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서 3:25절에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라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 지은 모든 죄 문제를 예수께서 속죄제물이 되어 해결하여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 그대로 하면 미래에 짓는 죄는 죄 사함과 상관없다는 뜻이 됩니다.
즉 지금까지 지은 나의 모든 죄는 예수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를 통하여 모두 용서하셨지만, 그러면 당장 오늘부터 짓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어제까지의 죄사함과는 상관없이 당연히 죄 값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사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예수 믿으면 죄사함 받았으니 짓는 죄마다 회개하고 철저히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 오늘부터 짓는 죄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을까요.
죄 문제 해결은 반드시 죄값인 죽음으로만 해결되기에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내 과거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면 미래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또 예수님이 죽으셔야 한다면 예수님은 두 번 죽는 것이 되지 않습니까.

로마서 8:1-2절을 보면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기록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1-2절 말씀은 주님의 보혈을 믿고 거듭난 순간:
1. 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죄값으로 지옥에 간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2. 우리를 향하여 죄가 있다고 선고하는 정죄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3. 미래의 죄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보혈에 의한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의 죽음은 영원한 속죄이기 때문에 주의 죽으신 보혈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한 화평을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1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라고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하는 이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예수 믿으면 출생해서부터 예수 믿기 전까지의 모든 죄는 용서받았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든 죄까지도 예수의 보혈 때문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말을 기억하십시오.
어떤 자에게?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스쳐 지나가는 오만가지 잡된 생각만으로도 정죄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게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시며 바라보고 계십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조건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방향이 반드시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개별 행동들을 체크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방향을 보고 계십니다.
내가 가는 방향이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다면, 비록 넘어지고 쓰러지며 진흙탕에 뒹굴어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고, 깨끗게 하시며, 트집 잡지 않으시고, 오히려 격려하시며, 결코 정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샬롬
죄 문제에 대하여 성경에서 기록하는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생명과 성령의 법 때문에
1. 과거의 죄는 용서받았고
2. 미래의 죄에서까지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은 예수의 피를 믿을 때만 나의 옛사람인 죄인 된 내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면서 우리는 또 죄를 짓습니다.
구약의 제사를 보면 죄 문제가 되살아날 때마다 저들은 속죄물로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속죄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일생 동안 반복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단 한 번으로 과거의 죄와 미래의 죄를 없애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6:40절을 보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어 죽어도 마지막 날에는 다시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에는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한다고 기록합니다.
회개를 잘하고 죄를 이겨야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천국 가는 것은 회개를 잘하고 거룩한 행실이라는 나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오직 예수 십자가 보혈의 피 때문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여야 합니다.
천국 가기 위하여 회개와 거룩한 행실이 죄 문제 해결보다 부족할까 싶어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죄를 씻기 위한 희생 제물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9:12절을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고 기록합니다.

영원이란 시간을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영원한 속죄란 속죄의 상태가 끝없이 이어져서 속죄의 시간이 초월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거듭난 자는 죄와 상관없는 영원한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구원은 나의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감사한 마음으로 온전한 헌신 즉 자원하여 번제를 드립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기에 어떤 대가나 거래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 예물을 드리는 이유는 받은 구원의 선물에 대한 감사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9:8절에 보면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라고 기록합니다.

성도의 옳은 행실이란 무엇이든 감사와 감격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의 옳은 행실이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겸손하게 행하는 낮은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주님이 입혀주시는 의의 세마포를 입고 예배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오는데 양은 오른편의 사람이며 염소는 왼편의 사람입니다.
양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창세로부터 마지막 날에 예비된 복을 받지만 왼쪽에 있는 염소의 부류는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양과 염소의 기준은 선행을 행하는 자와 악을 행하는 자로 나누어집니다.
즉 선을 100% 행하고 악을 100% 행하는 것의 기준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을 100% 행하는 자가 이 땅에 있을까요.
예수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만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순종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오른쪽, 왼쪽, 두 사람 모두 살면서 선(토브, טוֹב)도 행하고 악(라, רַע)도 행했을 것입니다.
선과 악의 비율이 모두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선한 자는 선이 더 많고 악한 자는 악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선한 자도 악을 행하기에 지옥에 가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왜 천국 갈까요.
심판의 기준은 선과 악의 비율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덮였느냐 안 덮였느냐가 문제입니다.
성경은 예수가 내 안에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점을 선과 악의 기준으로 봅니다.
로마서 8:1-2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 기록합니다.
예수를 통하여 정죄함이 없는 자는 정죄함이 없다는 약속의 증서를 받았기에 심판 날에 이 증서를 통하여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셔야 합니다. 선과 악의 기준은 예수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샬롬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오른쪽의 양 같은 사람도 죄질이 나쁜 것은 왼편의 염소 같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죄인이면서도 오른쪽 양이 가진 옳은 행실, 즉 선행은 무엇일까요.
로마서 6:6-8절을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라고 기록합니다.

