하고 정상적으로 기쁘게 사는 것이 거룩입니다.
우리 몸을 잘 사용해서 마음과 행실이 하나님 앞에서 정상적인 것이 되는 것이 거룩입니다.
거룩한 자는 세상 사람의 생각과 기준이 달라야 하고 이 시대를 본받지 않습니다(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성도란 "하기오이"라는 말로 거룩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최고의 칭호인 하기오이 즉 성도라고 불리움 받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의 생활 모습은 전부 예수를 닮았던 것입니다(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2)
주님 닮음의 교회, 주의 핏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교회가 그립습니다.
왜들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 자기 성향대로 예수 믿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거룩과 하기오이, 주님 닮음이 모두에게 보이는 빛 된 교회가 되어 교회가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샬롬.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생명과 평안과 미래의 소망을 가지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요 10:10, 렘 29:11).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렘 29:11)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를 원합니다(요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 9:3)
보잘것없는 땅콩으로 300여 가지의 상품을 만들듯이 하나님의 뜻은 우리 개개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개개인마다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자가 영생을 소유한 성도가 됩니다(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 2:17)
하나님의 뜻은 절대 주권적이고, 그의 뜻은 절대 주권적 의지입니다.
그는 그의 피조물에 대하여 자기 뜻대로 처리하실 수 있는 최고의 권리와 통치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때문에 그 뜻대로 행하심에 대하여 우리는 저항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이 세상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고, 이 세상 모든 인간들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뜻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중보기도의 사명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이지만 사실 이것이 가장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뜻을 찾아야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은 그렇게 신비하게만 느껴졌던 하나님의 뜻이 너무나도 평범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샬롬! 하나님이 한 뜻을 정해 놓으시면 아무도 그 뜻을 거스를 수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뜻은 변함이 없으시며, 그가 하시는 일에 대해서도 어떤 피조물에게도 설명할 책임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주의 뜻에 그대로 아멘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주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아도나이 하나님
‘아도나이’란 나의 주인, 나의 주님이란 뜻으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대체하는 이름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들이 감히 창조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가 없어 아도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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