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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십니까? 000 이야기

보아스와 아무개

by 빛결샘숲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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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쉴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이 쓴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사과나무는 어릴 적부터 사과나무와 함께 뛰어놀고 안기며 그네를 타면서 숨바꼭질하는 소년과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과나무는 자신의 과일도 가지도 줄기도 전부 소년의 필요를 따라 내어 줍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마침내 그 소년이 노인이 되어 쉴 곳을 구하려 찾아오자 사과나무는 자신의 큰 나무둥치를 잘라 노인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의자가 되어줍니다.

 

 이 나무는 무조건 주기만 하는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진실한 사랑은 대가나 유익을 바라지 않고 자신에게 손해가 있고 불이익을 당하여도 상대방을 기쁘게 해 준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사랑이란 바로 죄인 된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시다가 마침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하여 죽어주심으로 완전한 희생을 하신 사랑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내가 필요할 때는 단물만 쏙 빨아먹고 그다음부터는 내 식대로 생활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조건없이 끝까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결국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나 예수님의 사랑 사건은 진정한 사랑이란 상식을 뛰어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기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된 자를 위해서도 사랑하고, 나를 이용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고, 심지어 자기의 필요를 따라 사랑하는 체하고 접근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자는 그냥 그대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고엘이 되는 길이랍니다.

 

 하잖은 사과나무도 아낌없이 모두 내어주는데 우린 사과나무 한 그루보다 더 못한 생활을 한다면 이것보다 슬픈 나의 자화상이 어디 있을까요...... 샬롬.

 

 

 룻기 4장을 보면 핵심적인 두 인물이 등장합니다. 보아스와 아무개입니다.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룻4:1)

 

 나오미의 가정의 기업을 무를 고엘의 사람 중에 일 순위 사람이 아무개요 이 순위 사람이 보아스입니다.

여기서 아무개는 한마디로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나오미의 고엘이 되어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자기 돈으로 나오미가 팔아 버린 밭을 사서 나오미에게 다시 돌려주면 그 며느리 룻에게서 자기 자식이 나와도 그 밭은 나오미의 밭이 되고 그 자식도 나오미의 자식이 되기 때문에 이래저래 손해 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자기에게 손해가 있다고 하여도 나오미의 며느리요, 과부인 룻과 결혼을 하여 나오미의 자식을 낳아주고 그 집안의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려고 합니다.

 

 왜 보아스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룻과 결혼을 하려고 할까요.

 

 룻의 가치를 본 것입니다. 과부요, 이방인이지만 룻에게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본 것입니다.

 

 분명히 저 여자가 여기까지 하나님만 선택하고 따라와서 희생적으로 시어머니를 섬기는 모습을 볼 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과 섭리가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결국 이타적인 사랑과 영적 예민함으로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가 되고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까지 이름이 기록이 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사람에 대한 영적 예민함을 회복하십시오.

 

 우리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이 무엇인지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아도 그 사람들과 그 교회의 가치를 발견하면 내가 많은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놓치지 마십시오.

 

 이것이 이 땅에서 나의 이름도 아무개처럼 되지 않고 내 이름 석자가 보아스처럼 주의 족보에 기록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된답니다.................... 샬롬

 

 

 룻기 4장에서 보아스와 아무개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영적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아무개는 자신에게 우선권이 있어도 자신이 물질적인 손해를 보면서까지 룻과 결혼하여 나오미의 가정을 회복시키는 고엘이 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자기의 물질을 손해를 보면서까지 룻과 결혼을 하여 고엘이 되려고 합니다.

 

 이것이 결국 다윗의 조상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그 이름이 기록이 되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됩니다.

 

 물론 보아스는 룻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과 섭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몰랐습니다.

 

 그러나 룻의 가치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축복의 일 순위인 아무개를 제치고 엄청난 축복을 차지하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 역시 축복을 스스로 져버린 사람이 되어, 이름이 있어도 하늘나라에 이름을 기록되지 못하는 아무개가 되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무개는 영적 감각이 둔한 사람입니다. 대신에 계산에 능하고 손익계산서를 지독하게 따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숨겨진 거룩한 계획을 보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무지하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눈에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의 가치를 모르고 그 교회의 가치를 모르고 그저 자기 눈에 따라 판단하고 계산하며 살아간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족보에 이름이 기록될 자가 그 이름이 삭제되고 이름 없는 아무개가 되어 버리는 이유랍니다.

 

 바라건대 제발 나의 얄팍한 계산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둔한 자가 되어 나의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아픔을 겪지 마십시오.

 

 아무개라는 이름 없는 삶이 되면 이 땅에서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주와 함께 영원히 살아갈 그 나라에서는 엄청난 저주로 떨어져 영원히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가 되고 만답니다........ 샬롬.

 

 

 룻기 4장의  보아스와 아무개의 이야기는 얼마든지 우리도 아무개의 신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나의 손익 계산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가치나 그 교회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내 판단대로 결정하다가 귀하게 쓰임 받을 자가 결국에는 이름 없는 아무개로 전락하여 버립니다.

 

 이런 사건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답니다.

 

 결국 처음의 거룩한 계획에 들어있지 못했던 보아스가 아무개를 제치고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하나님의 구속사에 한 획을 긋게 된 것은 그의 삶 자체가 영적 깊이가 있고 영적 예민함과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보는 눈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심에 치우치거나 작은 탐심과 계산 때문에 한 순간에 제삼자에게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빼앗기지 마십시오.

 

 고엘의 진리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위대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도 이름 없는 아무개처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이름이 없습니다.

 

 "보아스와 아무개". 아무리 생각하여도 가슴 섬뜩한 사건이고 영적 아픔이 아려오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위대한 기업을 무를 자인 영적 고엘들이란 것, 이것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고 살아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날에 우리 역시 내 이름이 지워지고 아무개라는 이름 없는 자가 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영적 우둔함과 나의 손익계산서가 한순간에 이름 없는 아무개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샬롬

 

2023.03.06 - [OOO이란? - 성경 속 궁금한 단어 알려드려요] - 고엘 이야기

 

고엘 이야기

룻에게 보아스가 고엘이 되어 주려고 하지만 먼저 일 순위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때문에 보아스는 그 사람을 제치고 룻과 결혼하여 나오미의 가정의 기업을 물려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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