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장과 2장은 소제와 번제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소제란 일 년 전부터 준비한 곡식을 곱게 갈아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 유일하게 하나님께 피 없이 드리는 제사인데 피 대신 포도주를 전제로 사용(레 23:13) 하기도 합니다.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 (레 23:13)
소제는 단독으로 드리지 않고 반드시 번제와 화목제와 같이 드리는데 제사장은 곡물과 기름과 유향을 더한 소제를 한움큼 번제단에 올려 불태워 하나님께서 향기로 받으시게 합니다.
피는 죄와 상관되어 있는데, 피가 없으니 소제는 죄의 문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해서, 하나님과 지속적인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내게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면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아침저녁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는 제사가 소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아무 흠도 없으신 주님의 생애를 보여주는 제사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소재를 '민하'라고 하는데 자기보다 높은 사람에게 스스로 선물이나 공물, 뇌물을 주는 형태이기에 의무조항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주님께서 스스로 높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성육신 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 충성하기 위한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밀을 빻아 고운 가루로 만드는 것처럼 자기 한 몸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분골쇄신하여 죽도록 충성하는 그 기쁨과 감사의 제사가 소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께 소제를 드리려면 전혀 사심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은 자아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지들은 자기 안에 거친 부분이나 덩어리 진 부분이 조금도 없는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하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누룩을 넣어서도 안됩니다(레 2:11).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찌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찌니라 (레 2:11)
누룩은 성경에서 우상숭배와 위선, 거짓교훈 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출애굽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역사를 위하여 누룩 없는 빵을 먹어라고 하셨고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마 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마 16:6)
누룩은 베이킹 소다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데 있어 어떤 경우에라도 있는 그대로 드려야지 부풀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가끔씩 영적 대화나 간증을 듣다 보면 자기 자랑과 자기 과시를 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은혜받은 '나'를 더 강조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의로운 존재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바울의 간증을 들어보면 바울은 3층천까지 다녀온 사람이지만 이것을 간직하고 있다가 무려 13년이 지난 다음에 조심스럽게 말을 합니다.
이때도 바울은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한 것이 마치 남이 체험한 것처럼 설명합니다. 이런 겸손함이 소제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소제를 드릴 때는 누룩뿐만 아니라 꿀도 넣지 말라고 하십니다.
꿀은 세상욕망과 탐심을 뜻하기도 합니다(잠 5:3-).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잠 5:3-)
꿀은 맛은 있지만 요즈음은 꿀을 피부 미용이나 자기를 꾸미기 위하여 많이 사용합니다.
꿀이 있는 곳에는 개미도 파리도 모여듭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을 할 때는 절대로 실제보다 그럴듯하게 더 꾸미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소제에는 누룩이나 꿀 대신 소금을 더하라고 합니다(레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찌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찌니라 (레 2:13)
이때 넣는 소금을 '언약의 소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절대로 깨어질 수 없는 언약을 상징합니다.
소금이 변질되지 앉는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끝까지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소제에는 소금과 함께 기름(레 2:1-2)과 유향을 더하라(레 2:14-15)고 합니다.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 올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기름 가루 한 줌과 그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 2:1-2)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찌니 이는 소제니라 (레 2:14-15)
기름과 유향은 기쁨을 표하지만, 특별히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며 성경에 보면 왕과 제사장 선지자에게는 기름을 부어 구별시키게 하셨습니다.
유향은 기도를 상징합니다(계 5:8, 8:3-4).
그러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먼저 기도로 준비하여 소제처럼 자신을 온전히 비워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찬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생각하어 보십시오. 받은 은혜가 감사하여 드리는 예배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기도로 준비하여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예배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소제처럼 자신을 완전히 비워 하나님께 불태우는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 언약을 이루어 주십니다. 샬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는 자기 아들까지 희생시키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가로막거나 힘들게 하거나 어렵게 하는 자들에게는 무섭고 잔인할 정도로 심판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기 위한 10가지 재앙을 비롯하여 홍해바다 사건은 주의 백성들의 길을 가로막는 대제국 애굽을 초토화 시킨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의 길을 방해하는 아말렉과는 대대로 싸워 진열하라고 까지 말씀하십니다(출 12:12, 민 33:4).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출 12:12)
애굽인은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 치신 그 모든 장자를 장사하는 때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신들에게도 벌을 주셨더라 (민 33:4)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신 오시리스와 호르스를 박살내고 장자를 죽이고 가축과 농산물까지 한 번에 없애 버리십니다.
그리고 다시 달려오는 바로의 군대들을 전부 홍해 바다에 그대로 수장시켜 버립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재앙을 받는 자들과 물속에서 죽어가는 바로의 병사들에게는 처참한 고통의 현장입니다.
모세는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용사가 되신다'라고 노래하며(출 15:3) 모세와 미리암과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춤을 춥니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출 15:3)
이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 시내산으로 인도하어 그곳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여 '나는 네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내 백성이 된다'라고 서로가 약속합니다.
언약의 증거로 하나님께서는 불로 나타나십니다. 시내산 전체가 불이 가득하고 연기가 빽빽하게 둘러싸고 웅장한 나팔소리가 시내산 골짜기마다 메아리칩니다.
천둥 번개 우뢰가 온 산에 울려 퍼지면서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두렵고 떨었을까요(출 19:16,18).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출 19:16)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출 19:18).
