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힌 시대는 바벨론에 의하여 남유다의 멸망을 앞둔 B.C. 587년입니다. 이때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유다를 정복해 나라는 망하고 왕은 포로로 끌려간다는 예언을 함으로 정치범들이 갇히는 왕궁 시위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예언이 임합니다. 며칠 후에 사촌 형 하나멜이 와서 땅을 사라고 하면 그 땅을 사라는 것입니다(렘 32:7-8). 이 말씀대로 예레미야는 하나멜에게 은 17세겔을 주고 고향 땅 아나돗의 땅을 삽니다(9절).
여기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나라는 1년 후에 완전히 망해버리는데 땅을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많은 돈을 주고 이 땅을 삽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8절). 예레미야는 이 땅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땅을 샀다고 고백합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절대로 땅을 살 수가 없습니다. 선지자에게는 농사지을 땅이 필요 없고, 더욱이 지금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혀 있고 일 년 후에는 나라가 망하여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 땅을 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조건 순종(Shama, שָׁמַע)합니다. 나라가 적군에게 멸망하는 것을 예언하고 시드기야 왕이 포로로 끌려간다는 것을 예언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런 엄청난 예언을 함으로 그는 감옥에 갇힙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으니 그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님은 "믿는 자들만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들만 믿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따로따로가 아니고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 믿음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내가 얼마나 어떻게 순종하느냐에 따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시고 상식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높고 나의 길보다 하나님의 길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사 55:9).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할 줄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리고 계약서를 작성하여 하나는 아무도 볼 수 없게 만들고 하나는 동네방네 떠돌아다니면서 땅을 산 계약서를 보게 합니다(10-11절). 왜 그렇게 했을까요?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왜 이 밭을 사라고 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나라는 망하고 초토화되지만 나중에 포로에서 다시 돌아와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다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전쟁으로 나라가 뒤숭숭할 때 "두려워 말라 이 땅은 다시 회복될 때가 오니 그때는 이 땅이 필요하다"고 하며 희망과 소망을 선포합니다.
예레미야는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지금 내일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낙심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현재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밭을 산 것입니다. 샬롬.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순종합니다. 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예언하고 시드기야 왕이 포로로 끌려간다는 것을 예언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일을 예언하라고 하시니 그대로 예언하다가 예레미야는 감옥에 갇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그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믿는 자들만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들만 믿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따로따로가 아니고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 믿음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내가 어떻게 순종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시고 도덕이나 상식에도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높고 나의 길보다 하나님의 길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사 55:9).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한다는 예언이 엄청난 문제가 생길 줄 알면서도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리고 땅을 사서 계약서를 작성하여 하나는 아무도 볼 수 없게 만들고 하나는 동네방네 떠돌아다니면서 땅을 산 계약서를 보게 합니다(10-11절). 왜 그렇게 했을까요?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왜 이 밭을 사라고 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이 나라가 이제 곧 망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지만 나중에 포로에서 다시 돌아오게 되면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다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전쟁으로 나라가 뒤숭숭할 때 "두려워 말라 이 땅은 다시 회복될 때가 오니 그때는 이 땅이 필요하다"고 하며 희망과 소망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절망적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공개적으로 밭을 사고 계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내일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낙심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참 예언입니다. 샬롬.

어느 시대마다 하나멜과 예레미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멜이 미래를 보는 자였더라면 땅을 결코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는 미래의 약속을 확실히 보았다면 결코 땅을 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멜은 전쟁의 공포가 깊어지니 땅을 팔고 조국을 떠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상 대대로 내려왔던 그 땅을 팔아버립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나라가 망하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런 소망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미래의 회복은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이 일은 70년 후에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땅을 사라고 하시니 땅을 삽니다.
그리고 자기가 이 땅을 사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하나멜은 눈앞에 있는 오늘만 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믿음의 눈으로 내일을 보는 자입니다.
대원군의 쇄국정치는 내일을 보지 못하는 정치 지도자였기에 중국, 러시아, 일본의 침략을 막지 못해 나라는 어려움을 당합니다. 정치하는 지도자들은 멀리 보는 눈이 열려야 하고 부모 또한 자녀의 미래를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를 이끌어가는 영적 지도자들이 미래를 보지 못하면 어둠의 세력에 교회는 무너지고 맙니다.
거룩한 주일을 준비합니다. 빛의 자녀들은 빛의 인도를 받아 거룩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가오는 미래를 보는 눈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바둑과 장기를 두는 고수들은 적어도 몇 수 앞을 바라보고 두기 때문에 하수들은 결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운전하는 베테랑들은 앞에 있는 차들의 몇 대 앞을 보고 운전하기에 웬만하면 급브레이크를 밟지 않습니다. 급브레이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초보자들이 많이 밟습니다.
내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사람은 삶이 쉽게 흔들립니다. 즉 차를 타고 가더라도 멀리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멀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멀리 보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멀리 보는 사람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안에는 미래를 보는 예수라는 보배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고후 4:7).