복 중의 복은 모든 나의 불법이 죄 사함 받아 예수께서 내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러니까 마지막 날 심판은 하나님의 눈에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선행과 악행이 다 드러나지만 예수의 보혈 때문에, 예수의 피로 덮인 자는 하나님께서 그를 죄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야곱이 에서의 털로 자신의 몸을 가려 에서로 변장했을 때 아버지 이삭이 몰랐던 것처럼 예수의 보혈로 덮인 자에게는 그의 죄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죄가 예수의 피로 덮인 양이 되면 그들은 오직 예수의 음성만 듣고 따라다닙니다.
이것이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으로 인정되어 창세로부터 준비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샬롬.
양과 염소의 비유 중에 왼편에 있는 염소의 무리가 지옥에 가는 이유를 마태복음 25:42-43절을 보면 전부 '~~ 아니 하였고'라고 설명합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5장에서는
"너희 의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보다 나아야 하며 형제에 대해서 노하는 자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
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온전한 것처럼 온전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살면서 화를 내지 않고 싸우지 않고 욕 한 번 하지 않고 의롭게만 살 수 있을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짓을 될 수 있는 한 하지 않고 바르게 살려는 것을 좁은 문으로 가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좁은 문으로 가는 삶, 죄 없는 삶을 살기 위한 모습을 구약에서는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릴 때 정갱이를 씻고 내장을 씻는 행위로 설명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제물이 되려면 우리 몸 전체를 하나님이 받으시기 위하여 불태워 드리는 화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후각으로는 동물이 불에 탈 때 나는 냄새가 절대로 향기로운 냄새를 맡지 못합니다.
그런데 레위기 1:9절에 보면 희생제물이 불에 타는 냄새가 "여호와께는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고 기록합니다.

여호와 앞에서의 향기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니호아흐(נִיחוֹחַ)라는 말인데 편안한 휴식의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고 평화의 상태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을 드린 자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로 그 삶이 편안의 상태로 계속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샬롬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샬롬(Shalom, שָׁלוֹם)이라고 하는데 샬롬의 진정한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진정한 평화가 왔기 때문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제물이 된 사람은 로마서 12:1절에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야 삶에 평화 즉 샬롬이 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바울은 골로새서 1:24절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운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4)
우리가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려면 하나님과의 기본적인 관계를 맺는 기도와 예물, 섬김과 헌신, 봉사와 시간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는 구원받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까지 전부 하나님의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화제가 됩니다.
빌립보서 4:1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쓸 것을 채워주는 것에 대한 노동까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라고 말합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 4:18)
예수께서는 모든 죄를 해결하여 주신 것만 아니라 그의 피 묻은 세마포 옷까지 우리에게 입혀 생명과 성령의 법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의 대속적 죽으심은 죄가 주는 모든 저주를 끊어 버리셨기에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향기로운 제물이 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또한 그 예수의 옷을 입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산 제사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천국에 넉넉하게 들어가게 됩니다.
오늘도 예수의 피 묻은 세마포를 입고 주의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샬롬의 역사가 우리 삶에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주님이 입혀 주시는 세마포란 우리의 모든 죄를 흔적도 없이 없애 버렸으니 나의 죄는 1%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시고 주시는 옷입니다.
그래서 주의 신부 된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감사로 사는 것, 즉 선물을 주신 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 세마포 입는 것입니다.
죄 사함이 분명한 자들은:
1. 예배에 올인하며
2. 감사로 살고
3. 자신의 삶이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시간을 아끼며 살아갑니다.
이런 행함의 열매가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고 내 보물들을 하늘에 쌓는 삶입니다.
우리가 입어야 할 세마포는 죄 문제가 해결된 순수함과 정결함의 상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합당한 순결함의 상징입니다.
세마포는 죄와 상관없는 성도들이 입는 거룩한 옷으로 성도들의 거룩한 행실을 상징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시신을 싸는 데 사용된 재료도 세마포였기에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묻힌 그 세마포를 입으면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사는 거룩해진 상태가 됩니다.
죄 문제가 해결된 자가 세마포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부활의 새롭고 빛나는 옷이기에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어야 하는 예복이기 때문입니다.
죄 없는 자가 입어야 할 순결한 옷 혼인 예복의 복이 죄 문제가 해결된 우리에게 입혀지기를 축복합니다.
세마포는 아마의 줄기로 엮어 만드는데 아마의 줄기는 굉장히 질깁니다.
영적으로 질기다라는 의미는 우리가 지녀야 할 흔들리지 말아야 할 믿음과 시련에 대한 강인한 인내를 뜻합니다.
즉 인내로 승리한 자가 입는 옷이 세마포라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와 인내, 이것은 체험한 자만이 입는 최고의 혼인 예복입니다. 샬롬.
https://youtu.be/Z-WWt5N8iG8?si=htoNrB29gV0xEN1y
죄 사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죄의 용서를 받아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죄 사함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만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의의 세마포를 입고 거룩한 행실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영광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세마포는 본래 대제사장, 왕, 그리고 신부(교회)가 입는 깨끗하고 고귀한 옷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죄 사함 받은 자들이 거룩함으로 옷 입는 것을 비유하게 됩니다.
죄 사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인간의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대속되어 용서받는 것입니다.
죄 사함은 단순히 죄의 용서뿐 아니라,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생명의 부요함을 누리게 합니다.
예수 부활 후, 예수님의 무덤에는 주검이 없었고 주님이 입고 계시던 ‘세마포 옷’만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자기 옷을 찢어 내버리고 엘리야가 승천할 때 남긴 옷을 입고 그 옷으로 요단강을 칠 때 강이 갈라져 버립니다.
죄 없는 자의 거룩한 옷에는 성령의 충만함이 갑절이나 더 넘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려면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세마포, 내 패러다임을 찢고 예수님이 남기신 그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합니다.
주님이 남기신 세마포를 입을 때 그 옷이 나를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고 주님의 신부가 되게 합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나의 의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대속적인 죽음’으로 나의 죄를 사하시고 정결한 ‘세마포 옷’을 입혀주셨기 때문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된 자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죄 없는 자는 주님이 남기신 그 옷을 입음으로 내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인 ‘요단강’을 치면 황무지는 옥토가 되고 광야에는 길이 열리고 사막에서 물이 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죄 문제가 해결된 자가 입는 의의 세마포는 중간에 막힌 담을 무너뜨리고 갑절의 영력으로 살게 합니다.
죄 없는 자의 복된 삶이 되어 주의 세마포 옷 입고 남은 시간 주님과 영광스런 혼인 잔치에 들어갈 때까지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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