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교를 통하여 신적 존재를 추구하고 위대한 신을 만나기 위하여 거의 모든 종교는 고행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고행을 통하여 신을 만나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신을 만나기 위해서 고행하는 이유는 신은 육체와 땅의 차원을 넘어 높은 곳에 존재하므로 고행을 통하여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면 신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육체는 먹고 싶고, 갖고 싶고, 입고 싶은 것과 함께 성적충동을 가집니다. 항상 육체는 거의 대부분 나쁜 것에 치우칩니다. 그래서 이 육체는 나쁜 것이므로 신을 만나려면 이 육체에 고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를 지으시고는 보기에 심히 아름다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육체에 사람마다 감정, 취향, 이성, 성품을 전부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님이 주신 이 육체를 가지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 요한, 도마, 등 주의 제자들마다 전부 성격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들이 예수를 만나고 나서 성격이 바꾸어졌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삶의 방향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세상을 향하던 천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선 것입니다.
기독교는 우리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정도로(고전 3:16)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고행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오직 이 육체를 가지고 소유의 극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극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자식들이 부모의 마음을 알기 위하여 육체를 학대한다고 했을 때 부모의 마음이 편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싶다고 육체에 고행을 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관계의 극대화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나를 잘 아신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 위하여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막이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방법, 하나님과 관계를 극대화하기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늘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성막을 잘 알면 하나님의 원하심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극대화되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답니다... 샬롬.
성막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늘의 모형입니다.
제일 먼저 사람들은 세마포로 성결케 된 성막의 마당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놋 제단에 제물을 바쳐 자신의 죄를 속하고 물두멍에서 죄 사함의 은총을 다시 확인합니다.
그리고 나면 네 개의 덮개로 덮혀진 거룩한 장소인 성소에 들어갑니다.
성소에는 전, 후로 방이 나누어져 있는데 전실에는 떡 상, 분향단, 촛대가 있고 후실을 지성소라고 하는데 이곳에 법궤와 속죄소가 있어 여기서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막의 마지막 결론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번제단과 물두멍을 지나 전실에 있는 세 가지 기구인 떡 상 분향단 촛대는 하나님을 만나는 핵심적인 기구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나는 떡 상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떡 상은 가로 90, 세로 40, 높이 68cm의 작은 상입니다. 조각목으로 정금을 덧입혀 만들었는데 그 위에 고운 가루로 떡을 12개 구워 6개씩 두 줄로 만들어 안식일마다 진설합니다.
떡 상을 레 24:6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 순결한 상"이라고 합니다.
성막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번제단에서 동물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이기에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떡 상은 하나님께 바치는 유일한 12개의 제물입니다. 그리고 이 떡 상이 순결한 상이란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반드시 순결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 떡을 만들 때는 죄와 부패함을 상징하는 누룩을 넣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여지는 구체적인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순결한 떡 상, 즉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는 신령한 떡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순결치 못한 떡, 즉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지 못하는 떡 상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들로부터(딤후 3:5) 돌아서라고 가르쳐줍니다.
거룩한 자는 거룩한 자들끼리 어울리고, 거룩한 예배와 삶의 향기로 하나님께 날마다 드려지는 것이 떡 상의 비밀입니다... 샬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의 능력은 정직에서 나온답니다. 그리고 이 정직은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중심까지 정확하게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는 무엇 하나 거짓이나 위선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마치 공항 검색대를 통과할 때 쇠붙이나 어떤 액체를 가지고 갈 수 없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를 지으면 우리 예수님이 제일 가슴 아파하십니다. 정직하지 못한 삶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려면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이란 성결, 혹은 순결이라고 합니다. 떡 상이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정직, 순결, 성결의 삶입니다. 즉 정직한 삶, 깨끗하고 순결한 삶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을 위한 떡 상 위에 성결한 자신을 올려놓아야 합니다.
순결하게 바쳐진 거룩한 떡은 12개입니다. 12란 완전한 숫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떡 상의 떡은 다른 것은 먹을 필요가 없는 충분한 양식, 완전한 양식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면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요 6:51:52) 예수 안에 거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즉 떡 상 위의 떡은 아무리 순결하여도 사람의 손으로 빚었기에 반드시 우리 예수님과 연합을 이루어야 거룩한 떡이 되어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신을 만나려고 고행, 고난, 수행을 아무리 하여도 순결할 수가 없어 신을 만날 수가 없지만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거든 주와 연합을 이루면 된다고 말씀합니다.
남, 여가 서로 사랑하려면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알며,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신을 먼저 돌아봅니다. 이것을 성화하고 합니다.
신앙에 철이 들었다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제대로 드릴 수 있는 길을 알아 자신을 순결하게 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란 하나님이 직접 산 떡이 되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떡을 주실 때 이것을 받아먹을 수 있는 은혜가 임하여야 합니다. 내가 순결한 떡이 되어 주께 드리면, 하나님께서도 완전한 떡이 되어 우리에게 주시므로 그것을 서로 먹으면, 내가 예수 안에, 예수가 내 안에 거하는 떡 상의 역사가 일어난답니다.
2023.01.13 - [성막 (the Tabernacle)] - 성막이란
2023.02.03 - [성막 (the Tabernacle)] - 성막의 구조가 주는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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