삼국지를 보면 사람을 가려 볼 줄 아는 선구안(先驅眼)을 갖고 있는 유비도 그렇지만 유비를 주인으로 알고 섬기는 제갈공명이 있었기에 변방에서 오지의 열악함을 딛고 일어나 천하를 삼분하는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보면 400여 년 전 서애 류성룡이 정승으로 있을 때 시골 현감에 불과했던 이순신을 찾아내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로 천거해 바다를 지키게 한 덕분에 우리나라가 왜구의 침략을 당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나라를 지켜낸 명장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수의 눈, 즉 영안이 열리면 어떤 일을 보고 준비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때는 마지막 때를 보는 눈이 열려야 하고 모든 것을 선택하는 기준도 눈이 열려야 합니다. 영안이 열리는 것이 때로는 구원과도 상관이 됩니다. 샬롬.
배 한 척이 갯벌 위에 을씨년스럽게 삐딱하게 누워 있습니다. 배는 낡았고 갯벌 위에 뒹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배 밑에는 '반드시 밀물의 때가 온다'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썰물의 시기가 끝나면 반드시 밀물이 온다는 것입니다. 어느 세일즈맨이 이 그림을 보고 지금 시기를 극복하면 반드시 성공의 때가 온다고 믿고 달린 결과 재기에 성공합니다.
미국의 윌리엄 수어드(William Seward)라고 하는 미 국무장관이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를 주고 사서 미국의 50번째 주로 편입시켰습니다. 이때 모든 사람은 온갖 비난을 다 퍼부었지만, 지금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세금을 제일 많이 내는 주(州)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알래스카에서 금, 석유, 가스 등 헤아릴 수 없는 자원이 나오고 군사적 경제적 가치가 상상을 초월한 주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멜은 내일과 미래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을 전혀 모르고 현실만 보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회복된 미래를 봅니다. 썰물의 시간이 끝나면 밀물의 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절망과 힘든 기간에 하나멜은 현실만 보는 것을 가르쳐 주지만 예레미야는 절망 가운데에서 희망을 가르쳐줍니다. 결국 멀리 보는 사람은 현실에 좌우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합니다.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는 할 수만 있으면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이든 회복을 원하면 현재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미래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보는 자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자기 계발에 힘써야 합니다. 신앙도 은혜 안에서 꾸준히 자라나야 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약속을 보지 못하는 거리가 생깁니다(사 59:1-2). 죄는 어둡고 무거운 것이기에 깃털처럼 살지 못하고 멀리 보지 못합니다. 죄는 위의 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골 3:1). 성경에 보면 현실적인 자들은 전부 눈앞의 이익만 쫓고 살다가 망한 사실들을 많이 발견합니다(눅 12장, 마 25장).
썰물의 시간이 끝나면 밀물의 시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이치를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교만이란 자신의 능력이 넘쳐서 주체를 하지 못하는 상태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 제한되어 아무런 효능과 가치가 없는데도 있는 줄로 착각하는 존재들도 교만한 자들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바로 소경이며 맹인인데 그들은 눈을 뜨고 모든 사물을 잘 보고 있는 줄로 착각합니다.
사탄은 우리들이 믿고 있는 상황에서 눈을 어둡게 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여도 눈이 어두워질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지만 이것을 그대로 배워도 내 눈이 어두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이나 말씀이 임할 때는 예레미야처럼 확실한 분별의 영을 사모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진짜 같은데 가짜가 많고 가짜를 또한 진짜로 믿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진리 같은 자들이 잘못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믿기 때문입니다. 항상 심판과 멸망의 원인에는 이런 이유가 많습니다. 샬롬.

[분류 전체보기] - [멀리 보는 신앙 (렘 32:6-15)] : 왜 하나님은 망해가는 나라에서 땅을 사라고 하셨나?
[멀리 보는 신앙 (렘 32:6-15)] : 왜 하나님은 망해가는 나라에서 땅을 사라고 하셨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소망(티크바, תקוה)을 두고 살아가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현실 너머의 끝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그래서 현재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고 본인이 가진 소망으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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