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 모든 제물의 기름을 좋아하시는 이유는 기름은 생명을 윤택케 하는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피는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의 원천입니다. 기름은 그 생명의 에너지요 생명을 윤택케 하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기름이 없으면 짐승은 마른 뼈다귀처럼 말라버립니다.
몸에 기름기가 있어야 살도 찌고 통통합니다.
고대에는 기름이 내장에 많이 붙어 있으니 기름을 감정의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즉 신장, 간, 내장, 콩팥에 붙어 있는 기름이 감정을 생기게 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기구로 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속담에 애간장을 태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속이 타고 신경이 많이 쓰일 때 내 속사람의 원천인 기름이 탄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과 피를 다 쏟으셨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기름까지 다 뽑아내어 하나님께 드렸다는 상징입니다.
그래서 '내가 다 이루었다' 하는 주님의 마지막 유언은 승리의 선언이요, 행복한 선언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드린 번제(올라, עֹלָה)의 완벽한 제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기름까지 죄 문제 해결을 위하여 다 태우신 은총으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최후의 완성, 최후의 성취는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은총으로 이루어지기에 하나님의 은총이 바로 인간 구원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는 최고의 기름처럼 가장 귀한 것입니다. 샬롬.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육체의 엄청난 고통은 번제물의 죽음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비참한 죽음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니 주님의 죽음은 행복한 죽음이 됩니다.
주님은 마지막 피 한 방울의 기름까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행복한 감정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번제물은 온 몸을 그대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제물의 껍질을 벗기고 나면 각을 떠서 하나하나 그 몸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리고 육체의 껍질이 벗겨지고 짐승의 속을 다 드려도 가장 중요한 내 감정과 내 심령과 내 의지와 나의 모든 생각의 기름까지 하나님께 확실하게 드려야 하는 것이 번제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속사람이 마지막까지 변질되지 않기 위하여 나의 속사람을 제단의 네 뿔에 온전히 붙들어맵니다(시 118:27).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신실함이 중심이 되어 흠이 없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은혜가 임하면 그냥 아멘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애틋한 사랑과 행복한 감정으로 충성하고 맹세하겠다는 아름다운 고백으로 아멘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나의 가장 귀한 기름을 주님께 드려 나를 제단 뿔에 매는 것입니다. 샬롬.

누가복음 24:44절을 보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것은 예수가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의 모든 역사와 사건과 일과 특히 레위기에 기록된 모든 제사법은 전부 예수를 가르쳐줍니다.
상번제(타미드, תמיד)는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하는데 번제란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하는 제사입니다.
소제(민하, מִנְחָה)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자리로 고운 가루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를 상징합니다.
화목제(쉘라밈, שְׁלָמִים)는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과 예수와 화목을 위한 제사인데 이 말은 '샬롬'에서 나왔습니다.
'샬롬(Shalom, שָׁלוֹם)'이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충만하여 넘치는 평강과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상태로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내가 누리는 복을 말합니다.
화목은 구원받은 사람이라도 우리 육신의 모든 것을 벗을 때까지 즉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 반드시 하나님과 내가 화목하기 위하여 날마다 진행되어야 할 제사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5:20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 명령합니다.

하나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님과의 화목은 반드시 모든 사람과 내가 화목하는 것으로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롬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8)
화목제는 번제와는 달리 소나 양, 염소의 내장의 기름과 꼬리뼈의 기름만 하나님께 드립니다.
화목제에서 기름은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것을 상징하며, 제물의 가장 귀한 부분으로 여깁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기름이 부와 풍요, 힘의 근원으로 간주되었기에,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힘과 풍요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분께 되돌려드리는 진심을 의미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주님께 화목제를 드림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칩니다. 샬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의 조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반드시 우리가 가진 영적인 태도와 마음가짐 그리고 예물이나 행위 자체의 특성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의 뜻에 따라 의롭고 공평하며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물 자체는 흠이 없고 최선의 상태여야 하며, 영적인 제물로서 우리 자신의 몸만큼 귀한 것이 없으니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영적 자세로서의 '산 제물'은 로마서 12:1에서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살아있는 몸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예배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드러나도록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실천되는 것입니다.
