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 생활 중 이스라엘은 만나에 염증을 느끼고 고기를 먹고 싶다고 모세에게 원망합니다.
그런데 이런 불평과 불만과 원망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합니다(민 11:4).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민 11:4)
이것은 내 속에 섞여 있는 다른 무엇이 주님과의 관계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면 내 안에 섞여 있는 다른 인종이란 무엇일까요.
'탐심, 욕심, 불평불만, 원망, 비교의식, 자기 자랑, 우월의식, 열등감, 자기중심'과 같은 하나님의 성품이 아닌 다른 품성을 말합니다.
이런 것이 내 안에 있으면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크게 쓸 수가 없습니다.
모세에게 닥친 저들의 불평불만이 얼마나 컸는지 모세는 살 소망이 끊어질 정도라고 말합니다(민 11:12-15).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민 11:12-15)
결국 백성들이 울면서 고기를 달라고 하자 하나님이 그 소리를 들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고기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들이 고기를 도저히 먹지 못할 만큼 한 달간 매일 쏟아지게 주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한 달 동안 약 300만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기를 어떻게 공급해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 손이 짧으냐고 하십니다(민 1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민 11:23)
전능하신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달 동안 약 300만 명을 넘는 백성들에게 두 규빗 정도로 진영을 중심으로 하룻길 가는 길의 지면에 메추라기를 쏟아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민 11:31).
바람이 여호와에게로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 곁 이편 저편 곧 진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민 11:31)
두 규빗은 약 1m의 높이이며 하룻길이라면 약 30km를 걸을 수 있는 거리인데 하나님께서는 30킬로의 거리에 약 1m 높이로 한 달 동안 메추라기를 쌓아주시는 모습을 한번 상상하여 보십시오.
그런데 메추라기를 하나님이 사랑으로 주셨을까요.
아닙니다. 백성들이 불평 불만하니 하나님이 화가 나서 먹고 죽으라는 식으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고기를 먹으나 저들은 점점 파리하여졌다고 기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지금은 너희가 고기, 고기 할 때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훈련받을 때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과 꿈과 비전을 향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달려야 할 때이지 고기 타령 할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신 12: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무릇 마음에 좋아하는대로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신 12:20)
배가 고프고 고기가 먹고 싶을 때 하나님이 백성들을 보는 시선과 백성들이 의식주 문제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샬롬.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창 13:14-17)
창세기 13:14-17을 보면 아브라함이 롯을 떠나보내고 난 뒤 하나님께서는 동 서 남 북을 바라보는 것만큼, 종과 횡으로 걷는 것만큼, 너와 네 자손에게 땅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하실 때, 축복의 제한을 두지 않은 것입니다.
현재의 환경을 뛰어넘어 나의 꿈과 나의 언약을 네게 이루어줄 터이니 너는 믿음으로 이것을 바라보고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축복이 있기 전에 아브라함과 롯은 소유의 문제로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목자들과 다툼이 잦아집니다.
초장과 물 때문에 목자들이 서로 싸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으니 네가 먼저 좋은 땅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롯은 자기가 보기에 좋은 소돔이 있는 땅을 선택합니다(창 13:9-13).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창 13:9-13)
여기서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 땅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나옵니다.
롯은 자기가 선택한 땅은 여호와의 물 된 동산 같고 애굽 같은 땅이라고 판단을 하지만 하나님은 소돔의 땅은 악한 죄인들이 사는 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롯은 소돔의 땅은 내게 안정과 평안을 준다고 믿었지만 하나님은 그 땅은 죄악으로 멸망할 땅이라고 말합니다.
시각 차이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롯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물을 볼 때 주어집니다.
결국 롯은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결정을 하고 소동과 고모라 성이 있는 곳으로 떠나갑니다.
롯을 보낸 다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걷는 것만큼 땅을 준다고 약속합니다.
똑같은 땅을 보고 있지만 한쪽은 망할 땅이요 한쪽은 하나님이 쓰시는 땅으로 바라봅니다.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땅을 받으려면 롯의 눈, 롯의 관점, 이스라엘의 섞여 사는 인종들의 눈을 버려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실수는 광야에서 바라보고 구하는 것을 롯처럼 잘못 구한 것입니다.
지금음 고기를 먹을 때가 아니라 비전을 확장하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제한이 없는 축복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달려가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는 문제에 치중하다가 광야에서 전부 죽고 맙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하나님의 축복을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자신이 이루고자 하여 아프리카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동안 나라마다 바다 산 땅을 지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믿고 이 땅을 내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10년 후부터 비행기 안에서 믿음으로 바라본 것만큼 그 사람의 영향력이 확장되었고 그리고 지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원하는 만큼 고기도 음식도 마음껏 먹고 모든 사람을 축복해 주는 자가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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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창 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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