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은 북이스라엘 왕 아합의 딸 아달랴와 자기의 아들 여호람(요람)과 결혼시켜 아들을 낳고 아하시야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아하시야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붙잡았다,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나중에 그가 남유다의 6대 왕으로 등극하지만 여호람과 아달랴의 영향을 받아 악한 왕 아합의 길로 행하여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늘 죄를 짓고 사는 악한 왕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에 있을 때 계속적으로 아합의 집에서 우상숭배 하던 것을 아하시야에게 가르쳤고 그것을 섬기도록 충고하고 조언하면서 절대적으로 악한 영향을 끼친 자입니다(대하 22:3).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 모친이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대하 22:3)
아하시야는 아버지 여호람이 악을 행하다가 창자가 빠져 비참하게 죽는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아달랴의 사주를 받아 아합과 이세벨의 길을 따라갑니다.
우상숭배란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믿고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걸려들면 진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섬겼던 금송아지 신을 섬기다 보니까 하나님의 역사와 약속과 언약을 보지 못했던 것과 같습니다.
아하시야는 북이스라엘 왕 요람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왕 하사엘과 전쟁을 합니다(왕하 8:28,29).
저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요람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있으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르엘에 내려가서 방문하였더라 (왕하 8:28,29)
두 사람은 외조카와 삼촌 사이인데 전쟁 중 요람은 부상당하여 이스라엘로 돌아갔을 때, 아하시야는 요람을 문병하러 갑니다. 이때 북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인 예후가 반란을 일으켜 화살로 요람의 염통을 꾀어 죽이고 도망가는 아하시야까지 예후의 부하들이 쫓아가서 므깃도에서 죽여 버립니다(왕하 9:24-27).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살이 그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저가 병거 가운데 엎드러진지라 예후가 그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취하여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 아래 같이 저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시체를 취하여 이 밭에 던질찌니라 유다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쫓아가며 이르되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저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왕하 9:24-27)
그러니까 아하시야는 문병으로 갔다가 그곳에 일어난 반란자들의 손에 처참하게 죽은 것입니다. 그가 죽자 사람들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여호사밧에 비하여 그의 손자인 아하시야는 여호사밧의 신앙이 제대로 전수되지 못한 것을 가슴 아프게 표현합니다(대하 22:9).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 예후가 찾으매 무리가 예후에게로 잡아다가 죽이고 이르기를 저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하고 장사하였더라 이에 아하시야의 집이 약하여 왕위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라 (대하 22:9)
아하시야는 일 년을 통치하고 비참하게 타국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죽게 되는데 아하시야의 죽음은 하나님이 붙잡아주지 않는 자의 삶은 어떻게 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아하시야의 이름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붙잡힌 자, 하나님의 소유, 그것도 아주 특별하게 소유된 자들입니다(레 20:26, 슥 2:12, 말 3:17).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 20:26)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슥 2:1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말 3:17)
하나님은 자기의 소유된 자는 끝까지 보호하시고 함께하여 주십니다(사 43:1,2).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사 43:1,2)
그런데 아하시야는 악한 어머니 아달라의 사주를 받아 악을 행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북이스라엘의 아합의 아들이자 외삼촌 요람과 손을 잡고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소유됨에서 벗어나 악인과 손을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악인 요람과 그와 가까이 한 아하시야를 동시에 땅에서 죽게 합니다.
이름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며 살아가면 반드시 하나님은 악인과 함께 엎드려지게 한다는 교훈을 우리는 가슴에 새겨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자, 하나님께 붙잡힌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손으로 붙잡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유로 끝까지 겸손하게 살면 물을 지날 때도, 강을 건널 때도, 침몰치 못하게 지켜주시고 불꽃마저 사르지 못하게 지켜주십니다.
예수의 족보에 이름이 기록되어야 할 하나님께 붙잡힌 하나님의 소유된 자가 그 길에서 벗어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우리는 아하시야의 그릇된 신앙을 통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샬롬.
2023.04.11 - [짧은 영성의 만남] - 지워지지 않는 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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