산 제물이란 살아있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몸, 즉 생각과 행동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순종적으로 드려, 삶 자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인 예배가 되고 이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면
"...내가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라고 고백합니다.

십자가를 만난 자는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주님 앞에서 꺾을 줄 압니다.
마치 주님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뜻을 굽히고 아버지의 뜻만 이루어지기를 소원한 것처럼 주님 앞에 자신의 불완전한 모습을 주님의 영광 앞에 적나라하게 발견하고 자기 고집을 성령으로 꺾는 자가 십자가를 만난 자입니다.
누가복음 22:42절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은 자신에게 닥쳐올 결론을 이미 알면서도 자신의 소원을 아버지께 아뢰지만 결국 주님의 원함이 아닌 아버지의 원함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길 기도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신앙의 자세가 주님께 나의 기름을 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생명으로 사는 것, 이곳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사는 길입니다. 샬롬.
창세기 27:27절을 보면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받은 축복 중의 하나가 땅의 기름짐의 축복인데 이 복은 이 땅에서 누리는 최고의 복을 말합니다.

골로새서 1:19-22절을 보면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이유가 예수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회복시켜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함이라고 기록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골 1:19-22)
'너희는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예수의 육체의 죽음은 기름까지 쏟는 것으로 자신의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샬롬을 주기 위하여 희생하신 화목제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 즉 평강, 기쁨, 행복, 사랑의 충만을 자신의 기름을 통하여 하늘에서 가져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구약의 성전에서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짐승의 제물에 안수하고 죽여 껍질을 벗겨 하나님께 불태웠는데 이것은 내가 죽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나는 죽노라' 하며 상번제를 드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내 자신을 죽이는 증거는 사람에게 나를 주장하지 않도록 나의 모든 각각의 부분들을 제단 뿔에 매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번제물을 드릴 때 내장의 기름을 따로 떼내어 드리는 것이 화목제입니다. 따라서 나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화목제물이 되고 내 마음의 가장 깊은 중심(케레브, קֶרֶב)이 화목제물이 됩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이 예수를 알고 믿는 것이라고 하는 증거는 예수가 나의 모든 것이 되면 내게 있는 다른 것은 배설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중심이 되는 기름진 삶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화목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이 야곱처럼 주님으로부터 기름진 삶을 받아 살게 되는 복입니다. 샬롬.
하나님은 대통령보다 무한히 존귀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에 지극히 작은 흠이라도 있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존귀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올바로 대우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의 조건은 반드시 수컷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짐승의 수컷은 암컷보다 질이 훨씬 우수하고 보기에도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때는 반드시 수컷으로 바쳐야 한다는 말씀은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지는 짐승은 짐승들 중에서 가장 질이 좋은 것을 바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은 가장 좋은 짐승을 바쳐야 할까요?
왜냐하면 그 제물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전 우주와 영계에서 가장 존귀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는데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헌금을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배나 헌금만이 아니라 내가 가진 가장 기름진 중심을 원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 우리의 시간을 바칠 수도 있고, 우리의 재능을 바칠 수도 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유 중 일부를 바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을 바칠 수도 있고, 우리 자녀를 바칠 수도 있습니다.
내일은 거룩한 주일(욤 카도쉬, יוֹם קָדוֹשׁ)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신령과 진정의 기름진 예배를 드리게 하소서. 샬롬.
레위기에서 기름과 피, 콩팥은 먹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풀밭에 농약이나 DDT를 뿌립니다. 그 약이 묻은 풀을 소나 양이 먹습니다. 그러면 몸에 해로운 DDT는 기름으로 갑니다.
만약 기름으로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면 그 독소 때문에 소가 죽습니다.
모든 독소는 기름 즉 지방으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기름은 항상 독소를 흡수하고 그 독소가 기름에 녹게 됩니다. 천천히 녹아서 콩팥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동물을 잡아서 분석해 보면 독소가 제일 많은 곳이 기름, 피, 콩팥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3:15-16에 보면 모든 기름과 두 콩팥은 제사장에게 주어 단 위에 불살라 화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취할 것이요 16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레 3:15-16)
"기름을 먹지 말라" 무슨 뜻입니까? 독을 먹지 말라는 뜻입니다.