하나님은 자기와 언약을 맺은 자에게 불로 임재하십니다.
불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강력함의 상징입니다.
불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불로 나타나지만 자기 백성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불은 때때로 질투의 불로도 나타납니다(신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신 4:24)
모세는 이런 하나님의 위대함을 보고 거룩한 고백을 합니다.
'.....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에게 알게 하려 하심 이니리라'(신 4:32-35).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불로서 자기 백성들과 언약을 맺어 주셨으니 이스라엘도 하나님께 뜨거운 불같은 심정으로 나아가야만 하는데 문제는 죄입니다. 샬롬.
인간은 죄가 있기 때문에 죄있는 인간은 하나님께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과 언약을 맺은 자들이 하나님께 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제사요, 예배입니다.
예배 문제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제사(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올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하여 회막문 앞에서 모세를 직접 부르십니다(레 1:1).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1:1)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습을 '와이크라'라고 하는데 이것은 '직접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사용하시는 모습'을 말합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을 부르셨던 하나님은 언약을 재확인하고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예배를 위하여 회막문 앞에서 다시 모세를 '와이크라'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길, 즉 제사를 정확하게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제사는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하나밖에 없는 길입니다.
제사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가장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제사로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제사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께 물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늘과 땅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성전 예배에 목숨을 걸고 성전 예배에 올인(all in)하여야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산제사를 드릴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 흠 없는 예물을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함으로 예배에 올인하고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나의 예배를 받아주시는 직접 만남이 있는 순간 니의 모든 문제는 그 순간에 끝이 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샬롬
2023.06.12 - [찬양과 기도와 예배] - 제사의 중요성
레위기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에 대한 방법을 기록한 책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싶고, 구원 받고, 하늘의 복을 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레위기에 기록된 방법대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에 기록된 여러 가지 제사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제사가 번제입니다.
왜 동물을 죽이는 번제의 제사를 먼저 드려야 하느냐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만나려면 이렇게 하라고 제일 먼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번제를 '올라'라고 하는데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짐승의 전부를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전적인 헌신의 모습을 말합니다.
전적인 헌신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향기롭게 받으십니다.
전적 헌신을 하나님이 온전히 받으시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온전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게 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모든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드렸던 제사도 번제이고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렸으며 엘리야도 갈멜산에서 승리를 위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가 아닙니다. 죄의 문제는 속죄제와 속건제로 드립니다.
번제는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스스로 자원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위해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이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은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데 내가 알고 지었던, 모르고 지었던, 부지중에 혹은 내기 깨닫지도 못했던 죄까지 전부 하나님이 용서하여 주십니다.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사함뿐만 아니라 이것에 더하여 헤아릴 수 없는 은혜와 강복을 주십니다.
번제를 비롯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의 제물의 첫째 조건은 부정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정의 개념은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 하나님이 금하는 것을 내 욕심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모든 시간과 삶의 순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삶 자체가 작은 한 달란트의 능력 밖에 안되어도 내 삶 자체를 반제를 드리듯이 주님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다섯 달란트 이상의 복을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샬롬
2024.11.19 - [찬양과 기도와 예배] - 번제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어느 한 부분이라도 흠이 있거나 부정한 것이 있으면 안됩니다.
아무리 귀하고 좋은 것이라도 흠이 있어나 부정하면 드려서는 안 됩니다.
되새김질하는 동물을 먹되 굽이 갈라져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을 때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먹어서도 안되고 제물로 드려서도 안됩니다.
소나 양 같은 제물의 공통점은 성격이 거칠지 않고 주인의 말과 주인의 손에 절대 순종하는 동물들입니다.
주인이 어디를 끌고 가더라도 반항치 않고 순순히 따라간다는 것은 제물과 주인의 관계가 신뢰와 순종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라고 하는 제물이 되어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므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즉 우리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이 되려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든지 간에 그대로 Yes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번제는 순결하고 정결하며 온순한 가축이어야 하고 어느 한 군데도 흠이 있으면 안 됩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절대신뢰와 절대순종의 관계여야 합니다.
그리고 번제를 드릴 때 소나 양이나 염소는 반드시 수컷이어야 하는 이유는(레 1:3,10) 대표성의 원리 때문입니다.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찌니라 (레 1:3)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찌니 (레 1:10)
암컷과 새끼는 수컷에게 속해 있습니다. 고대에서 여자와 아이를 인구조사에 넣지 않는 이유는 여자와 아이는 남자에게 속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교회마다 사실은 여자가 대표가 되어 있는 곳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에 남자보다 여자가 정결하고 흠이 없고 순종과 신뢰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죄의 대표는 아담이고(롬 5:17) 구원의 대표는 예수님이십니다(고전 15:22). 그래서 구원의 문제는 예수 외에는 답이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롬 5:17)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2)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서 전인류를 위한 대표자로서 영원한 번제물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리로 세상 끝 날인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의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때 144,000이라는 숫자는 사람 가운데 구속함을 받은 첫 열매 즉 모든 자들의 대표적인 숫자입니다.
이제는 교회마다 세상 끝 날의 대표가 되어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교회가 되어 사람들이 하나님이 비추는 영광의 빛을 보고 '네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라'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2024.11.17 - [찬양과 기도와 예배] - 레위기를 통한 예배의 가르침(제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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