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레미야는 나라의 멸망을 앞두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땅을 삽니다.
그 이유는 땅의 회복처럼 유다가 앞으로 회복될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실제 이제 곧 나라가 멸망할 것에 대한 슬픔으로 답답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아! 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주의 큰 권능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주께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나이다(17).'
힘들고 어려울 때 기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야곱은 에서의 손에서 구하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고(창 32:11), 다윗은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이 나와 내 집을 인도하시느냐'고 감사하며 기도합니다(삼하 7:18).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창 32:11)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삼하 7:18)
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기도하여야 할까요?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주께는 능치 못할 일, 어려운 일이 없다는 말씀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16, 17절).
세상의 끝 날이 다가올수록 주의 모략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뻐하시는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이사야 48:10-11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를 정련하되 은을 정련하듯 정련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용광로 속에서 택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해 곧 나를 위해 그것을 행하리니 어찌 내가 내 이름을 더럽히겠느냐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느니라.'
자기 백성들이 잘못하여 큰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 대한 회복은 고난의 용광로에 넣어 담금질을 해서라도 반드시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곧 있을 환난이라는 고난을 겪지 않고 곧장 주의 영광에 동참하는 남은 자의 복이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샬롬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시 132:8)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찌어다”(시 29:1)
“대저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시 89:6)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모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욥 12:13)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시 118:16)
히브리어 게브라(גְּבוּרָה)는 “힘, 권능, 능력, 권세”를 의미합니다.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의 힘을 말합니다.
그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뜻합니다.
게브라(גְּבוּרָה)는 “전능, 위대, 강력, 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와 권세 곧, 그 어떠한 피조물도 감히 하나님께 대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심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게브라(גְּבוּרָה)의 권위는 모든 피조물에게 절대 순복을 요구합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발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만드셨기에 그 권한은 절대 하나님께 있기에 그분께 순복하는 것을 히브리어로 쉐마(שְׁמַע)라고 합니다.
“듣다”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는 피조물인 사람에게 “들을 것”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은혜와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이요,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권능, 게브라를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한 주간 주의 게브라가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주의 권능의 역사가 일어나기 위하여 쉐마의 간절함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유다가 멸망하게 된 이유는 첫째 강대국을 의지하였기 때문이요, 둘째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요, 셋째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에서 벗어난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예레미야는 수없이 강조하고 말하며 잘못됨에서 떠날 것을 말했지만, 끝까지 왕과 지도자들은 이 말을 듣지 않고 불순종함으로 결국은 나라가 멸망하고 맙니다.
예레미야는 조국의 운명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찢어질 듯이 아픕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몇 년 전부터 시작되는 것이 보이는데도 자기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더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며 울면서 기도합니다.
18절에 보면 예레미야는
'주께서는 수천의 사람들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시며 아버지들의 불법을 그들 뒤에 오는 그들의 자손들 품에 갚으시니 위대하신 분, 강력하신 하나님, 군대들의 주가 그분의 이름이니이다'
라고 하나님을 먼저 찬양합니다.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 게부라의 힘과 능력으로 주의 은혜, 주의 군대로 이 나라를 지켜달라고 기도합니다.
19-22절을 보면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께 다시 기도합니다.
주님은 모략이 크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모략이란 우리의 생각과 고민과 목적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힘을 말합니다.
하늘의 모략은 인간의 머리로는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주의 모략인 에차(עֵצָה)는 하나님의 깊은 계획이나 전략을 의미하며, 그 속에는 인간의 지혜와 생각을 초월하는 치밀한 섭리가 담겨 있는 것을 말합니다. 샬롬.

이사야 28:21절을 보면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 일이 기이할 것이며 자기의 공사를 이루시리니 그 공사가 비상할 것임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건져내십니다(출 6:1).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할 때 애굽의 은 금을 가지고 나오게 함으로 이스라엘 가운데는 허약한 자, 가난한 자들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시 105:37).
그들을 인도하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시 105:37)
지금 예레미야는 조금이라도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진노가 감해지도록 기도합니다.
만군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크신 이름 때문에 광야에서 범죄한 이스라엘까지 용서하셨고(출 32:11-14),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자들에게도 회복으로 용서합니다(겔 20:14).
그래서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자기 백성만은 기필코 구원하신다는 것을 약속하십니다(겔 39:8).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출 32:11-14)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겔 20:14)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볼찌어다 그 일이 이르고 이루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니라 (겔 39:8)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느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리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내가 내 의의 오른손으로 너를 떠받쳐 주리라' (사 41:10).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23절을 보면 끝까지 주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모든 재앙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회복과 약속을 약속하여도 끝까지 듣지 않으니 모든 재앙이 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원을 아무리 약속하여도 듣지 않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예루살렘에 의인 한 사람만 있어도 내가 구원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여도 의인 한 사람이 없어 이스라엘은 망하고 맙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샬롬
예레미야 7:24, 1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하였어도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로 그들에게 응하게 하였느니라 하라"
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렘 7:24)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각각 그 악한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라 명하였어도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로 그들에게 응하게 하였느니라 하라 (렘 11:8)
예레미야가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자기 죄악을 먼저 하나님의 공의 앞에 드러내어 놓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 심판이 시작되면 그 어떤 것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때의 심판 역시 칼과 기근과 온역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25절에 보면 예레미야는 인간적으로나 상식적으로 결코 이해되지 않는 전쟁 중에 하나님께서 밭을 사라고 하셔서 자기는 밭을 샀지만, 이 나라 이 백성들은 반드시 망한다고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선포합니다.
그러나 네가 회복을 믿고 밭을 샀기 때문에 반드시 그 증표대로 회복을 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3:7절에서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우리에게도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 임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그 어떤 것이라도 회복의 증표를 주시면 그대로 믿고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와 하나님의 크신 팔로 큰 권능을 내게 행하심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예루살렘이 죄악으로 멸망하듯 이 세상 역시 이제 곧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심판받는 것처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청종치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강퍅한 마음 그대로 행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의인들에게는 세상에 심판이 임할 때,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갑니다.
저는 오늘 아침, 떠오르는 붉은 햇살 속에서 황홀하고 찬란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샬롬.
[당신은 누구십니까? 000 이야기] - 감금되는 예레미야(렘 31:1-5)
감금되는 예레미야(렘 31:1-5)
유다의 멸망 1년을 앞둔 시드기야 10년째 되는 B.C. 587년에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다시 예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 하여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 것이니, 이것을 대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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