동물의 기름을 먹으면 우리 몸에서 배설이 안 된다고 합니다. 기름이 우리 몸 안에 많아지면 콜레스테롤이 많아져서 동맥경화성 질환이 생기는데 중풍이나 심근경색, 지방간 등 어려운 병이 생기게 된다고 했습니다.
기름을 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생각하시는 말씀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영어성경에 보면 기름을 oil이라고 하지 않고 fat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살찐 것, 지방질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기름이 몸에 얼마나 해로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독소를 먹지 못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넓고 자상하신 사랑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름을 먹지 말라는 말씀은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기름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전적으로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드리지만 기름과 피를 제외하고는 다 우리에게 되돌려 줍니다.
기름은 인체에 해로우니 하나님의 몫으로 가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고 구분할 줄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샬롬.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며 또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따라서 내가 받은 모든 것에 대하여 특별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릴 줄 아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많은 시간 가운데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시간은 그것은 성일입니다.
많은 물질 가운데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드려야 할 것은 십일조(마아세르, מַעֲשֵׂר)입니다.
특별히 이 두 개, 즉 십일조나 주일을 내 것으로 알고 먹어 버리면 그것은 큰 화가 됩니다.
반대로 십일조를 드리고 주일을 성수하면 우리에게 큰 복이 되어 우리에게 안겨옵니다.
신앙의 기본이 하나님의 것과 내 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물의 기름은 따로 떼내어 온전히 태워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팔레스타인 목자들은 지금도 기름을 독사가 살고 있는 동굴 입구나 주위에 두어 독사가 양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며 기름을 태워 주위의 위험물에서 보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몫인 기름을 온전히 태워서 드릴 때 우리 또한 모든 위험에서 건짐받으며 우리를 해하려는 독소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샬롬.
요한계시록 8장에 보면 우리 기도를 천사들이 제단에서 나오는 금향로에 담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올라가는 기도가 화목제물입니다.
독생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 화목제물이요, 내가 주님께 온전히 드려져 하나님이 받으시는 모든 것이 될 때 화목제물이 됩니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하나님께 드려진 모든 것은 향이 되어 하나님께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까요?
예수가 왜 나의 중심이 되고 예수께 나의 중심을 담아 드려야 할까요?
예수의 향을 하나님께 나를 통하여 올려 드리기 위함입니다.
회개가 먼저일까요? 구원이 먼저일까요?
구원이 먼저입니다. 구원받았기 때문에 회개가 나옵니다.
내 중심 깊은 곳에서 터지는 회개의 목소리, 이것이 기름이요 화목제물입니다.
화목제물을 위한 최상의 기름, 이것이 이제 필요한 때입니다.
모든 기름이 여호와의 것이라는 말씀처럼, 제물에서 가장 귀한 기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결국 나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화목제 기름은 하나님께 드리는 최상의 예물로서, 인간의 모든 힘과 풍요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 평화롭고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샬롬, 즉 평화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충만하여 넘치는 평강과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샬롬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누림의 귀중함을 아는 사람들은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샬롬.
[성막, 성소 그리고 성전] - [제단의 뿔에 나를 매소서 (레 1:8)] - 일생을 주의 은혜에 빚진 자 되어: 제단 뿔에 매인 인생의 행복
[제단의 뿔에 나를 매소서 (레 1:8)] - 일생을 주의 은혜에 빚진 자 되어: 제단 뿔에 매인 인생의 행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는 정결치 않으면 하나님께 나아올 수가 없습니다.그 정결의 유일한 표현이 제사와 제물입니다.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정결한 삶을 살았고 정결한 제물
je-shurun.com
'찬양과 기도와 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상번제의 중요성] : 내 삶의 저주를 끊고 복을 부르는 영적 기본기 (레 1:7-9) (1) | 2026.01.02 |
|---|---|
| 제사의 방법 , 고르반의 중요성 (0) | 2025.02.28 |
| 기도를 가르쳐 주소서(마 6:5-10) (1) | 2025.01.25 |
| '화목제'란(레 3:1-17) (0) | 2025.01.20 |
| 번제의 중요성(레 1:1-3) (0) | 2024.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